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13 4월

[닦살06] 나물요원 쉬는날

닦고, 뜯고, 살아가라 (6)

두 번째 휴일풍경

비가 내린다. 좀 전에 나가보니 눈발도 약간 섞여있다. 며칠전엔 25도까지 올라가는 여름날씨더니 다시 영하 3도까지도 내려간다. 여기가 산골이라 그런가보다 하려는데 서울, 대전 뭐 그런 곳들도 비슷하다. 이상한 날씨, 불쌍한 지구탓이려니.

토요일은 쉬는 날이다. 앞으로 80여일, 열세 번의 휴일이 남았다.
시간은 빨리 갈 것이다. 산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정확하게는 금요일 오후부터 쉰다고 할 수 있다. 일하는 날의 하루가 8시 반 명상까지 가득차 있다면 쉬는 날은 4시부터는 자유시간. 외박하는 사람들은 그 때나갔다가 토요일 밤에 돌아와서 일요일 일정에만 차질없이하면 된다. 금요일엔 오전에 나물뜯고 포장하고 점심먹는 것까지는 같은데 낮잠시간을 줄이고 바로 오후 일을 나갔다가 4시 정도에 마친다. 이번주에는 두 명은 서울집에 갔고 한 명은 청주로 외박을 나갔다. 해서 어젯밤과 오늘아침에 밥먹는 사람, 명상하는 사람이 확 줄었다. 쉬는날 하는 명상은 평일보다 더 선택적이다. 평일날 명상도 의무는 아니라고 하지만 아파도 웬만하면 앉는게 좋다고 말하는 편인데 쉬는날 명상은 나오고 싶은 사람만 나오라고 한다. 다들 웬만하니까 그냥 나간다. 여기 사는 동안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앉는 것은 그저 습관 같은 것이니까.

토요일엔 일하지 않으니까 4시부터 6시까지 두 시간동안 앉는다. 두 시간 앉으려니 다리가 많이 아팠다. 일 시작하고 나서는 한 시간 앉는 것도 집중이 잘 안되어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글을 쓰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다 엉덩이가 하는 것이라더니 명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섯시에 아침식사. 한 명은 아침먹자마자 외출, 잠시 후 선생님과 여기 사는 여자분은 오늘도 일하러 나가셨다. 쉬엄쉬엄 나물이 난 밭을 찾아내는 답사라고 하신다. 뒤이어 두 명 더 외출, 남자친구가 토요일마나 괴산으로 오는 여자분, 다른 한 분도 그 차타고 외출. 그래서 집에는 나와 다른 남자분 한 분만 있다. 조용하다. 그는 오늘 하루 종일 명상을 하겠다 한다. 점심때가 가까워오지만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다. 아마 밥을 먹거나 좀더 있다가 천천히 먹거나 할 것이다.

여기까지 적어놓고 점심때가 되어 기웃거리니 푸른누리에 남아있던 한 분이 부엌에서 밥을 비비고 있다. 다들 어디갔냐며… 나는 아무도 없다 알려주고, 라면이나 사다 먹자고 제안, 그는 이미 밥을 비벼서 한 술 뜨려는 찰라였는데 얼른 함께 먹은 뒤 둘이서 신라면 2개를 사다 끓여먹었다. 신라면 사러 구불구불 길을 내려 큰길가 점방으로 가는데 선생님의 차를 발견하고 식겁, 약간 긴장하고 되돌아와야 하나 한쪽에 차를 대고 선생님 차를 살피니 다행이도 차는 유치원다녀오는 어린이를 차에 태워 집이 아닌 다른곳으로 간다. 으하하하, 산골마을에서도 윗사람 몰래 먹는 시트콤같은 상황을 연출하다니…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는 라면 두 개를 사서, 내가 물양을 잘못조절했다며 뜨거운 물을 조금 더 끓여 부었다. 어떻게 먹는 라면인데 실패할 수 없다는 그의 강한 의지! 실컷 먹고 밥까지 말아먹고 그가 아껴두었던 단팥이 든 튀긴찹살 도너츠도 2개와 초콜렛이 발라진 두꺼운 비스켓도 나눠먹었다. 그는 어제 엿만 먹지 않았지 여전히 군것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 오늘 명상도 잠이 와서 생각보다 많이 못했다고. 점심먹고 같이 앉자고 했는데 둘다 잠들어서 선생님과 외출한 분이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난 지금에야 겨우 일어났다. 그는 저녁을 먹고 바로가서 두 시간 남짓 앉을 모양이다.

지난주엔 아침나절 집에서 쉬고 불장난하고 글쓰고 놀다가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근처 화북면에 다녀왔다. 오르락내리락하는 12킬로미터의 길, 한 시간이 걸렸다. 도착해서 30분 정도 친구랑 전화하고 놀다가 돌아오는 길 한 시간, 집으로 들어가는 샛길을 지나쳐 이평까지 달렸다. 차도 사람도 없는 한가한 길이 작년 뉴질랜드 자전거여행을 생각나게 하더라. 물론 거기는 넓은 들판, 넓은 산, 큰 도로, 뭐든 시원시원했지만 우리네 길은 비닐하우스 여러개 동동동, 집도 동동동, 길도 좁고 오밀조밀 작은 것들이 여러개 복잡하게 늘어져있다. 그렇게 기분좋게 달려 집에 들어왔다. 그.랬.는.데 그날도 마찬가지로 일하러 나가셨던 선생님은 바깥에서 뿌리채 캐온 몇가지 나물들을 뒷밭에 옮겨심고 계셨다. “바닥, 얼른 옷갈아입고 와라. 여기 재밌는 일한다” 헉, 지금 나 일 시키는 거임?

대답하지 않고 방에 들어가서 일단 누웠다. 중간중간 많이 쉬기는 했지만 세시간만에 집에 돌아온 터였다. 라이딩 시간으로만 따지면 두 시간. 돌아오는 길에 ‘아 집에 가서 땀에 젖은 옷 빨고 좀 누워서 쉬다가 명상하고 자면 오늘 하루가 완벽하게 마감되겠군’ 싶었는데 숨도 헥헥거리면서 집에 들어온 사람한테 일을 하라니, 일을 하라니, 일을 하라니. 게다가 오늘은 쉬는 날인데, 쉬는 날인데, 한 사람은 애인만나러 자기차 끌고 나가고, 한 사람은 애인이 직접 여기까지 찾아와서 밖에 나갔는데 집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불려가다니, 불려가다니, 불려가다니. 시위하듯 옷을 갈아입지 않고 밭으로 나가서 멍하니 쳐다봤다. 그때까지도 넵 대답하고서 일을 하겠다는 태도를 적극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치만 아무도 못알아챈듯. 선생님은 이리와서 이거 이렇게 저렇게 해라 라고 업무지시를…나중에 들어보니 선생님 따라 일갔던 분 한 분은 내가 대답을 좀 미적거리면서 하더라고 말했다. 나는 어쩔수 없이 슬리퍼 신고 그냥 일을 천천히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계속 화가났다. 왜 나는 쉬는날 일하고 있나, 쉬는날 집에 있으면 이렇게 일을 시키는 건가, 나가놀지 않겠다는 좋은 마음은 왜 이렇게 이용되는가, 하기 싫습니다, 그만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열번도 더 생각했다. 그 사이 외출했던 한 사람이 돌아와 자연스럽게 옷 갈아입고 일을 함께했다. 평소보다도 늦은 여섯시반쯤 일이 끝나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나는 저녁을 먹지 않으니까 시무룩하고 화난 표정으로 씻고 방에 들어갔다. 더 늦게 돌아온 사람에겐 나한테 일시켰다고 와르르르 선생님 흉을 보면서…

잘 모르겠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쉬는 날 일하지 않기로 해놓고선 나만 억울하게 일했다는 마음이 제일 컸던 것 같다. 선생님은 한 두시간 밭일 도와주는 것쯤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와서 좀 도우라고 했던 것도 같고. 그렇지만 공식적으로 첫번째 휴일이었고 나는 나름대로 이렇게 쉬겠다하는 계획이 있었는데 일을 하게 되어 속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 혹시 남들 나가면 집에서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니까 돈이 안 드는데 나는 집에서 먹고 자고 계속 지내니까 밥값이라도 해야한다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고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매끼 누군가는 밥을 하고 차리고 설겆이를 해야한다. 방에 불도 떼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밥준비를 하고 불을 떼는 건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밭일은 나에게 엄연히 일인데 선생님이나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도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나한테 함께 와서 하라고 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음주에는 밥도 안 먹고 아침 일찍 나가서 종일 걷다가 저녁늦게나 들어오겠다고, 아님 방문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와서 나갈 수가 없었지만. 그런 화도 하루이틀 지나니까 수그러들기는 했다. 그렇게까지 화가날 일인가, 한두시간쯤 집에 놀고 있는 사람 일하라고 할 수도 있지, 담에 웃으면서 쉬는날인데 이렇게 일하면 나중에 한 두시간 쉬어도 되나요? 라고 묻거나, 묻기전에 사정에 따라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군.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다 일하고 있는데 혼자서 방에서 누워 자는 것도 편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난 만약 그럴일이 생긴다면 꼭 그렇게 하겠다고 여전히 마음먹고 있다.

선생님은 온날나물뜯기에 참여해 살기 시작한 우리 여덟명에게 본디 여기 살고 있던 세 명을 합친 열 한 명이 살면서 모두가 살고 싶은대로, 좋게, 행복하게 살자고 말씀하셨다. 바깥에서 사는 일이야 스트레스도 많고 눈치도 보고 싫은 것도 해야하지만 여기 우리끼리 살면서는 그러지 말고 모두에게 좋은 대로 맞춰보자고 하셨다. 그런의미에서 쉬는날 일을 해서 화가나면 내 화가 그냥 나는 건지, 아님 쉬는날 쉬어야 하는데 쉬지 못해서 당연히 나는 화인지 짚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한주 한두시간, 한번 가지고는 잘 모르겠길래 오늘 상황을 보려고 했는데 오늘은 쉬었으니 패쓰. 다음번에 기회가 생기면 한번 더 생각해봐야겠다.

저녁은 평일과 마찬가지로 일곱시 반부터 한 시간 동안 앉는다. 집에 있는 사람은 웬만하면 앉을테고 외박을 나갔던 사람은 명상 시간 중에나 끝나고서야 집에 도착하니 조용히 밤을 보내고 각자 하루를 마감한다. 나도 오늘은 좀 일찍 가서 오래 앉아야 겠다.

[닦살05] 뭐라도 먹고싶어 미치겠는 버릇

닦고, 뜯고, 살아가라 (5)

뭐라도 먹고싶어 미치겠는 버릇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다. 세 시간 전 밥을 먹었고 수저를 놓기가 힘들었는데 다른 할 일이 있어 겨우 수저를 놓고 방에 돌아와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부엌에 몰래 들어가 오디 한 숟갈을 퍼먹었다. 몸을 뉘였다가 불 앞에 가서 불을 쬐다가 이리저리 왔다갔다 멍하니 있다가 물을 한 병 들이키고 방에 자리를 잡았다. 담배끊는 이들의 금단현상이 이럴까. 지금도 속은 더부룩하여 좋지 않은데 무언가 단 것, 따뜻한 것, 쫄깃한 것… 그런 것들이 먹고 싶다.

지난 주 휴일과 어제일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또 무언갈 먹는다고 이 갈증과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걸 그대로 지켜보고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위빠싸나 마음닦기일텐데 쉽지 않다. 첫번째 휴일을 맞이하는 지난 금요일 오후 나는 근 한 달여만에 저녁을 그것도 매운 짬뽕을 먹었다. 후식으로는 초콜렛 아이스크림, 초콜렛 과자, 마이쭈 등을 순식간에 먹었고 속이 미식거리고 어지러운 가운데도 남은 과자 모두를 해치웠다. 당연히 배는 탈이 났다. 일주일동안 아껴먹는다고 많이 사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물론 이미 먹은 양만으로도 충분히 많다. 그리고 어젯밤도 마찬가지. 선생님이 오랜만에 사주신 엿, 센베과자를 양껏 먹고 방에 들어와선 같이 사는 분이 선물로 준 밀크카레멜 한 통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속은 역시 불편했다.

열흘동안 마음닦기를 할 때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조용조용 천천히 밥을 꼭꼭 씹어 혼자 먹고 다른 먹을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은 일을 시작하고 나서 3주쯤 되었는데 처음에는 군것질 생각도 안나고 저녁을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더니 요즘은 저녁에 살짝 배도 고프고, 낮엔 밥을 먹고 빵을 정신없이 먹는다. 빵은 같이 지내는 사람 중 한 명이 건의해서 일하는 중간 참을 먹지 않는다면 밥먹고 나서 빵이라도 한 조각 먹는 게 어떠냐는 제안으로 먹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밥 먹고 빵을 먹는 게 후식도 아니고 뭣도 아니어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빵만 보면 행복해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선생님께서도 빵을 먹는 게 좋을 게 없지않냐 하시다가도 이렇게들 좋아하는데 먹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 한다.

같이 지내는 분 중에 한분은 아침을 드시지 않는다. 이유를 자세히 묻진 않았지만 공복에 일하는 것이 생각만큼 힘들지 않다고 하신다. 50대 남자분, 사실 일도 제일 많이 하신다. 나를 비롯 저녁을 먹지 않는 사람은 몇 있지만 저녁식사 이후에는 일이라든가 활동이 전혀 없기 때문에 속을 비우면 명상하기도 잠들기도 좋은 점이 있지만 아침식사는 힘들 것 같다. 하긴 밥 먹는 것도 사실 모두 버릇, 하루에 한 끼를 먹든, 두 끼를 먹든, 세 끼를 먹든 정해진 시간에 적당한 양을 먹으면 되는 거라곤 한다. 배가 고플 땐 배고픔을 느끼고 바라보고 알아차리다가 밥 시간에 밥을 먹는 것, 그것 또한 위빠싸나에서 순간의 느낌을 알알차리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지금 나의 이 허전함은 가짜다. 먹고 나서도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전에도 수없이 많았다. 배는 안 고픈데 뭔가 먹고 싶다. 맛있는 걸 먹고 싶지만 그땐 뭘 먹어도 맛있지 않다. 어쩔수 없이 주변에서 가능한 먹을거리를 찾아먹는데 주로 라면, 치킨, 피자, 떡볶이, 과자,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이 되고 먹고 나서 후회까진 안해도 속이 거북한 느낌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먹어야 그 마음, 몹시 바라는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 같다. 아니 사라지지 않고 다른 속불편한 마음이 그 자리를 메운다. 허전함, 불안함을 지긋이 바라볼 수 없어서 막 먹고 익숙한 더부룩함으로 도망가는 것 같다. 이렇게 산골에 들어와 공동생활을 하는 데도 쉽지 않다. 혼자서 어떻게 단식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까.

여기서 만난 이 중에 명상을 꽤 오래하신 분이 있는데, 휴일인 오늘 그는 종일 앉겠다고 아침먹고 나서부터 계속 명상홀에 있다. 그도 지난주까지는 그랬다. 휴일날 나와 같이 가서 짬뽕을 정신없이 먹고 과자를 먹고, 맡은일 때문에 시내로 나갈 때는 가게에서 초콜릿, 과자등을 잔뜩 먹고 돌아왔다. 그런데 며칠전부터 과자를 먹지 않는 것 같다. 어제는 선생님이 모두에게 사준 엿도 거절하고 명상시간을 늘리고 있다. 도시입맛에 길들여진 우리들(여기 나물뜯으러 모여 살고 있는 사람들 8명)은 모두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다. 쉬는날 시내로 외출한 사람들은 정신없이 조미료가 들어간 식당음식, 커피, 과자, 군것질 거리들을 배가 허락하는 만큼 계속 먹는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인거다. 그리고 이 허전함을 비껴가지 않고 어떻게 마주보고 지나치느냐가 중요한 것일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처음보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저녁을 먹지 않고 근 한달을 살아온 게 참으로 대견할 일이네, 생각해보니.

[닦살04] 나물요원의 하루

닦고, 뜯고, 살아가라(4)

나물요원의 하루

푸른누리의 하루는 종소리와 함께 새벽 4시에 시작한다. 아직은 캄캄하고 싸늘한 공기를 가르며 다들 명상홀로 조용히 걸어간다. 부지런한 누군가는 훨씬 전에 명상홀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그렇게 은은한 불빛 아래 한 시간 동안 위빠싸나를 닦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명상만 하던 열흘에 비해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아 아나빠나(숨을 알아차리는 명상)를 주로 한다. 처음 잡은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아픔을 느껴보는 것(아디타나로 앉기)도 위빠싸나 명상의 일부인데 잘 안되어서 많이 뒤척인다.

길고 긴 한 시간이 지나면 선생님께서 작은 종소리로 명상이 끝났음을 알린다. 바로 아침식사.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물 뜯는 데 필요한 칼, 자루 등을 챙겨 6시쯤 집을 나선다.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20~30분 정도 차를 타고 인근의 산이나 밭으로 간다. 그리고 각자 자리 잡은 곳에서 나물을 뜯는다. 이른 봄인 요즘은 원추리, 뱀도랒, 꽃나물, 구릿대, 머위, 냉이, 삼나물, 참나물 등이 나오는데 주로 앞의 네 개를 뜯는다. 다년생 식물들이라 스무날쯤 지나면 또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나 있다고 한다.

네 시간 정도 나물을 뜯고 다시 푸른누리로 돌아온다. 그날그날 뜯은 나물을 바로 포장해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 안에 봉지에 정량을 담아 청주로 보낸다. 괴산이던가. 정확히 지명이 기억나지 않는다. 트럭을 운전하는 한 분이 담당해서 주로 간다. 나물을 넣을 때는 여러 사람이 뜯은 걸 한 데 모아 골고루 섞이게 뒤집은 다음 600g씩 담는다. 저울에 달아 비닐무게와 말랐을 때 줄어들 무게를 감안하여 조금 넉넉하게 한 개를 만든다. 뜯을 때 지푸라기나 흙을 털지만 봉지에 담으면서 발견한 것들도 빼고 혹시나 나쁜 풀이 섞여들여가지 않도록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나물의 종류와 먹는 법을 적은 작은 종이를 함께 넣고 비닐에 담은 뒤에 종이상자에 세 개씩 넣어 트럭에 차곡차곡 쌓는다. 보통 이 작업은 수량에 따라 다르지만 요즘 처럼 200개 이하밖에 안 나올 때는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어제 같은 경우는 많이 먹으면 위험할 수도 있는 풀이 섞여 들어간 걸 뒤늦게 발견해 이미 포장이 끝난 비닐을 하나하나 다시 뜯고 펼쳐서 그 풀을 꼴라내기도 했다.

아침에 눈이나 비가 오면 6시에 바로 나물을 뜯으로 갈 수 없을 때도 있다. 너무 추워 나물이 얼어 있으면 나물을 뜯어도 보낼 수가 없기 떄문이다. 낮에 날이 풀리면 자연스럽게 다시 살아나지만 아침에 얼어있는 나물을 뜯으면 버리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추운 날은 해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하거나 추위에도 괜찮은 나물을 우선 뜯는다. 며칠인가 무슨 요일인가보다 오늘 비가 오는가, 바람이 많이 부는가, 날이 추운가, 볕이 좋은가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이는 생활이 참 자연스럽다. 농부가 된 것 같아 으쓱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반복하면서 자세나 물건을 놓는 위치에 따라 작은 노하우들이 쌓이는 단순작업이 즐겁다. 리듬이 생겨서 착착착. 그렇게 상자를 가득 실은 트럭이 떠나고 나면 우리는 점심을 먹는다. 물론 트럭을 몰고갈 사람은 서둘러 일찍 점심을 먹고 떠났다.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고 느긋하게 점심을 먹는 시간. 그 뒤로 2시까지 휴식. 대부분 사람들은 낮잠을 잔다. 부지런한 선생님과 푸른누리에 원래 살던 식구들 여럿은 그 사이에도 묵나물을 만들기도 하시고 뭔가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기운도 좋아. 우리도 오래살면 잔근육도 생기고 기운도 좋아져서 일을 많이 해도 지치지 않을까? 난 아침나절 네 시간의 나물뜯기도 두세 시간 지나고 나면 언제 끝나나 시계만 보고 있을때가 많은데…

다시 오후일 나갈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차를 타고 또 다른 장소를 찾아 떠난다. 집에서 해야할 일이 있는 사람은 남아 있기도 하고, 두 시반까지 아까 떠났던 나물트럭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조금 늦게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되었던 오전과 비슷한 일이다. 나물을 뜯는다. 오후는 두 시간이나 두 시간 반 정도. 오전보다 짧은 시간이지만 날도 춥지 않고 흙도 젖지 않아서 일하기가 수월하다. 그리고 오후에 나물을 많이 뜯어놓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이 나물과 내일 오전에 뜯는 나물을 합하여 내일 오후에 같은 방법으로 차에 실어 보낸다.

푸른누리에는 일곱 살 난 여자아이가 한 명 같이 사는데 그 친구는 요즘 유치원에 다닌다. 아침에 일나갔다 포장하러 돌아오는 10시 경에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오후 일이 끝날 시간에 먼저 돌아오는 차가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온다. 아이는 또래 친구는 없지만 돌봐주는 어른이 여럿인 작은 마을에 사는 셈이다. 누구든지 함께 놀고 돌본다. 함께 아이를 키우는 건 멋진 일인 것 같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좋을 때와 싫을 때가 있고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 아이와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내가 못한다고, 안한다고 마음이 불편한 일은 없으면 좋을텐데 아이를 귀찮아하는 나를 보면 다른 사람이나 아이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내 마음이 너그럽지 못한가 싶어서 생각을 좀 하게된다.

오후에 집에 돌아와 여섯시쯤 저녁을 먹고 쉬었다가 일곱시반 부터 여덟시까지 한 시간 위빠싸나 마음닦기를 마치고 마무리 모임을 하면 완전히 하루 일과가 끝난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만큼 일찍 끝난다. 보통 아홉시나 열시쯤 잠든다. 잘 때쯤엔 아침일이 아득하게 어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단순하고 아름다운 생활이 좋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니 갈등은 생길테지만 서로의 슬기를 모아 잘 해결하고 마음을 닦으며 평탄하게 살 것이다. 어쩌면 평탄해보이지만 마음은 시끄러울 수도 있다. 같이 사는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자주 거슬리거나 아이를 귀여워하지 않는 나를 받아들여야 할 때 같이 내 마음 안에 일렁이는 감정들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 것 같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일이 몰리는 상황이나 서로 피곤하여 짜증을 내는 상황처럼 모두의 눈에 보이는 문제나 갈등 상황이야 마무리 모임때 대화로 풀거나 당사자와 어떻게든 해결을 하겠지만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내가 알아서 더 많이 생각해보고 명상하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할 테니까. 시간이 더 흐르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할것같다. 너무 같은 생활. 많지 않은 자유시간, 그 안에서 뭘 해야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그렇지만 지금 당분간은 날마다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경치에, 좋은 공기에, 흙냄새를 귀하게 여기면서 살아가겠다. 아홉시만 되어도 총총 빛나는 별들이 가득한 하늘을 볼 수 있음에 감동하면서.

[닦살03] 세 번째 위빠싸나 명상

닦고, 뜯고, 살아가라(3)

세 번째 위빠싸나 명상

내가 처음으로 위빠싸나를 만난 건 2005년이다. 워킹홀리데이비자로 호주에 가서 남들처럼 영어학원 다니고, 농장에서 일하고, 건물청소 일도 하고, 영어과외도 하고, 동네주민들과 친해져서 노부부댁에서 파티도 하고, 자전거도 타러 다니고, 학원에서 만난 스위스친구랑 호주여행도 하고 그러던 시절 우연히 공짜로 먹고 자고 하는 명상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열흘동안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공짜. 묵언. 명상. 듣기만 해도 재미있는 조합이었다. 신청서를 보낸 뒤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가는 방법이 정확하지 않아 몇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머물던 집의 호주아저씨가 아무래도 자기 생각엔 안내되어있는 A역이 아니라 B역에서 내려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그런가, 하면서 끝까지 아리송한 마음으로 출발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그냥 아저씨 말대로 B역에서 내렸다. 나말고도 몇몇이 더 내렸고 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이 사람들 내가 모르고 못찾아왔으면 어쩔뻔했어.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잘 찾아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위빠싸나는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단 접수를 하면 방을 배정받고 가지고 있던 전화기나 책, 수첩 등을 주최측에 맡긴다. 오롯이 명상에만 집중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무언가를 따로 적거나 읽거나 생각하는 일을 금지한다. 어떤 친구는 너무 심심해서 디지털카메라 설명서를 막 읽어봤다고 했고, 자세히 안내받지 않고 선생님 말씀을 적어내려가던 친구는 “적지 않습니다. 외거나 적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직접 마음을 닦으세요”라며 제지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흘 동안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두 시간 명상, 그리고 아침 식사 후 약간의 휴식, 세 시간 명상 후 점심식사, 다시 세 시간의 명상 후 한시간의 간단한 저녁식사 또는 휴식, 한 시간의 명상 후 담마이야기를 들은 후 질문을 주고 받고 여덟시나 아홉시 쯤 잠이 든다.

2005년 11월 호주에서 첫번째 열흘코스를 마친 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좋은 기분과 행복해진 마음으로 집에서도 계속 아침저녁으로 앉아서 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한 일주일쯤 시도했을까 그러다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다시 무얼하며 살아야 하나 방황하다 겨우 마음 잡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지 반 년 째 답답함과 괴로움이 밀려왔다. 가까운 친구가 지난 번 호주에서 했던 그 명상코스를 다시 참여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주어 한국에서 열리는 코스에 참여했다. 영어로 진행된 코스에 따로 한국말테입을 듣는 등 배려를 많이 받았지마 지도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나 다 같이 듣는 이야기들을 정확히 알고싶어 한국어로 된 코스에 언젠가 참가하고 싶다고 생각해오던 터였다. 그런데 솔직히 그 두번째 코스는 어떻게 지났는지 거의 기억에 없다. 같이 코스에 참여했던 사람들 누구도 기억나지 않고 지도했던 선생님이나 명상할 때 기분 같은 것들은 생각나지 않고 열 명도 넘게 다 같이 묶었던 큰 방에서 누군가 자꾸 말을 했고,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굴었던 기억만 난다. 대만 지도 선생님이 진행하셨고 통역이 있었지만 한국어코스가 그리웠던 나는 실망했다. 첫번째 코스때는 선생님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명상을 하라고 했었는지, 그리고 명상하다 어떤 종류의 딴생각이 들었는지, 모두가 한 시간동안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을 때 얼마나 고요하고 신비로운 느낌이었는지 등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말이다. 실망만 가득 안고 두 번째 코스를 마친 뒤에는 명상이라는 것에 회의가 들었다. 일년 내내 일상적인 사회생활, 거짓말, 나쁜 마음, 마음을 더럽히는 행동들을 잔뜩하다가 회개하듯 열흘 명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위선자 같달까. 아무리 방을 어지렵혀도 가끔씩은 청소하는 것처럼 마음의 때도 닦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가까운 분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위빠싸나는 내게서 잊혀져 갔다.

그러다 나물뜯기 모집글에서 위빠싸나를 다시 만났다. 나물뜯는 산골생활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어보였는데 위빠싸나 열흘코스도 포함되어 있다. 훗, 나한테 이정도 쯤이야. 자발적으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 뿐이지 부러 위빠싸나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좋지 않은 기억은 다 사라져 없고 좋은 기억만 어렴풋 남아있으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시도해보고 싶기도 했다. 차라리 지금 이렇게 괴로운 생활을 마치기에 좋은 기회라 여겨졌다. 처음 코스 때는 둘이서 방을 같이 썼는데, 여기서는 독방을 준다. 호주 선생님, 대만 선생님이에 이어 드디어 처음으로 한국말을 쓰는 선생님께 지도를 받게 된다.
열흘동안 내내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자세히 듣지 못했던 담마이야기도 훨씬 마음에 와닿았고 잘 몰랐던 마음닦기의 방법도 새로 배웠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가 물어볼 수 있었다. 첫번째 두번째와 차원이 다른 울림이 있었다. 물론 종일 앉아 있다보면 다리가 저리고 조여오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어깨는 짓눌리는 듯하고 머리를 깨질 것처럼 아팠다. 지난 번에도 이렇게 아팠나 싶을 만큼. 그렇지만 숨을 알아차리고 몸이 느낌에 마음을 모으면서 딴생각이 들거나 졸릴때 어쩔 수 없이 마음껏 상상하고 잠들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다시 마음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하고 잠을 깨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새벽에는 잠이 오지 않아 서너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마음을 잘 닦아가고 있으면 마음이 시끄러울 일이 없어 잠으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붓다는 두 시간 정도 몸을 뉘어 쉬시고 잠을 전혀 자지 않으셨다 한다. 신비로운 어떤 경험이 확 느껴지진 않았지만 조용히 마음이 울리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위빠싸나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지난날 쌓아온 빠라미(공덕)때문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위빠싸나를 만났다가 헤어질뻔 했던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만나게 된 것, 큰 울림을 갖게 된 것 역시 상당한 빠라미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게다가 지금은 앞으로 석 달 동안 아침저녁으로 계속해서 앉을 수 있으니 내 몸에 자연스레 버릇이 들지 않을까 기대된다. 열흘 코스 동안에 가벼운 저녁을 먹기도 하고 먹지 않기도 하는데(지난 두 번에서는 먹었고, 두 번째 이상하는 사람들은 먹지 않거나 차만 마셨다) 이번 코스에서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원래 위빠싸나를 닦을 때는 해가 진 뒤로 속을 완전히 비우는 것이라 한다. 그렇게 열흘을 지내보니 지낼만 했다. 물론 운동량이 전혀 없어서 배가 고플새도 없었겠지만 약간 허기진 가벼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열흘코스가 끝나고 저녁이 나오는 첫날,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유난을 떠는 것도 그렇고 배가 고플것도 두려워서 그냥 먹었는데 저녁내내 속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은 저녁을 먹지 않았따.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저녁을 먹지 않을 생각이다. 진짜 배고파서 먹을 때보다는 그냥 때가 되었으니까, 입이 심심하니까, 뭔가 먹어야 할 것 같으니까 먹을 때가 더 많았다. 그 허기는 진짜 허기가 아니라 마음의 허전함과 결핍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걸 끊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래저래하다가 배가 터질듯 많이 먹고, 심심하면 몸에 좋지도 않은 군것질거리를 입에 달고 살고, 뚱뚱해지는 자신은 맘에 들어하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나는 식탐이 강하니까, 라는 말로 웃어넘기다가도 단식이라도 해서 이런 식습관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는 있었다. 군것질이나 과식을 하지 않겠다는 건 내의지가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저녁을 먹지 않겠다는 건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는 잘 지키기 어려운 결심이다. 직장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저녁을 먹지 않기가 어렵고 친구나 가족들은 진심으로든 그냥 하는 말이로든 왜 저녁을 먹지 않느냐, 무조건 굶는게 수가 아니다, 건강에 안 좋다 등 자신이 아는 지식과 오해를 총동원하여 말을 보탠다. 물론 여기서도 남의 눈이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다. 조금씩 먹으면서 줄이는 게 더 낫지 않겠냐, 살 많이 빠지겠네 하며 말을 더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푸른누리에서는 남을 신경쓰지 말고 남에게 뭐라하지도 말며 자유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선생님은 저녁을 먹지 않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라고 가능하다면 시도해보라고 지지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저녁을 먹지 않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닦살02] 여기 위험한 데 아니야? 아니 허름한 데야

닦고, 뜯고, 살아가라(2)

여기 위험한 데 아니야? 아니 허름한 데야

상주 푸른누리의 “온날 나물뜯기”는 처음 열흘 위빠싸나 열흘 코스와 붙어 총 110일이다. 열흘 명상을 마치고 열흘 나물을 배운 뒤 4월 초순부터 석달간 나물요원으로 투입된다. 일찍 일어나는 시골살이, 나물뜯는 농사일, 깔끔한 채식밥상, 위빠싸나 명상, 돈벌이까지. 가슴이 떨리는 모집글을 보고 하루 정도 고민한 뒤에 신청서를 써서 보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친구 몇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완전 재밌는 거 발견했어. 산에 나물캐러 갈거야. 명상도 하고 월급도 백만원이나 준데. 나주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멀리 가버리면 아쉬워서 어쩌나 하는 친구, 몸이 엄청 힘들텐데 석달을 견디겠나 걱정하는 친구, 그래도 재미있어보인다며 너에게 딱이라는 친구들 등 반응은 여럿이었다. 그래도 재미있지 않겠냐며, 내가 가서 생활습관도 싸악 바꾸고 좋은 거 먹고 공기 좋은 곳에 살면서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다고 장담했다.

며칠이 지나자 이성이 돌아온 듯 했다. 진짜 힘들겠지? 너무 답답하게 도사님들같은 사람만 모여서 자연이 어떻고 질서가 어떻고 꼰대질이나 하면서 살고 있으면 어쩌나. 돈까지 준다는 데 얼마나 일을 빡세게 시킬까? 젊은 일꾼들 데려다가 싼값에 일 시켜먹는 곳 아니야? 첫눈에 너무 재미있어보여 돌진하다가 상처로만 남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뭔가 더 따져봐야 하는게 아닐까. 나는 걱정이 많아졌고 푸른누리에서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마음은 조금 시들해졌다. 나물 말고도 할 일은 많으니까, 이번 여름에 부산에 또 가볼까, 다른 관광지로 여행 겸 살이를 하러 떠나볼까, 미뤄뒀던 산티아고를 걸어볼까. 집에서 소일거리로 재미나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여전히 그냥 그런 마음으로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마침내 푸른누리에 전화를 걸어 연락을 언제 주시느냐 물었다. 그랬더니 아, 오시라고 연락한 줄 알았는데 빼먹었다는 공손한 말투의 대답. 다시 믿음이 생겼다. 후훗. 내가 생각해도 이랬다 저랬다 귀도 얇고 좋았다 싫었다 마음변덕도 심하군. 친구들한테 가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보고 싶은 사람 몇을 만나 지지를 받았다. 엄마한테는 명상도 하고 운동도 하고 일하면 돈도 주고 그러는 데라고 대강 설명했다. 의외로 엄마는 살도 빼고 좋겠다며 잘 지내다 오라고 하셨다. 이럴때 보면 엄마 취향을 알 수 가 없단 말이야. 지난 번 일자리나 제주에 집지으러 갔을 땐 그리 맘아파 하시더니만. 딸래미 살빼서 이뻐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신가보다. 그리고 엄마도 나물은 좋아하시니깐.

3월 22일 금요일, 서울에서 차를 타고 세 시간 정도 괴산에 도착했다. 거기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사십분 정도 달려 화북면 입석리에 도착. 시내버스에 남아있던 남자 두 분, 여자 두 분이 모두 함께 내렸다. 푸른누리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버슷에 두고 내렸던 작은 가방을 다른 분이 챙겨주셨다. 오, 이런 정신머리하고는. 아이패드가 들어있는 가방이었는데. 하하 시작부터 철렁할 뻔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트럭을 타고 구불구불한 시멘트 포장길을 십여분 달려 드디어 푸른누리에 도착했다. 허름한 시골집 두세칸, 접수처는 비닐하우스, 이동식 화장실 몇동, 계곡물을 끓어다 쓰는 평범한 시골 수돗가. 푸른누리의 첫인상은 … 음 이쁘진 않군. 친한 친구 몇이 지내보다가 놀러올 수 있는지 보라고 했었다. 언제고 석달 동안 한번은 놀러오겠다고. 허허 그들이 오면 지낼 수 있는 인근 팬션을 알아봐야겠다. 열악한 상황의 집이었다. 시골집이 다 거기서 거기고 나는 이런 집이 괜찮지만 친구 몇은 엄청 놀랄듯.

나는 지역 소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집에서 농사를 짓지 않아 나름 현대식 생활을 했고 찾아갈 시골 친척집도 없었다. 다행히 여행도 꽤 다니고 워낙에 무던한 편이어서 여기 생활에 두렵지는 않았지만 더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똥오줌을 거름으로 묻는다고 해도 좀 더 세련되고 이쁜 생태화장실이었으면, 비닐하우스와 검정비닐 둘둘친 세면장 보다는 나무든 돌이든 자연재료로 만든 형태든 그럴싸해 보이기를 바랐다. 명상홀도 그냥 흔한 큰방. 흐음. 나는 불편한 건 괜찮지만 아름답지 않은 건 싫은데 아쉽다고 생각하며 첫날 명상에 들어갔다.

[닦살01] 나물요원이 되겠어

닦고, 뜯고, 살아가라(1)

나물요원이 되겠어!

2013년 3월. 석달 째 괴롭고 슬픈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아침이 오고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고 당연하게도 한낮이 되어서야 겨우 깼다.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아서 사나흘씩 집밖을 나서지 않는 건 다반사였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뭘 해야할지 모르겠는 데다 몸과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아서 하루종일 아이폰을 붙잡고 트위터나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스스로 내게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그저 어떤 마음이라도 자연스럽게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때문만은 아니었다. 본디 오랬동안 아프셨고 언제고 가실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해왔었으니까. 나는 유일하게 직장을 다니지 않는 자식이어서 우리들보다 수백, 수만배는 더 괴로울 엄마 옆에서 사십구재까지만이라도 함께 지낼수 있었다. 그럴 수 있는 내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임종 직전 열흘 남짓, 이후 쉰 날 정도는 아버지만을 생각하고 돌아가신 분을 충분히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자식으로서 내가 가진 죄책감과 부채감 따위를 지우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나는 돈을 많이 벌지도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지도 않았고 예측할 수 없이 제멋대로인 삶을 살아서 늘 두 분을 불안하게 했다. 그렇지만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삶을 사는 것이 효도라고 굳게 믿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드린 인사도 그랬다. 걱정마시라, 지금껏 늘 선택하고 책임지고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다. 그게 나의 행복이라고. 그러면서도 당신들께서 나를 걱정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하는 것도 귀찮아 거짓말하거나 말을 전혀 하지 않는 식이었다. 가족은 화목한 편에 속했고 부모님은 나를 귀여워해주셨지만 늘 위태로운 느낌이셨겠지. 특히 다른집 자식들 아니 더 직접적으로는 우리집의 다른 자식들과 비교하여 걱정하시는 마음에 크게 반항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작년 여름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두어달 뒤에 들켰을 때 아버지가 많이 놀라셨는데 제대로 사과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보낸 일이 마음에 좀 걸렸다. 두서너 해 전에 당신의 자서전을 편집해서 소책자 형태로 만들어보라고 주신 원고도 작업을 마치지 못한 상태로 내 방에 있다. 그런 것들이 아쉽다. 죄송하다. 앞으로 살면서는 내가 지금껏 못했던 일들이 떠올라 더 죄송할수도 있을 거다. 그렇게 조금씩 이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갚아가거나, 애도하거나, 살아내려고 한다. 그런 마음으로 엄마를 지켰다.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아침이 반갑지도 않고 하루를 사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사망신고나 소유권 이전 등 해야할 일은 꽤 있었지만 사십구일 동안 하기에 많은 양도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젯밥을 올리면서 우는 날이 많았고 처음 며칠은 나도 함께 절도 올리고 담배도 태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늦잠을 자고 아무것도 하니 않는 날들이 늘어났다. 두 분이 사시던 집에 엄마를 혼자 살게 둘 수 없어 고향집에 남아있기로 한 건 같이 누가 시키지 않은 나의 마음이었는데 갑갑하고 답답하고 지겨운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겨우 사십구재를 지내고 엄마를 모시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가 큰언니집에서 지내시든 우리집에서 지내시든지 나는 주로 내 방에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백수인 내가 시간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종종 엄마 친구댁이나 병원에 모셔다 드리는 일을 했다.

이제 좀 달라져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천천히 들었다. 이런 괴로운 시간을 끝내고 싶었는데 바쁘게 예전 직장생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작년 여름부터 해오던 “덜 벌고 덜 쓰면서 재미있게 살기”를 계속하고 싶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할지.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조차 헷갈렸다. 그러던 와중 꽤 매력적인 일자리 제안을 하나 받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경력에 도움이 되는 일, 시골에서 살 수 있는 일,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었다. 잘할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을 잠을 못자고 고민해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러다 가게되겠지, 하는 마음과 하다보면 잘하겠지, 내가 아직도 업계의 인력시장에서 유효한 인물이구나 하는 위안 따위만 있었다. 어렵게 거절하고 다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재미삼아 구인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직 통장에 잔고도 남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돈이 들어가지 않으니 당장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그저 구인정보를 보면서 아직 일자리가 있긴있잖아, 닥치면 뭐든지 하면서 돈을 벌수 있겠는걸, 하면서 하루중 조금씩 재미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생기면 할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그러다 우연히 “온날 나물뜯기”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경북 상주시 푸른누리에서 100일 동안 함께 살면서 산나물을 배우고 익히고 함께 나물뜯는 일을 할 사람을 찾는 광고였다. 새벽에 일어나 종일 일하고 채식 위주의 깔끔한 식사를 한다. 위빠싸나 명상을 함께한다. 심지어 일한 품삯도 준다. 푸른누리는 생태주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정도로 알고 있었다. 이거네! 앞뒤 잴 것 없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농사일을 해본적이 없어서 내가 해낼수 있을까 의심스럽긴했지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다 비슷하지 않을까? 난 자전거도 잘타고 잘걷고 무거운 것도 잘들고… 나물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된다니 이렇게 멋진 일이. 게닫가 돈도 벌어. 아침 일찍 일어나고 땀흘려 일하면 생활습관도 잘 자리잡겠지. 와 살도 완전 많이 빠지겠다. 신선한 채식밥상은 또 얼마나 맛있을 거야. 그렇게 신청서를 내고 오시라는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