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올 걸 생각하고 떠나는 건 여행이다. 며칠이 됐든 몇달, 몇년이 됐든 혹은 언제가 될 지 알 수는 없지만 돌아오기는 할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1년 계획으로 호주로 떠나던 때에도 ‘긴 여행이 되겠지만 잘 다녀올게요’ 라고 인사했다. 그때에도 지금도 생에 가장 긴 여행이었지만 돌아올 마음이 있으면 지겨워도 외로워도 힘들어도 아무리 일상을 산다고 해도 특별한 놀이에 불과하다. 끝이 있으니까. 그 외에도 갑자기 훌쩍 떠나는 여행, 한두 달 짜리 조금 긴 여행, 손님을 데리고 다니는 직업으로서의 여행, 혼자하는 여행, 모르는 사람과 하는 여행 등 꽤 많은 경험들이 쌓였다. 그리고 지금. 돌아올 때를 기약하지 않는 여행을 하고 있다. 목적지도, 예산도, 기간도 딱히 정해두지 않았다. 정해놓은 것은 몇가지. “재미있어야 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이런 생활을 오래할 수 있도록 돈이 덜 드는 방법을 찾는다” 등. 나는 지금 부산에 있다. 왜 부산이냐, 언제까지 있냐, 다음은 어디냐, 부산에 누가 있느냐, 하는 질문은 중요하지 않다. 어쩌다 이런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나에 대한 얘기는 할 수 있지만 길고 복잡할 테니 생략. 여행하면서 깨달은 진리는 “여행자에게는 기적이 일어난다.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된다” 그리고 지금부터 소개하는 사람들은 기적처럼 내게 찾아온 길 위의 만남이다.
#산티아고에서 대연동으로, 생각다방 아가씨들 1, 2, 3
2012년 7월 13일 목요일 오전, 부산행 무궁화호를 탔다. 전날 오후 4시 집안에 엄청난 일이 생겨 갑자기 귀향하는 줄로만 믿는 회사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짐을 뺐고 마지막 퇴근을 했다. 회사생활이 어땠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이글을 읽는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는 회사, 동료들, 업무가, 다른 회사의 그것들처럼 지겨워서 그런 거짓말까지 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지는 않다. 중요하고 보람있는 일이었고 사람들도 좋았다. 어쩌면 내가 회사를 다니는 방식, 회사에서 기대하는 것들, 내 삶의 태도를 정하지 못해서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일 게다. 그랬으니 작년에 그만둔 회사에 다시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거리낌없이 다시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일은 일. 어쩜 나는 회사라는 곳을 다닐 수 없는 인간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변명은 하지말자,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자. 견뎌내지 못하고 도망친 나를 책망하며 이왕 도망칠 거 멀리, 아름다운 곳으로 가기위해 산티아고 카미노 길 검색을 시작한다. 그때 알게된 다섯명의 아가씨들. 그렇게 스페인에 있는 두 명의 아가씨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자주 다방을 드나들던 아가씨 3과 만나 영화보고, 부산을 여행하고, 수다 떨고, 커피 마시는 친구가 되었다. 갈 곳이 마땅찮은 내가 만난 적도 없는 아가씨1의 집에 살면서 고양이들을 돌보고 아가씨 3의 자전거를 빌려 늘 꿈꾸던 길거리 핸드드립 커피스탠드를 시작하게 된 기적같은 이야기는 자세히 하지 않겠다. 기적은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이면 신비롭지 않으니까. 그렇게 자전거카페는 열렸고 아가씨2는 개업날 와서 노래를 불러주었고 나는 다방에서 로스팅 해온 커피로 매일 바닷가에 나간다.
#해운대시장 채소좌판 김할매
자전거카페 ‘산책자의 모닝커피’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만들어졌다. 자전거는 아가씨3에게, 물끓이는 버너는 직장동료 ㅂ에게 빌렸고 아이스박스, 물통, 빨래집게, 얼음, 물은 묶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신세를 졌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물품은 진한 초록색 플라스틱 우유상자. 해운대 채소좌판 김할매께 빌렸다. 자전거 뒷짐칸에 바구니를 달고 싶었던 나는 튼튼한 우유상자가 갖고 싶어 그릇가게 몇 군데를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마트나 시장 좌판에서 훔칠 생각으로 새벽 2시에 여기저기 서성이기도 했다. 차마 훔치지는 못하고 할머니와 거래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여쭈었는데 “뭘, 이런걸 팔아, 그냥 갖다써” 라고 쿨하게 말씀하셨다. 뭘 담고 정리하려면 이것보다 다른 게 좋지 않겠냐며 집에 있는 다른 상자를 보여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나와 김할매는 친구가 되었다. 그날 이후는 나는 매일 아침 김할매를 위한 커피를 만들어 배달했고 할매는 돈을 주겠다, 국수를 사주겠다, 가져오지 말아라, 하시다가 가끔 내게 감자, 고추, 고구마, 두부, 파 등 파시는 채소들을 조금씩 선물로 주신다. 며칠 전에는 두부 지져먹을 때 찍어먹으라고 최고품질의 들기름을 넣은 양념장을 한 통이나 주셨다. 이렇게 여행에선 기적같은 친구를 만난다. 엄마 생각이 나게 하는 할머니, 엄마에겐 짜증도 많이 내지만 남자 그만 재고 시집가라는 할머니한테는 귀여우시네, 하고 생각하며 속으로 허허 웃고 만다. 그렇게 타인을 통해 나와 나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이겠지. 물론 나는 아직 부모님께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처음 한달반은 멀쩡하게 서울서 직장을 다니는 척 하며 출장이라 바빠, 하며 전화를 드리곤 했지만 거짓말을 들킨뒤론 아직 전화조차 한 통하지 않았다. 벌써 2주째다.
#자전거카페를 찾는 산책자들
바다에서 바로 갈아서 내리는 나의 핸드드립 커피는 3천원. 절대 비싸지는 않다. 이미 예상하던 것보다 많은 매출을 올렸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진 않았고 하루에 다섯 잔? 많으면 열 잔 정도 팔릴거라 생각했다. 평균 석 잔 정도 팔린다. 그런데 불법노점 취급을 받으면서 몇번 공무원들과 얼굴을 붉히고 나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사아님’으로 업종 변경. 장사가 아니니 돈을 받지 않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내겠다는 분이 있으면 주는 만큼 받겠다. 물론 그 뒤로도 해운대구청 공원관리 담당 공무원 두 분은 탐탁치 않아하신다. 언제고 내 자전거를 압수해갈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게다. 그렇지만 가격정책을 바꾸고 나니 더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긴다. 교회에서 나온 거 아니냐고 수차례 묻는 할머니께 그냥 드리기도 하고, 500원밖에 없어 미안하지만 커피도 맛있고 니가 하는 일이 좋으니 공무원에게 대신 따져주겠다는 아주머니도 계신다. 여행경비에 보태라며 만원을 주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분, 우쿨렐레 연주에 1달러를 주고간 외국인도 한 명 있었다. 씨익 웃으며 동전을 넣어준 외국인도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170원. 하하 나도 나중에 여행 중 그렇게 돈을 넣을 일이 생기면 최소 천원은 넣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금액이었다. 타산지석. 전에는 “아줌마 커피 팔아요? 삼천원이요?” 너무 비싸다는 표정으로 돌아가시던 분들에게 그 돈 다 안주셔도 된다, 라고 말할 타이밍을 못찾곤 했는데 “그냥 주시는 만큼 받아요”라고 말하니 당황하시기는 해도 천원이고 이천원이고 주시면서 드시는 분들이 더러 있다. 맞아 누군가에게 커피 한 잔을 3천원에 사먹는 건 여전히 큰 사치일 테니까.
오늘 아침엔 조용히 다가와 연락처를 물으며 나중에 당신이 초대하겠다는 말을 해준 분도 있었다. 뮤지션 대우를 받다니! 하면서 감격해서 “근데 뭐하시는 분이세요?” 물어봤는데 이름을 대면 알만한 작곡가였다. 아오 챙피해. 어쩜 내 실력이 아주 뛰어나지 않아 실제로 그런일(초청)이 벌어지면 더 부끄러워질 지도 몰라 취미로 하는 거다,를 강조강조했지만. 만약 그런일이 벌어지면 스파르타 하드트레이닝에 돌입할 거다. 두 번이상 찾아주신 분들은 얼굴을 기억한다. 대부분 나의 이런 여행을 지지해주신 분들이었다. 젊을 때는 뭐든 해도된다. 맘껏 여행하고 맘껏 경험하고 잘 지내라는 모르는 이의 지지가 나를 더 진한 빛깔의 여행자로 만들었다. 열 번 이상 와주신 ‘단골 고갱’님도 계신다. 트위터에서 개업전부터 관심을 보여주시다가 꽤 자주, 친구와 함께 , 비오는 날에도 매상을 올려주신다. 아 그리고 부산을 떠날 때 경주까지 태워다주기로 하셨지. 여행자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때론 괴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그러다 기적처럼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을 또 만난다. 그렇게 여행은 계속된다.
#다른 길, 타임라인 위의 친구님들
나는 트위터를 좋아한다. 아주 거대한 채팅방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맘에 드는 사람한텐 말도 걸고 어떨 때는 실시간으로 톡톡 대화가 오고가기도 하고, 어떨 땐 며칠에 걸려 대답하고 묻고 언급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내가 10여년전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의 채팅방을 드나들며 숱한 번개를 했다는 사실은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아, 세이클럽을 통해 몇몇을 만나 원나잇을 했다는 사실은 좀 부끄럽구나. 중독이 아닐까 싶은 날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만큼 관계맺기,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대충 둘러대보자. 흑역사는 잊고.
내가 생각다방 아가씨들을 찾아낸 곳도 트위터였고, 단골 고갱님을 만난 곳도, 경주행을 결심하게 한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도 여기다. 그저 가볍게 시간을 때우는 농담따먹기를 하다가 때때로 서로의 취향을 확인하면서 내가 조금은 덜 외로워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실제르 많은 정보, 도움을 얻기도 한다. 이를테면 해운대에서 학창시절을 보낸이들에게 유명한 해운대 전설의 분식집이라든가, 취향의 차이로 일반인들이 말해주지 않던 각종 맛집들의 정보라든가…. 그렇게 트위터친구님들도 내게는 ‘온라인’ 기적을 만들어주는 분들이다. 그러다 현실 속에 기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커피를 좋아하고 바닷가에서 커피를 내리는 아마추어 커피인인 내게, 카페를 준비중인 한 친구님이 커피원두를 좀 보내주신 거다. 여기까지는 기적은 아니다. 그 분이 로스팅연습을 하면서 지인이나 원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보내주고 피드백을 듣고 하는 일을 원래 해오셨던 분이니까. 물론 내게는 그런 기회가 온것 자체가 작은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공짜 커피니까. 그런데 커피랑 같이 온 마음이 가득 담긴 선물들이 우리 만남을 진짜 기적으로 만들었다. 커피를 담는 봉투, 비타민, 술안주, 입술보호제 등.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전해졌다. 나는 경견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셨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술을 원래 안먹지만 술안주의 정성을 생각해서 맥주 한 캔을 마셨다. 이 사실은 비밀인데 (왜냐면 나는 공식/비공식적으로 술을 전혀 못먹는 사람이다. 진짜다. 굳이 먹는다면 일년에 맥주 2000cc 정도? ) 여기에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적에 점을 찍을 일은, 내일 그분이 부산에 오신다는 거다.
#내가 찾아간 다른 길위의 여행자들
이렇든 나의 여행길엔 숱한 기적이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늘 생각했다. 나도 여행자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 힘, 여건이 된다면 기꺼이 기적을 만들겠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겠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일하면서 묶는 게스트하우스의 몇몇 외국인 친구들과 놀러다녔다. 사실 그들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건 아니었지만 영어만 하는 친구들이 지하철을 두 번 세 번 갈아타고 산 중의 절이나 작은 마을을 찾아가는 것, 포장마차의 음식을 시켜먹는 건 조금 어려운 일이니까. 내게는 여행의 일부일뿐. 전혀 어려운일이 아니니까. 그렇게 러시아계 미국 이민자 20대 아가씨와 범어사를 갔고, 조개구이를 먹었고, 달맞이길을 걸었다. 그 아가씨의 옆 침대에 묶던 한국에서 독일로 입양된 30대 아가씨와 미월드에 가서 신나게 놀이기구를 탔다. 장난기 가득한 말레이시아 20대 남성 3인방과는 감천마을에 갔고 돌고래순두부, 동래파전, 포장마차 매운탕을 먹었다. 아, 커피집의 아가씨에게 초콜렛을 선물할 수 있도록도 도왔구나. 내가 원한건 어려움에 처한 외국 여행자를 짜잔 하고 구출해주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는 거였는데 우린 신나게 놀기만 했다. 그래도 나는 확신한다. 내가 더한 여행의 경험이 소중할 거라는 걸.
굳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만나고 친구는 생기고 기적은 일어난다. 그렇지만 여행중에, 길 위에서 그것들은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지금 나의 시간들은 생활인의 것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스스로 여행자라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재미있고 감사하다. 마을버스를 타는 것도, 시장에서 물건을 하나 사는 것도 그래서 다르게 느껴지는 거겠지. 물론 지난 나의 많은 여행들에선 진짜 기적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차도 끊긴 외딴 시골길에서 나를 태워다주러 짜잔하고 차가 나타난다거나, 잘 곳을 찾아 헤매다가 그냥 보이는 집에 들어가서 부탁했는데 재워준다거나. 그런데 또 써놓고 보니 이거나 그거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의 마음이 알아채지못하고 변하고 있다는 것도 기적이겠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었구나, 전에 혼자 조용히 하던 여행만큼 누군가와 함께 북적거리는 것도 즐겁구나.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앞으로 언제 어디서 여행이 끝날지 어떻게 계속될지 나는 모른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계속 기적은 일어난다는 점이다.
2012.9.20
생각산책 4호 <오려한> 에 보낸 글을 살짝 수정(오타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