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2/09/03

생각다방산책극장 이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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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 한 명만 믿고 부산에 내려온 지 일주일쯤 됐을 때였나, 뭐하고 놀까 하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했다. 트위터에 새 계정을 만들어서 슬금슬금 근질근질한 입을 놀리던 때였다.

카미노를 걷고 있는 사람을 몇 명 발견해서 팔로했다.
좀 자세히 살펴보니 여러명의 여자친구들이 함께 걷고 있는 일행을 발견했고, 그 중 한 두 사람의 프로필을 따라가다가 그들이 부산에서 “생각다방산책극장”이라는 재미있는 곳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블로그에 들어가서 와르르르르 그녀들의 그간의 이야기를 알고, 그들의 여행을 구경하기를 하루이틀.

만나야겠다! 그리고 다방에 가봐야겠다. 어쩌면 그네들이 만들고 싶어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메일을 썼다. 카미노를 다 걷고 서울에 돌아올 때쯤 보내려고 했는데 또 근질근질, 바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 생각다방에 자주 드나드는 친구를 한명 더 알게 되었고, 그녀의 이름은 싱싱, 여자3호다. (서울의 내 친구들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이들을 “오다가다 만난 아가씨들”이라고 부르는데, 아가씨1은 메일을 보냈던 생각다방의 히요, 아가씨2는 생각다방을 함께 운영하는 이내, 아가씨3은 생각다방을 인연으로 만나 자전거도 빌려주고 함께영화보는 친구가 된 싱싱)

몇차례 멘션을 주고 받다가 어느 심심한 날 급만남 결정. 물론 나는 그때깍지 친구집에서 인터넷하고 놀고, 근처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동네 천변을 산책하고 우쿨렐레를 치고 노는 등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친구랑 하루종일 말없이 함께 있는게 좀 불편하긴했지만(친구는 재택근무하는 프리랜서) 밥 때되면 밥차려주고, 재워주고, 나의 하루에 아무런 관심도 불만도 없는 좋은 친구였다) 그러려고 부산에 온 거니까.

그렇게 나는 싱싱을 만나고 다방에 첫발을 디뎠다. 주인없는 다방은 약간 아니 많이 지저분한 상태였지만 귀여운 고양이 두마리가 반겨줬다. 그렇게 고양이랑 놀고 돌아왔다. 천천히 다방과 그 주변인물들을 만나면서.

그 즈음 나는 해운대 근처의 게스트하우스에 오전 5시간 일하는 청소알바를 구했고, 사실 먹고자는 자리를 원했지만 이미 한 사람이 일하고 있어서 출퇴근을 하기로 했다. 친구집과 해운대가 가까웠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날인가 다음날인가.

싱싱양한테 온 연락.
“히요네 집에서 머물면서 고양이 밥줄 사람 구한데요”
“오오~ 이런 일이”

고양이 두마리를 보살피던 친구가 일이 생겨 갑자기 고양이 집사가 필요하게 된 상황, 나는 살 집이 필요했고 고양이와 아가씨들은 집사가 필요했고, 나는 무려 출장보모 경력도 있지 않은가! (이 자리를 빌어 나와 함께 2주간을 살았던 호동이 안부도 잠깐 묻자. 주인언니가 여행간 사이 그 집에서 고양이를 돌보며 살았었다)

그렇게 친구집을 나와 대연동 생각다방 근처의 히요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이틀을 지내다가 게스트하우스에 먹고 자는 자리가 생겨서 그쪽으로 옮겼다. 원래 일하던 친구가 너무 힘들어서 갑자기 그만두고 잠적. 하하. 이런 상황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왠지 여기서 살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고양이집사노릇은 주인아가씨들이 올 때까지 해야하니까 며칠간은 출퇴근하면 고양이님들을 섬기고 아가씨들이 여행에서 돌아와 오늘에 이르렀다. 나는 자전거카페에 필요한 내 커피콩을 볶기 위해 다방을 로스팅작업장으로 이용하고, 자전거에 붙일 간판을 뽑기 위해 다방을 출력소로 이용하고, 드립 실력 향상을 위해 다방을 찾는 분들께 커피를 내리는 실습실로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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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다방을 통해 만나는 여러 인연들과 더 재미있는 일을 꾸릴수 있을 것도 같다. 사실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다, 그때그때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니까.

자전거카페 개업날, 아가씨2는 뮤지션으로 개업축하공연을 위해 평소 일어나본적도 없는 시간에 해운대까지 와서 노래를 불러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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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다방산책극장 블로그 http://blog.naver.com/beluckysuper

생각다방 히요마담(럭키슈퍼아가씨)이 소개하는 [멜리네 자전거카페] 산책자의 모닝커피 story

자전거카페 산책자의 모닝커피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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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주전자, 드리퍼, 커피를 담아 타고 다니다가 길거리에서 내려 파는 건 오래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었다. 물론 가장 하고 싶은 건 전기나 가스가 아닌 대체 자연에너지를 이용해서 물을 끓이는 것. 나한테서 나오는 쓰레기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싶었다.

부산에 오니 많은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난다. 우연치 않게 기적처럼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기다렸던 많은 일들은 정말 놀랄만한 결과를 준다.

생각다방 아가씨들을 만난 것,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면서 살 수 있게 된 것,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시도해볼 수 있는 용기와 베짱이 생긴 것,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도움.

어젯밤엔 이런 일도 있었다. 자전거 뒤에 달 짐상자를 찾아 그릇가게를 서성이다가 맘에 딱 맞는 걸 찾지 못했다. 좌판 할매들이 쓰시는 딱딱한 플라스틱 박스를 훔쳐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새벽에 시장도 어슬렁거리다가 그럴바엔 할매한테 말하고 하나 사자 싶어서 평소 한 번 양파인가 감자인가를 샀던 할매한테 접근.

“할머니, 이거 저한테 파시면 안돼요?”
엥. 하시는 표정. “뭐에 쓸라고?”
“아,, 뭐 담고 정리하고 이것저것….”
“뭘. 이런걸 파나, 그냥 줄라면 주지…”하면서 말끝을 흐리신다. “그래도 제가 너무 죄송하니까..음..그럼 제가 9월 한 달만 쓰고 도로 갖고 올게요”
“그래라” 흔쾌히 방법을 찾으셨다는 듯…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드렸지.
“사실 제가 아침에 바닷가에서 커피를 팔라고요.”
“그래? 근데 뭐 담고 정리하고 그럴라면 바닥이 뚫린거 보다 딱 막힌 상자가 낫지 않나, 저 가면 내가 챙겨놓은 노란박스 있다” (사실 이 말은 못알아들어서 두세번 다시 여쭌거다. 물론 이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내가 의역한 것)
“할머니 고맙습니다. 뭐 지금 잡숫고 싶은 거 없으세요? 우유라도 하나 사올까?”
“아이다, 방금 밥먹어서 배부르다. 돈 많이 벌어라” (아, 다시 기억하면서 적는대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너무 감동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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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그 박스를 하나 훔치겠다고 새벽 두시에 어슬렁거리던 모습에 부끄럽다가 그래도 안 가져왔으니 잘한게 아니냐고 위안하면서 상자를 박박 씼어 영업을 준비했다. 앞으로 아침마다 레몬차, 커피, 음료 등을 갖다드려야지 싶어서 나오면서 시장에 들렀는데 이렇게 일찍은 안나오시는 모양. 할머니 입맛에 너무 실가 싶어 달달하게 만든 레몬차는 들어가는 길에 드려야겠다.

사실 이 카페는 여러사람의 마음으로 만들어졌다. 싱싱이 빌려준 자전거, 봉길이가 빌려준 버너, 생각다방에서 볶은 커피콩, 할머니의 우유상자, 그리고 나를 응원한 친구들.

하루에 몇 잔을 팔든, 돈을 얼마를 벌든, 하고 싶었던 일을 해봤다는 게 중요하니까. 그리고 이미 예약손님도 2명이나 있지 않은가…

천천히 욕심부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기.
놀면서 즐겁게 행복하게,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서…
내가 부산에 내려와 있는 이유다.


자전거카페 산책자의 모닝커피 stroller’s morningcoffee
직접 로스팅한 신선한 커피로 갓 내린 핸드드립커피
핸드메이드 e레몬차

해운대 바닷가 파라다이스 앞쪽
매일오전 7시-9시 두시간.
9월 한달 영업.

 

하루에 내가 마시는 커피는 매일 한두잔 이상, 많게는 하루 다섯잔 정도를 마시기도 한다. 커피찌거기와 종이필터 쓰레기가 생기는 게 싫어서 융드립, 망드립 등을 해봤지만 그래도 커피찌거기는 생겨 냉장고 탈취제로 쓰거나 그냥 버리거나 했었는데 여기 기막힌 아이디어로 지구를 구하는 버섯 친구가 있다.

커피찌꺼기에서 버섯이 자란다.
버섯이 자란 커피찌꺼기는 좋은 비료가 되어 작물을 잘 자라게 한다.
(주)꼬마농부에서는 이런 자연의 순환을 체험할 수 있는 버섯재배키트를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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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커피장사를 하게 되면 하루에도 커피찌거기가 엄청 나올테지? – 그럼 거기다 버섯을 키워야겠다. 버섯도 따먹고 – 버섯이 자란 커피는 비료가 된다고? – 그럼 농사도 지어야겠네? – 상추와 부추씨앗을 사다 심었다 – 상추 싹이 나고 있다.

꼬마농부는 사실 지인이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키트를 하나 선물로 받아서 버섯을 키워 냠냠 한차례 수확해먹고 다른 쪽에선 매일생기는 커피찌거기를 모아 버섯농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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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버섯을 넣어 만든 갈릭올리오 스파게티.

201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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