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결국 효도다,
지금 내 모습은 누구에게나 당당하다,
엄마아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귀찮아서, 이제 나는 어른이니까, 내 한몸을 잘 간수하면 되니까, 라고 생각해도 집에 전화해서
“요즘 휴가철이라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 라고 말하는 것은 좀 껄끄럽긴 했다.
지난주는 엄마 생신주간이라 특별히 서울 자식네를 두 분이 방문하셨고,
주중하루밖에 쉬는 날도 없고, 사정을 말하고 임시 휴무를 받거나 다른 사람과 바꾸거나 하면서까지는 딱히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아 그냥 출장이라고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그런데, 사실 우리집에 와서 언니랑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어찌어찌하다가 알게되셨단다.
당연하지.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 순간 민망했을 언니한테 쫌 미안하네.
내가 내 맘대로 살고, 가족이 줄지도 모르는 부담을 덜 수 있는 건
엄마한테 거짓말해주고, 각종 정보를 발빠르게 전달해주는 언니 덕이니까.
저녁에 언니한테 연락이 왔고, 흐음 무언가 수습단계에 들어가야겠군. 하고 생각했는데 며칠 그냥 더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건 손편지를 써서, 혹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편지를 집에 부치는 방식. 아빤 그런 걸 좋아하실테니까. 편지는 당연히 좋아하실거고, 테이프는.. 해본적은 없지만 당연 좋아하실거다. 물론 친구 및 친지에게 자랑한답시고 막 틀어주고 후손대대로 놀림을 받을 것 같긴하다. 생각중.
그런데 며칠 후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안다,
아빠의 지지와 사랑이 지금의 내 영혼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엄마의 무던한 배려와 관심이 지금의 내 삶을 가능케했다는 사실을.
처음에 아빠가 삐졌다는 소식을 듣고, 아 귀찮게 달래야하나, 싶은 마음이 든 건 사실. (아부지 죄송해요)
뭐야, 지멋대로 이번에 또 회사를 그만두고 어딜 다녀, 라고 화라도 내셨다면 나도 똑같이 화내면서 싸울 수 있었는데 그런게 아니라 서운해 삐지셨다니! 역시 부모는 나이드시면 늙으면 전과 달라지는 것 같다.
아 물론 전에도 아빠는 내가 하는 일, 선택한 것들에 대해 격렬한 반대를 하지는 않으셨다. 대학졸업 한 학기를 남기고 휴학할 때 그러다 다시 복학하기 싫어서 졸업장도 못받으면 어떻하냐, 하는 순진한 걱정을 하시며 반대하시긴 했지만 그건 당신의 삶속에서 할 수 있는 걱정이었을 거다. (물론 당시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어떻게 간 대학인지 내가 아는데 이왕 들어간 거 졸업장 안따겠냐고 무시하듯 말하면서 설득했지만 – 물론 지금 대학을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고 지지하지만, 아직 나는 그 달콤한 혜택을 손수 찾아다니지는 않지만 은근 즐기고는 있을거다.) 호주 워킹을 갈 때를 비롯, 회사를 옮길 때,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갈 때 그냥 다 알아서 했다. 처음엔 소식을 전하기는 했었지만 나중엔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때까지 내버려두었지(아마 같이 사는 언니가 자연스럽게 그 타이밍을 알리는 연학을 했을거다. 내가 이렇게 자유롭고 편하고 내멋대로 살 수 있는 건 이런 가족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
2~3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호주 가기로 결심했을 땐, 한창 독립을 하고 싶어서 난리치던 때였다. 부모님은 언니랑 둘이 서울서 사는데 왜 독립을 하고 싶어하는지 이해를 못하셨지. “남자생겼냐?”가 첫번째 질문이었고, 난 그게 또 어쩜 그렇게 다른 ‘시시한’ 부모들하고 똑같을 수 있는지 경악하면서 “아아아아악- 말도 하기 싫어”하면서 반항을 했더랬다. 오빠도 손윗사람이랍시고 “니가 나가서 옥탑방이나 지하실같은데 밖에 더 살겠냐, 그러다가 생활비 떨어져서 친구들한테 돈이나 꾸고 다니고…그러기만 해봐 당장 고향집으로 데리고 내려온다” 라는 충고 및 협박을 했었다. 지금이야 그네들의 마음이 다 이해가 가고도 남지만, 난 그때 어렸으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얘기를 왜 하는지, 이런 거지같은 집구석이 있나하면서 구질구질한 내 인생을 탓하고 있었다. 집이 화목하기를 해, 형제간에 우애가 좋기를 해,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며….(아 이렇게 써놓고 보니 손이 오그라들어서 숨고 싶다. 부모가 언성한 번 높이지 않는 집이 어디 있으며 형제들이 맺는 우애라는게 얼마나 다양한지 지금은 알기 때문에. 우리 가족의 분위기, 관계는 우리가 만든 문화고, 적응하고, 또 갈등과 화해를 통해 좋은쪽이다 나쁜쪽이다 말할수 없는 그저 ‘가족’을 만들고 있는 거니까)
여튼. 집에서 부터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던 나는 외국행이라는 놀라운, 하지만 손쉬운 그리고 어렵지 않은 결정을 ‘그냥’ 하게 된다. 영어배우러 간다고 대충 둘러댈 수도 있고 남들은 미국에 고모도 있고 독일에 이모도 있는데 나는 아무도 없으니까 내가 알아서 혼자 가는 수밖에 없잖아. 이러면서.. 내가 모은돈으로 내가 아무한테도 손 안벌리고 가는데 이런 뿌듯한 일이 있나… 물론 그때도 엄마가 남긴 훌륭한 말씀이 있기는 하다.
“남들은(누구는) 국가장학금 받고 간다더라”
호주에서 만난 호주인들이 어머, 넌 여기 아는 사람 한명도 없는데 어떻게 올 생각을 했니, 용감하구나. 할때는 다른 한국얘들도 다 그러니까 하면서 대충 웃으며 뭉갰는데, 다른 한국 친구들이 오게 된 “투쟁의 역사”를 들으면서 우리집이 나름 “모던”한 집이란 걸 알게됐다. 아님 나를 자유롭게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그때부터 싹드기 시작했달까. (물론 김어준이니 다른 누구니 하는 방임방목형 양육의 예는 아니고 난 학교다닐땐 모범생이었고 그 모범생이미지를 담보로 적당히 선생들에게 양해 받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내 인생이 특별히 유난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이의 인생의 어떤 입장에서 유난하고 대단하고 특별하니까. 쓸데없는 자만이나 우월감, 열등의식 이런것들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노력하는 중.
여튼 “내돈으로 내가 호주간다는데 부모가 감히 어디서 반대를 해”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각종 각서와 약속을 통해 겨우겨우 “허락”을 얻어낸 20대 여자친구들을 보고 내 처지를 다행이라고 생각하게되었고, 우리 부모님을 좀 귀엽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방황하면서 취직하겠다고 공부할 때, 그러다가 시민단체에 활동가로 살때, 다시 그만두고 회사를 옮길때, 짤리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놀때, 다시 일할 때, 내 인생의 전환을 다 보고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 이게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연락을 좀 뜸하게 하면서 거짓말을 최소화하면서 살았었지.
작년에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 여행을 갈때는 아부지가 “너는 외국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으니 여행다니면서 살고 싶은 곳이 있으면 거기서 살아라. 안 돌아와도 된다. 나는 니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셔서 한바탕 언니들이랑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난 아빠가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진심도 아니면서 멋진 아빠처럼 보이고 싶어서 저런 말씀하시는군. 그런데 만약 그게 진심이 아니라 멋진아빠 코스프레였다고 해도, 충분히 멋진 아빠니까. 그런 가치를 지향하는 분이니까. 그런데 그런 분이..내가 이렇게 사는 거 말도 안하고 따박따박 거짓말하면서 마치 서울서 얌전히 회사다니는 것처럼 안부전화를 했으니…그래 서운하셨을 만도 하다…(아이씨 눈물날 것 같다)
일때문에 명절을 함께 못보내는 일이 많아지고, 그러다가 일과 사정 핑계를 대면서 명절에 내 맘대로 하고 산 지 3~4년 된 거 같은데. 이번 추석에도 그냥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거 같다. 여기서 만나 카카오톡으로 안부인사를 주고 받는 독일친구 수지는 추석이 크리스마스 같은 한국의 전통 명절이라고 하자. 이때가 기회라고 집에 가라고 하던데… “Go to your Family! in Germany Christmas is the fest of Love and forgiveness”
엄마나 아빠가 나를 “용서”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 찝찝한 마음을 어떻게든 풀긴풀어야지.
나는 당신들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걱정하는지 아니까. 그리고 그 방식이 구식이든 어떻든 감당해야한다는 것도. 진심을 의심하지 않으므로.
내 삶의 방식에 후회는 없지만 설명하기는 귀찮아.
설명하지 않고도 이해하고 지지해주었으면, 하긴 이미 부모나 가족은 그럴준비가 되어있는데 내가 그들을 과소평가하면서 무시하고 있는지도…
그렇지만, 나는 영원히 자식이다. 돌봄을 받던 시기를 거쳐 지금은 늙어가는 부모를 다르게 대해야 할 때라고 하지만, 관계맺음에 정답이 어디 있겠냐.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 천천히 방법을 찾아야겠다. 부모의 욕망이었는지 내 욕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했고 나쁘지않은 대학에 갔고, 거기서도 나름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다녔고 속썩이지 않고 졸업하고 취직했…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내가 늘 키우기 힘든 자식이었다고 하신다.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몰라 늘 전전긍긍하셨다고. 그런거다. 남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찝찝하게 나는 이만큼 희생했는데 왜 늘 나에게 더 많은 걸 요구하는가..하고 원망하게 된다.
부모에게 착한 자식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원하는 걸 포기한다면, 결국은 부모를 원망하게 되고
부모는 자식이 포기한 것 정도는 양에 차지도 않을테니까.
내가 좋은 대학에 가겠다고 12시까지 공부하고 자습하고 과외하고 학원다니고 그랬던 건 내 욕망이기도 했고, 부모한테 사랑받고 싶어서 이기도 했고, 전남최고의 모범생이던 언니들과 비교에 지레 짓눌려 그랬을 것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부모는 내가 서울대를 못간게 아쉽고, 내가 다녔던 대학에서도 장학금을 못받은 게 아쉽고, 졸업하고는 삼성같은 대기업에 못들어간게 아쉽고, 선생이 못된게 아쉬운 거다.
완벽하게 자유롭진 않지만, 나는 슬슬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하는 중이다.
행복하게 사는 것, 건강한 것. 결국은 그것이 가장 큰 효도이기도 할테니.
부모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이도 원망하지 않고, 내 맘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내 인생을 사는 것.
그나저나 삐진 아부지는 어떻게 달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