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12 9월

아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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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결국 효도다,
지금 내 모습은 누구에게나 당당하다,
엄마아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귀찮아서, 이제 나는 어른이니까, 내 한몸을 잘 간수하면 되니까, 라고 생각해도 집에 전화해서
“요즘 휴가철이라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 라고 말하는 것은 좀 껄끄럽긴 했다.

지난주는 엄마 생신주간이라 특별히 서울 자식네를 두 분이 방문하셨고,
주중하루밖에 쉬는 날도 없고, 사정을 말하고 임시 휴무를 받거나 다른 사람과 바꾸거나 하면서까지는 딱히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아 그냥 출장이라고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그런데, 사실 우리집에 와서 언니랑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어찌어찌하다가 알게되셨단다.
당연하지.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 순간 민망했을 언니한테 쫌 미안하네.
내가 내 맘대로 살고, 가족이 줄지도 모르는 부담을 덜 수 있는 건
엄마한테 거짓말해주고, 각종 정보를 발빠르게 전달해주는 언니 덕이니까.

저녁에 언니한테 연락이 왔고, 흐음 무언가 수습단계에 들어가야겠군. 하고 생각했는데 며칠 그냥 더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건 손편지를 써서, 혹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편지를 집에 부치는 방식. 아빤 그런 걸 좋아하실테니까. 편지는 당연히 좋아하실거고, 테이프는.. 해본적은 없지만 당연 좋아하실거다. 물론 친구 및 친지에게 자랑한답시고 막 틀어주고 후손대대로 놀림을 받을 것 같긴하다. 생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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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며칠 후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안다,
아빠의 지지와 사랑이 지금의 내 영혼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엄마의 무던한 배려와 관심이 지금의 내 삶을 가능케했다는 사실을.

처음에 아빠가 삐졌다는 소식을 듣고, 아 귀찮게 달래야하나, 싶은 마음이 든 건 사실. (아부지 죄송해요)
뭐야, 지멋대로 이번에 또 회사를 그만두고 어딜 다녀, 라고 화라도 내셨다면 나도 똑같이 화내면서 싸울 수 있었는데 그런게 아니라 서운해 삐지셨다니! 역시 부모는 나이드시면 늙으면 전과 달라지는 것 같다.

아 물론 전에도 아빠는 내가 하는 일, 선택한 것들에 대해 격렬한 반대를 하지는 않으셨다. 대학졸업 한 학기를 남기고 휴학할 때 그러다 다시 복학하기 싫어서 졸업장도 못받으면 어떻하냐, 하는 순진한 걱정을 하시며 반대하시긴 했지만 그건 당신의 삶속에서 할 수 있는 걱정이었을 거다. (물론 당시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어떻게 간 대학인지 내가 아는데 이왕 들어간 거 졸업장 안따겠냐고 무시하듯 말하면서 설득했지만 – 물론 지금 대학을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고 지지하지만, 아직 나는 그 달콤한 혜택을 손수 찾아다니지는 않지만 은근 즐기고는 있을거다.) 호주 워킹을 갈 때를 비롯, 회사를 옮길 때,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갈 때 그냥 다 알아서 했다. 처음엔 소식을 전하기는 했었지만 나중엔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때까지 내버려두었지(아마 같이 사는 언니가 자연스럽게 그 타이밍을 알리는 연학을 했을거다. 내가 이렇게 자유롭고 편하고 내멋대로 살 수 있는 건 이런 가족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

2~3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호주 가기로 결심했을 땐, 한창 독립을 하고 싶어서 난리치던 때였다. 부모님은 언니랑 둘이 서울서 사는데 왜 독립을 하고 싶어하는지 이해를 못하셨지. “남자생겼냐?”가 첫번째 질문이었고, 난 그게 또 어쩜 그렇게 다른 ‘시시한’ 부모들하고 똑같을 수 있는지 경악하면서 “아아아아악- 말도 하기 싫어”하면서 반항을 했더랬다. 오빠도 손윗사람이랍시고 “니가 나가서 옥탑방이나 지하실같은데 밖에 더 살겠냐, 그러다가 생활비 떨어져서 친구들한테 돈이나 꾸고 다니고…그러기만 해봐 당장 고향집으로 데리고 내려온다” 라는 충고 및 협박을 했었다. 지금이야 그네들의 마음이 다 이해가 가고도 남지만, 난 그때 어렸으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얘기를 왜 하는지, 이런 거지같은 집구석이 있나하면서 구질구질한 내 인생을 탓하고 있었다. 집이 화목하기를 해, 형제간에 우애가 좋기를 해,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며….(아 이렇게 써놓고 보니 손이 오그라들어서 숨고 싶다. 부모가 언성한 번 높이지 않는 집이 어디 있으며 형제들이 맺는 우애라는게 얼마나 다양한지 지금은 알기 때문에. 우리 가족의 분위기, 관계는 우리가 만든 문화고, 적응하고, 또 갈등과 화해를 통해 좋은쪽이다 나쁜쪽이다 말할수 없는 그저 ‘가족’을 만들고 있는 거니까)

여튼. 집에서 부터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던 나는 외국행이라는 놀라운, 하지만 손쉬운 그리고 어렵지 않은 결정을 ‘그냥’ 하게 된다. 영어배우러 간다고 대충 둘러댈 수도 있고 남들은 미국에 고모도 있고 독일에 이모도 있는데 나는 아무도 없으니까 내가 알아서 혼자 가는 수밖에 없잖아. 이러면서.. 내가 모은돈으로 내가 아무한테도 손 안벌리고 가는데 이런 뿌듯한 일이 있나… 물론 그때도 엄마가 남긴 훌륭한 말씀이 있기는 하다.

“남들은(누구는) 국가장학금 받고 간다더라”

호주에서 만난 호주인들이 어머, 넌 여기 아는 사람 한명도 없는데 어떻게 올 생각을 했니, 용감하구나. 할때는 다른 한국얘들도 다 그러니까 하면서 대충 웃으며 뭉갰는데, 다른 한국 친구들이 오게 된 “투쟁의 역사”를 들으면서 우리집이 나름 “모던”한 집이란 걸 알게됐다. 아님 나를 자유롭게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그때부터 싹드기 시작했달까. (물론 김어준이니 다른 누구니 하는 방임방목형 양육의 예는 아니고 난 학교다닐땐 모범생이었고 그 모범생이미지를 담보로 적당히 선생들에게 양해 받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내 인생이 특별히 유난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이의 인생의 어떤 입장에서 유난하고 대단하고 특별하니까. 쓸데없는 자만이나 우월감, 열등의식 이런것들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노력하는 중.

여튼 “내돈으로 내가 호주간다는데 부모가 감히 어디서 반대를 해”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각종 각서와 약속을 통해 겨우겨우 “허락”을 얻어낸 20대 여자친구들을 보고 내 처지를 다행이라고 생각하게되었고, 우리 부모님을 좀 귀엽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방황하면서 취직하겠다고 공부할 때, 그러다가 시민단체에 활동가로 살때, 다시 그만두고 회사를 옮길때, 짤리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놀때, 다시 일할 때, 내 인생의 전환을 다 보고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 이게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연락을 좀 뜸하게 하면서 거짓말을 최소화하면서 살았었지.
작년에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 여행을 갈때는 아부지가 “너는 외국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으니 여행다니면서 살고 싶은 곳이 있으면 거기서 살아라. 안 돌아와도 된다. 나는 니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셔서 한바탕 언니들이랑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난 아빠가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진심도 아니면서 멋진 아빠처럼 보이고 싶어서 저런 말씀하시는군. 그런데 만약 그게 진심이 아니라 멋진아빠 코스프레였다고 해도, 충분히 멋진 아빠니까. 그런 가치를 지향하는 분이니까. 그런데 그런 분이..내가 이렇게 사는 거 말도 안하고 따박따박 거짓말하면서 마치 서울서 얌전히 회사다니는 것처럼 안부전화를 했으니…그래 서운하셨을 만도 하다…(아이씨 눈물날 것 같다)

일때문에 명절을 함께 못보내는 일이 많아지고, 그러다가 일과 사정 핑계를 대면서 명절에 내 맘대로 하고 산 지 3~4년 된 거 같은데. 이번 추석에도 그냥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거 같다. 여기서 만나 카카오톡으로 안부인사를 주고 받는 독일친구 수지는 추석이 크리스마스 같은 한국의 전통 명절이라고 하자. 이때가 기회라고 집에 가라고 하던데… “Go to your Family! in Germany Christmas is the fest of Love and forgiveness”

엄마나 아빠가 나를 “용서”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 찝찝한 마음을 어떻게든 풀긴풀어야지.
나는 당신들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걱정하는지 아니까. 그리고 그 방식이 구식이든 어떻든 감당해야한다는 것도. 진심을 의심하지 않으므로.

내 삶의 방식에 후회는 없지만 설명하기는 귀찮아.
설명하지 않고도 이해하고 지지해주었으면, 하긴 이미 부모나 가족은 그럴준비가 되어있는데 내가 그들을 과소평가하면서 무시하고 있는지도…

그렇지만, 나는 영원히 자식이다. 돌봄을 받던 시기를 거쳐 지금은 늙어가는 부모를 다르게 대해야 할 때라고 하지만, 관계맺음에 정답이 어디 있겠냐.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 천천히 방법을 찾아야겠다. 부모의 욕망이었는지 내 욕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했고 나쁘지않은 대학에 갔고, 거기서도 나름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다녔고 속썩이지 않고 졸업하고 취직했…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내가 늘 키우기 힘든 자식이었다고 하신다.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몰라 늘 전전긍긍하셨다고. 그런거다. 남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찝찝하게 나는 이만큼 희생했는데 왜 늘 나에게 더 많은 걸 요구하는가..하고 원망하게 된다.

부모에게 착한 자식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원하는 걸 포기한다면, 결국은 부모를 원망하게 되고
부모는 자식이 포기한 것 정도는 양에 차지도 않을테니까.
내가 좋은 대학에 가겠다고 12시까지 공부하고 자습하고 과외하고 학원다니고 그랬던 건 내 욕망이기도 했고, 부모한테 사랑받고 싶어서 이기도 했고, 전남최고의 모범생이던 언니들과 비교에 지레 짓눌려 그랬을 것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부모는 내가 서울대를 못간게 아쉽고, 내가 다녔던 대학에서도 장학금을 못받은 게 아쉽고, 졸업하고는 삼성같은 대기업에 못들어간게 아쉽고, 선생이 못된게 아쉬운 거다.

완벽하게 자유롭진 않지만, 나는 슬슬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하는 중이다.
행복하게 사는 것, 건강한 것. 결국은 그것이 가장 큰 효도이기도 할테니.
부모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이도 원망하지 않고, 내 맘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내 인생을 사는 것.

그나저나 삐진 아부지는 어떻게 달랜다.

이것은 장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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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공원에서 장사를 하면 안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돈을 받지 않으면 장사가 아니니 괜찮지 않겠냐고 되물었지만 돈을 받건 안받건 공원에서 기업이나 개인이 상행위를 목적으로 한 행위는, 그것이 무료로 무언가를 나눠주는 것이라도 안된다고 합니다. 쓰레기가 나올 수도 있고 지나는 시민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사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커피, 파는 겁니까? 얼마에요?” 라고 묻는 말에 해야할 대답을 지금 미리 적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아침에 산책하는 사람들을 위해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일이 장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돈을 벌 작정이었다면 사람이 훨씬 많은 7~8월이나, 새벽내내 사람들로 가득찬 클럽주변에서 판을 벌였을 것입니다. 처음에 책정한 3천원이라는 커피값도 큰 금액처럼 보이지만 직접 제가 커피콩을 사다 정성과 시간을 다해 볶고, 바로 이 자리에서 갈아서 내리는 데 들어가는 품에 과한 금액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장사는 금지라고 하니 저는 장사를 안 하겠습니다. 돈을 주고 받거나 영업을 위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지난주에도 저는 커피를 드시라고 권하는 어떤 행동이나 지나는 분들께 불편을 끼치는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직접 볶고 내리는 맛있는 커피를 여전히 이 자리에서 조용히 마시려고 합니다. 저는 산책하고, 노래하고, 글쓰고 노는 여행자입니다. 저는 제가 내린 커피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고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하다가 마시는 맛있는 커피가 얼마나 귀한지 잘 압니다. 친구에게 내 커피를 나눠주는 것은 장사도, 불법도 아니니 원하시는 분께는 얼마든지 나눠드리겠습니다. 커피값을 받을 수는 없으니 그 마음과 커피에 대한 답은 친구가 된 여러분들이 알아서 해주시면 됩니다.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벌써 12년 전이다.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을 해서 학원강사 아르바이트, 각종 영화제 자원활동, 취업을 위한 자격증 획득 등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여성영화제에서 일하면서 영화를 많이 봤는데, (이후 부천영화제와 비교해보니 정말 많이 본 거였다. 부천영화제는 자원활동가 운영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잘 되어 있어서 몰래 영화보기가 불가능) 그 때 아녜스바르다의 특별전을 했었고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라는 영화상영후엔 우아한 할머니 감독과 대화하는 시간도 있었다.

영화는 수확이 끝난 밭에서 버려질 작물들을 캐다 먹는 사람들, 수퍼마켓 등의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받아 생활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지며 사는 현대판 ‘이삭줍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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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날마다 ‘이삭’을 줍는다. 지금 내가 일하는 게스트하우스의 체크아웃 시간은 11시.
보통 투숙객들은 10정도에 체크아웃을 하고 우리는 2시 체크인 전까지 새 손님을 받을 준비를 한다. 침대의 시트를 갈고 방을 청소하는 것.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입지 않을 옷, 신발, 조금 남은 샴푸 등을 많이 버리고 가는데 그것 외 먹을 것도 자주 두고 간다. 가끔 실수로 동전을 흘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 (같이 일하는 봉길이는 수십만원을 발견해서 주인을 찾아준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물론 팁일수도 있지만, 백퍼센트 확신하건데 모르고 두고간 동전일 거다.

공동부엌의 냉장고에도 손님들이 깜빡잊고 두고간 치즈, 음료, 빵, 과일 등이 가끔 “발견”된다. 며칠째 손댄 흔적도 없이 그대로 상해가고 있는 음식을 그냥 두는 것은 지구에 대한 죄악인 것 같아 나는 그것을 챙겨먹는다.

포도, 복숭아, 빵, 요구르트 등.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것들을 “이삭”이라 부르고 있다. 어느날 간장이 떨어져서 아쉬워하고 있는데 어떻게 알고 딱 간장이 이삭으로 나오는 날도 있고, 과일이 땡기는데 며칠째 포도 한 송이가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유리병이나 통을 좋아해서 게스트하우스가 무료로 제공하는 딸기잼통은 벌써 대여섯개나 챙겼다.

다시 그 영화가 보고 싶어서 부산에 있는 동안 영화의 전당 자료실에 가서 찾아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영화의 전당 9월 특별프로그램으로 아녜스바를다 특별전을 한단다. 이러니 내가 감사하며 살지 않을수가.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뿐아니라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2년 후‘도 상영한다. 몇몇 영화를 더 골라 “나만의 아녜스바르다 영화제”를 즐기기로 했다.

영화의 전당, 아녜스바르다 스케쥴

서울에 있는 친구들은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 자료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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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다방산책극장 이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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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 한 명만 믿고 부산에 내려온 지 일주일쯤 됐을 때였나, 뭐하고 놀까 하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했다. 트위터에 새 계정을 만들어서 슬금슬금 근질근질한 입을 놀리던 때였다.

카미노를 걷고 있는 사람을 몇 명 발견해서 팔로했다.
좀 자세히 살펴보니 여러명의 여자친구들이 함께 걷고 있는 일행을 발견했고, 그 중 한 두 사람의 프로필을 따라가다가 그들이 부산에서 “생각다방산책극장”이라는 재미있는 곳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블로그에 들어가서 와르르르르 그녀들의 그간의 이야기를 알고, 그들의 여행을 구경하기를 하루이틀.

만나야겠다! 그리고 다방에 가봐야겠다. 어쩌면 그네들이 만들고 싶어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메일을 썼다. 카미노를 다 걷고 서울에 돌아올 때쯤 보내려고 했는데 또 근질근질, 바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 생각다방에 자주 드나드는 친구를 한명 더 알게 되었고, 그녀의 이름은 싱싱, 여자3호다. (서울의 내 친구들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이들을 “오다가다 만난 아가씨들”이라고 부르는데, 아가씨1은 메일을 보냈던 생각다방의 히요, 아가씨2는 생각다방을 함께 운영하는 이내, 아가씨3은 생각다방을 인연으로 만나 자전거도 빌려주고 함께영화보는 친구가 된 싱싱)

몇차례 멘션을 주고 받다가 어느 심심한 날 급만남 결정. 물론 나는 그때깍지 친구집에서 인터넷하고 놀고, 근처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동네 천변을 산책하고 우쿨렐레를 치고 노는 등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친구랑 하루종일 말없이 함께 있는게 좀 불편하긴했지만(친구는 재택근무하는 프리랜서) 밥 때되면 밥차려주고, 재워주고, 나의 하루에 아무런 관심도 불만도 없는 좋은 친구였다) 그러려고 부산에 온 거니까.

그렇게 나는 싱싱을 만나고 다방에 첫발을 디뎠다. 주인없는 다방은 약간 아니 많이 지저분한 상태였지만 귀여운 고양이 두마리가 반겨줬다. 그렇게 고양이랑 놀고 돌아왔다. 천천히 다방과 그 주변인물들을 만나면서.

그 즈음 나는 해운대 근처의 게스트하우스에 오전 5시간 일하는 청소알바를 구했고, 사실 먹고자는 자리를 원했지만 이미 한 사람이 일하고 있어서 출퇴근을 하기로 했다. 친구집과 해운대가 가까웠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날인가 다음날인가.

싱싱양한테 온 연락.
“히요네 집에서 머물면서 고양이 밥줄 사람 구한데요”
“오오~ 이런 일이”

고양이 두마리를 보살피던 친구가 일이 생겨 갑자기 고양이 집사가 필요하게 된 상황, 나는 살 집이 필요했고 고양이와 아가씨들은 집사가 필요했고, 나는 무려 출장보모 경력도 있지 않은가! (이 자리를 빌어 나와 함께 2주간을 살았던 호동이 안부도 잠깐 묻자. 주인언니가 여행간 사이 그 집에서 고양이를 돌보며 살았었다)

그렇게 친구집을 나와 대연동 생각다방 근처의 히요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이틀을 지내다가 게스트하우스에 먹고 자는 자리가 생겨서 그쪽으로 옮겼다. 원래 일하던 친구가 너무 힘들어서 갑자기 그만두고 잠적. 하하. 이런 상황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왠지 여기서 살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고양이집사노릇은 주인아가씨들이 올 때까지 해야하니까 며칠간은 출퇴근하면 고양이님들을 섬기고 아가씨들이 여행에서 돌아와 오늘에 이르렀다. 나는 자전거카페에 필요한 내 커피콩을 볶기 위해 다방을 로스팅작업장으로 이용하고, 자전거에 붙일 간판을 뽑기 위해 다방을 출력소로 이용하고, 드립 실력 향상을 위해 다방을 찾는 분들께 커피를 내리는 실습실로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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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다방을 통해 만나는 여러 인연들과 더 재미있는 일을 꾸릴수 있을 것도 같다. 사실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다, 그때그때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니까.

자전거카페 개업날, 아가씨2는 뮤지션으로 개업축하공연을 위해 평소 일어나본적도 없는 시간에 해운대까지 와서 노래를 불러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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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다방산책극장 블로그 http://blog.naver.com/beluckysuper

생각다방 히요마담(럭키슈퍼아가씨)이 소개하는 [멜리네 자전거카페] 산책자의 모닝커피 story

자전거카페 산책자의 모닝커피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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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주전자, 드리퍼, 커피를 담아 타고 다니다가 길거리에서 내려 파는 건 오래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었다. 물론 가장 하고 싶은 건 전기나 가스가 아닌 대체 자연에너지를 이용해서 물을 끓이는 것. 나한테서 나오는 쓰레기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싶었다.

부산에 오니 많은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난다. 우연치 않게 기적처럼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기다렸던 많은 일들은 정말 놀랄만한 결과를 준다.

생각다방 아가씨들을 만난 것,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면서 살 수 있게 된 것,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시도해볼 수 있는 용기와 베짱이 생긴 것,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도움.

어젯밤엔 이런 일도 있었다. 자전거 뒤에 달 짐상자를 찾아 그릇가게를 서성이다가 맘에 딱 맞는 걸 찾지 못했다. 좌판 할매들이 쓰시는 딱딱한 플라스틱 박스를 훔쳐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새벽에 시장도 어슬렁거리다가 그럴바엔 할매한테 말하고 하나 사자 싶어서 평소 한 번 양파인가 감자인가를 샀던 할매한테 접근.

“할머니, 이거 저한테 파시면 안돼요?”
엥. 하시는 표정. “뭐에 쓸라고?”
“아,, 뭐 담고 정리하고 이것저것….”
“뭘. 이런걸 파나, 그냥 줄라면 주지…”하면서 말끝을 흐리신다. “그래도 제가 너무 죄송하니까..음..그럼 제가 9월 한 달만 쓰고 도로 갖고 올게요”
“그래라” 흔쾌히 방법을 찾으셨다는 듯…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드렸지.
“사실 제가 아침에 바닷가에서 커피를 팔라고요.”
“그래? 근데 뭐 담고 정리하고 그럴라면 바닥이 뚫린거 보다 딱 막힌 상자가 낫지 않나, 저 가면 내가 챙겨놓은 노란박스 있다” (사실 이 말은 못알아들어서 두세번 다시 여쭌거다. 물론 이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내가 의역한 것)
“할머니 고맙습니다. 뭐 지금 잡숫고 싶은 거 없으세요? 우유라도 하나 사올까?”
“아이다, 방금 밥먹어서 배부르다. 돈 많이 벌어라” (아, 다시 기억하면서 적는대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너무 감동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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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그 박스를 하나 훔치겠다고 새벽 두시에 어슬렁거리던 모습에 부끄럽다가 그래도 안 가져왔으니 잘한게 아니냐고 위안하면서 상자를 박박 씼어 영업을 준비했다. 앞으로 아침마다 레몬차, 커피, 음료 등을 갖다드려야지 싶어서 나오면서 시장에 들렀는데 이렇게 일찍은 안나오시는 모양. 할머니 입맛에 너무 실가 싶어 달달하게 만든 레몬차는 들어가는 길에 드려야겠다.

사실 이 카페는 여러사람의 마음으로 만들어졌다. 싱싱이 빌려준 자전거, 봉길이가 빌려준 버너, 생각다방에서 볶은 커피콩, 할머니의 우유상자, 그리고 나를 응원한 친구들.

하루에 몇 잔을 팔든, 돈을 얼마를 벌든, 하고 싶었던 일을 해봤다는 게 중요하니까. 그리고 이미 예약손님도 2명이나 있지 않은가…

천천히 욕심부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기.
놀면서 즐겁게 행복하게,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서…
내가 부산에 내려와 있는 이유다.


자전거카페 산책자의 모닝커피 stroller’s morningcoffee
직접 로스팅한 신선한 커피로 갓 내린 핸드드립커피
핸드메이드 e레몬차

해운대 바닷가 파라다이스 앞쪽
매일오전 7시-9시 두시간.
9월 한달 영업.

 

하루에 내가 마시는 커피는 매일 한두잔 이상, 많게는 하루 다섯잔 정도를 마시기도 한다. 커피찌거기와 종이필터 쓰레기가 생기는 게 싫어서 융드립, 망드립 등을 해봤지만 그래도 커피찌거기는 생겨 냉장고 탈취제로 쓰거나 그냥 버리거나 했었는데 여기 기막힌 아이디어로 지구를 구하는 버섯 친구가 있다.

커피찌꺼기에서 버섯이 자란다.
버섯이 자란 커피찌꺼기는 좋은 비료가 되어 작물을 잘 자라게 한다.
(주)꼬마농부에서는 이런 자연의 순환을 체험할 수 있는 버섯재배키트를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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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커피장사를 하게 되면 하루에도 커피찌거기가 엄청 나올테지? – 그럼 거기다 버섯을 키워야겠다. 버섯도 따먹고 – 버섯이 자란 커피는 비료가 된다고? – 그럼 농사도 지어야겠네? – 상추와 부추씨앗을 사다 심었다 – 상추 싹이 나고 있다.

꼬마농부는 사실 지인이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키트를 하나 선물로 받아서 버섯을 키워 냠냠 한차례 수확해먹고 다른 쪽에선 매일생기는 커피찌거기를 모아 버섯농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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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버섯을 넣어 만든 갈릭올리오 스파게티.

201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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