월간 보관물: 2012 8월

엄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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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전거도 빌렸겠다, 휴가철이 한풀 꺾임을 알려주는 광복절도 지났겠다, 다음주부터나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7시에 자전거를 타고 해변으로 나섰다.

예정지에서 인증샸을 한 장 찍고, 중간중간 생각나는 준비물을 메모하면서(드립 도구를 올려놓을 판 위에 깔 손수건 등) 산책자가 얼마가 되는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손을 잡고 아침산책을 나온 커플 여행자, 개를 끌고 나온 주민, 운동하는 중년의 부부 혹은 아주머니, 아저씨들. 내가 커피를 내리니다면 사줄만한가 아닌가를 가늠하며 동백섬쪽으로 달렸다. 그러다 광안대교가 보이는 누리마루쪽에 이르자 잠시 본분을 잊고 너무 좋아서 넋놓고 앉아있기도. 등받이와 바퀴까지 달린 완전 귀여운 의자를 발견하고 챙겨오고 싶은 마음에 앉았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무한반복, 싣고 갈까 끌고 갈까 고민하다가 누군가 나처럼 아침산책나왔을 때 이런 소박한 행복을 누리라고 두과 왔다. 그래 사실을 들고올 일이 난감하여 그냥 두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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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나오길 잘했네, 나오길 잘했네’ 중얼거리며 다시 해변을 달렸다. 어제 지인의 한말씀 “레몬차 맛있던데, 그거나 팔지”라는 말에 어제 살까 말까 고민하던 14개 들이 레몬 한 박스를 사러 마트를 향했다. 두어개면로 한통을 담그면 내가 1주일은 먹는데, 팔아도 되고 안되면 여기저기 선물하기도 좋으니까 만들어놔도 버릴일은 없다.

마트 앞에 7시 50분에 도착했다. 문을 여는 8시까지 아까 찍은 사진을 보면서 혼자 키득거리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와 계시던 아주머니는 “날이 더워 일찍 왔더니…” 라고 혼자말인지 내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하셨다. 셧터가 올라가자 눈짓으로 열었네, 하시며 나한테 다가오신다.
“혹시 대학생?”
“아뇨, 학생 아닌데요.”
나는 이건 또 뭔가, 싶엉서 한껏 경계하며 올려다본다.
“그래도 대학…..”
“대학 나왔냐고요?”
“응. 미안한데..”
“아, 네”
“저기 뭐하나 물어봐도 될까?”

전에 수능시즌에 목욕탕에서 느닷없이 눈이 마주치자 대학생이냐, 아니어도 괜찮다, 딸래미 대학을 안좋은 인서울이 좋겠냐, 지방국립대가 좋겠냐 뭐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 나는 아주머니들 특유의 친화력이라 생각하고 약간 누그러들었다. 그리고 요즘은 컨디션이 최상이라 진학상담이라도 해줄 기세로.

“근데 제가 졸업한 지 좀 오래되었는데요”
“괜찮아 그래도 경험자잖아. 선배니까…우리딸이…”

하며 시작하신 길고 긴 말씀을 요약하면 서울로 대학을 간 외동딸이 한 학기를 다니고 너무 힘드니 6개월만 휴학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부모는 공부도 다 때가 있는데 이 얘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고 덜컥 심장이 내려않는다, 였다. 물론 유치, 초, 중학교때까지 아파도 꼭 학교를 보냈고 중매로 만난 성실한 남편과 당신네 살림 씀씀이를 줄이면서 딸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지만 8남매였던 자기 인생을 되짚어볼 때 딸은 공부만 열심히 했으면 좋겠고 휴학을 하더라도 기타를 배우든 취미생활을 하던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얘기까지, 뭔가 아주 많은 말씀을 하셨다.
내가 4학년 1학기 마치고 휴학할 때 우리 아부지가 절대 반대하시던 게 생각나 웃음이 났다. 그리고 나는 멀쩡한 직장 때려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청소알바하면서 놀고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그런 얘기를 할 상대가 아니란 걸 말씀드려야 하나 싶었지만 걱정으로 가득찬, 그리고 정말 심장이 이미 3센티미터는 내려 앉으신 것 같은 어머니를 보니 그럴 수 없었다. 성심성의껏 요즘은 휴학 많이 한다. 그리고 자기 인생을 자기가 제일 많이 고민하고 결정한 것일테니 믿고 맏기셔라, 엄마랑 같이 살겠다, 당장 부산으로 내려오겠다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장한 딸이냐, 잘 크고 자기 앞길 자기가 잘 챙기고 있는 거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잘할거다, 라는 취지의 말을 장황하게 했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잔소리하면 몰래 휴학하고 엇나갈거라는 말도 해드렸다.

내가 무슨말을 하든 그 엄마는 걱정을 하실 거고, 그 딸은 휴학을 하겠지. 그리고 고향에 계신 우리 엄마는 회사가 그렇게 바빠서 전화 한 통 못하냐고 저녁에 또 전화를 하시겠지.

정작 나는 엄마한테 거짓말을 하고 부산내려와 베짱이처럼 지내고 있는 게 아주 조금, 한 10그램 정도 미안하지만,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 잘 사는 것이 엄마도 좋잖아요. 그게 효도잖아요. 엄마가 피곤하고 걱정할까봐 잠깐 말씀안드리는 것 뿐입니다. 저는 아주 잘 있습니다.
물론 주말인줄도 모르고 엄마 안부전화에 “어 회사야”라고 말할뻔 한 적도 있고, 바닷가 산책중에 내방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는 것처럼 전화를 받은 적도 있지만요. “언니는 뭐한다니, 언니 방에 있니? 왜 전화를 안받니?”라는 질문에 “어,, 씼나봐”라고 말하고 얼른 언니한테 문자를 보낸 적도 있지만요. “서울도 많이 덥지?”라는 질문에 거짓말하기 싫어서 “엄마도 덥죠, 여름은 정말 덥네요” 따위로 대답하지만말이에요.

제멋대로 살아온 인생이라고 늘 걱정하시지만,
남한테 피해안주고, 자기 먹고 살 몫 잘 챙기면서 앞가림하면서 살면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부산에 온 지 한 달 넘는 시간동안, 가끔 외롭고 심심한 적은 있었어도
괴롭고 슬픈 날은 단 하루도 없었어요. 행복해서 미칠 것 같은 날은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았고요. 그러면 된 거 잖아요. 그쵸? (2012.8.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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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랑 글을 하나 올려놓고 시간이 한참 지나면 민망할 것 같아서 한 다섯개 정도만 일단 글을 쓰고 올리자 싶어서 미뤘는데 벌써 열흘가까이 지났네. 열흘에 하나가 되든 하루에 두 개가 되든 일단 올려야지 싶은 마음이 드는 아침에 몇마디 보태자면, 요즘은 일요일 일과로 집에 전화해서 일주일간 회사다니느라 힘들었지만 잘지낸다고 안부인사를 드린다. 행복한 목소리로 뻔뻔하게, 사실 행복하니까.(2012.8.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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