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고, 뜯고, 살아가라 (6)
두 번째 휴일풍경
비가 내린다. 좀 전에 나가보니 눈발도 약간 섞여있다. 며칠전엔 25도까지 올라가는 여름날씨더니 다시 영하 3도까지도 내려간다. 여기가 산골이라 그런가보다 하려는데 서울, 대전 뭐 그런 곳들도 비슷하다. 이상한 날씨, 불쌍한 지구탓이려니.
토요일은 쉬는 날이다. 앞으로 80여일, 열세 번의 휴일이 남았다.
시간은 빨리 갈 것이다. 산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정확하게는 금요일 오후부터 쉰다고 할 수 있다. 일하는 날의 하루가 8시 반 명상까지 가득차 있다면 쉬는 날은 4시부터는 자유시간. 외박하는 사람들은 그 때나갔다가 토요일 밤에 돌아와서 일요일 일정에만 차질없이하면 된다. 금요일엔 오전에 나물뜯고 포장하고 점심먹는 것까지는 같은데 낮잠시간을 줄이고 바로 오후 일을 나갔다가 4시 정도에 마친다. 이번주에는 두 명은 서울집에 갔고 한 명은 청주로 외박을 나갔다. 해서 어젯밤과 오늘아침에 밥먹는 사람, 명상하는 사람이 확 줄었다. 쉬는날 하는 명상은 평일보다 더 선택적이다. 평일날 명상도 의무는 아니라고 하지만 아파도 웬만하면 앉는게 좋다고 말하는 편인데 쉬는날 명상은 나오고 싶은 사람만 나오라고 한다. 다들 웬만하니까 그냥 나간다. 여기 사는 동안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앉는 것은 그저 습관 같은 것이니까.
토요일엔 일하지 않으니까 4시부터 6시까지 두 시간동안 앉는다. 두 시간 앉으려니 다리가 많이 아팠다. 일 시작하고 나서는 한 시간 앉는 것도 집중이 잘 안되어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글을 쓰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다 엉덩이가 하는 것이라더니 명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섯시에 아침식사. 한 명은 아침먹자마자 외출, 잠시 후 선생님과 여기 사는 여자분은 오늘도 일하러 나가셨다. 쉬엄쉬엄 나물이 난 밭을 찾아내는 답사라고 하신다. 뒤이어 두 명 더 외출, 남자친구가 토요일마나 괴산으로 오는 여자분, 다른 한 분도 그 차타고 외출. 그래서 집에는 나와 다른 남자분 한 분만 있다. 조용하다. 그는 오늘 하루 종일 명상을 하겠다 한다. 점심때가 가까워오지만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다. 아마 밥을 먹거나 좀더 있다가 천천히 먹거나 할 것이다.
여기까지 적어놓고 점심때가 되어 기웃거리니 푸른누리에 남아있던 한 분이 부엌에서 밥을 비비고 있다. 다들 어디갔냐며… 나는 아무도 없다 알려주고, 라면이나 사다 먹자고 제안, 그는 이미 밥을 비벼서 한 술 뜨려는 찰라였는데 얼른 함께 먹은 뒤 둘이서 신라면 2개를 사다 끓여먹었다. 신라면 사러 구불구불 길을 내려 큰길가 점방으로 가는데 선생님의 차를 발견하고 식겁, 약간 긴장하고 되돌아와야 하나 한쪽에 차를 대고 선생님 차를 살피니 다행이도 차는 유치원다녀오는 어린이를 차에 태워 집이 아닌 다른곳으로 간다. 으하하하, 산골마을에서도 윗사람 몰래 먹는 시트콤같은 상황을 연출하다니…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는 라면 두 개를 사서, 내가 물양을 잘못조절했다며 뜨거운 물을 조금 더 끓여 부었다. 어떻게 먹는 라면인데 실패할 수 없다는 그의 강한 의지! 실컷 먹고 밥까지 말아먹고 그가 아껴두었던 단팥이 든 튀긴찹살 도너츠도 2개와 초콜렛이 발라진 두꺼운 비스켓도 나눠먹었다. 그는 어제 엿만 먹지 않았지 여전히 군것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 오늘 명상도 잠이 와서 생각보다 많이 못했다고. 점심먹고 같이 앉자고 했는데 둘다 잠들어서 선생님과 외출한 분이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난 지금에야 겨우 일어났다. 그는 저녁을 먹고 바로가서 두 시간 남짓 앉을 모양이다.
지난주엔 아침나절 집에서 쉬고 불장난하고 글쓰고 놀다가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근처 화북면에 다녀왔다. 오르락내리락하는 12킬로미터의 길, 한 시간이 걸렸다. 도착해서 30분 정도 친구랑 전화하고 놀다가 돌아오는 길 한 시간, 집으로 들어가는 샛길을 지나쳐 이평까지 달렸다. 차도 사람도 없는 한가한 길이 작년 뉴질랜드 자전거여행을 생각나게 하더라. 물론 거기는 넓은 들판, 넓은 산, 큰 도로, 뭐든 시원시원했지만 우리네 길은 비닐하우스 여러개 동동동, 집도 동동동, 길도 좁고 오밀조밀 작은 것들이 여러개 복잡하게 늘어져있다. 그렇게 기분좋게 달려 집에 들어왔다. 그.랬.는.데 그날도 마찬가지로 일하러 나가셨던 선생님은 바깥에서 뿌리채 캐온 몇가지 나물들을 뒷밭에 옮겨심고 계셨다. “바닥, 얼른 옷갈아입고 와라. 여기 재밌는 일한다” 헉, 지금 나 일 시키는 거임?
대답하지 않고 방에 들어가서 일단 누웠다. 중간중간 많이 쉬기는 했지만 세시간만에 집에 돌아온 터였다. 라이딩 시간으로만 따지면 두 시간. 돌아오는 길에 ‘아 집에 가서 땀에 젖은 옷 빨고 좀 누워서 쉬다가 명상하고 자면 오늘 하루가 완벽하게 마감되겠군’ 싶었는데 숨도 헥헥거리면서 집에 들어온 사람한테 일을 하라니, 일을 하라니, 일을 하라니. 게다가 오늘은 쉬는 날인데, 쉬는 날인데, 한 사람은 애인만나러 자기차 끌고 나가고, 한 사람은 애인이 직접 여기까지 찾아와서 밖에 나갔는데 집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불려가다니, 불려가다니, 불려가다니. 시위하듯 옷을 갈아입지 않고 밭으로 나가서 멍하니 쳐다봤다. 그때까지도 넵 대답하고서 일을 하겠다는 태도를 적극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치만 아무도 못알아챈듯. 선생님은 이리와서 이거 이렇게 저렇게 해라 라고 업무지시를…나중에 들어보니 선생님 따라 일갔던 분 한 분은 내가 대답을 좀 미적거리면서 하더라고 말했다. 나는 어쩔수 없이 슬리퍼 신고 그냥 일을 천천히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계속 화가났다. 왜 나는 쉬는날 일하고 있나, 쉬는날 집에 있으면 이렇게 일을 시키는 건가, 나가놀지 않겠다는 좋은 마음은 왜 이렇게 이용되는가, 하기 싫습니다, 그만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열번도 더 생각했다. 그 사이 외출했던 한 사람이 돌아와 자연스럽게 옷 갈아입고 일을 함께했다. 평소보다도 늦은 여섯시반쯤 일이 끝나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나는 저녁을 먹지 않으니까 시무룩하고 화난 표정으로 씻고 방에 들어갔다. 더 늦게 돌아온 사람에겐 나한테 일시켰다고 와르르르 선생님 흉을 보면서…
잘 모르겠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쉬는 날 일하지 않기로 해놓고선 나만 억울하게 일했다는 마음이 제일 컸던 것 같다. 선생님은 한 두시간 밭일 도와주는 것쯤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와서 좀 도우라고 했던 것도 같고. 그렇지만 공식적으로 첫번째 휴일이었고 나는 나름대로 이렇게 쉬겠다하는 계획이 있었는데 일을 하게 되어 속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 혹시 남들 나가면 집에서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니까 돈이 안 드는데 나는 집에서 먹고 자고 계속 지내니까 밥값이라도 해야한다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고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매끼 누군가는 밥을 하고 차리고 설겆이를 해야한다. 방에 불도 떼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밥준비를 하고 불을 떼는 건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밭일은 나에게 엄연히 일인데 선생님이나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도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나한테 함께 와서 하라고 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음주에는 밥도 안 먹고 아침 일찍 나가서 종일 걷다가 저녁늦게나 들어오겠다고, 아님 방문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와서 나갈 수가 없었지만. 그런 화도 하루이틀 지나니까 수그러들기는 했다. 그렇게까지 화가날 일인가, 한두시간쯤 집에 놀고 있는 사람 일하라고 할 수도 있지, 담에 웃으면서 쉬는날인데 이렇게 일하면 나중에 한 두시간 쉬어도 되나요? 라고 묻거나, 묻기전에 사정에 따라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군.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다 일하고 있는데 혼자서 방에서 누워 자는 것도 편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난 만약 그럴일이 생긴다면 꼭 그렇게 하겠다고 여전히 마음먹고 있다.
선생님은 온날나물뜯기에 참여해 살기 시작한 우리 여덟명에게 본디 여기 살고 있던 세 명을 합친 열 한 명이 살면서 모두가 살고 싶은대로, 좋게, 행복하게 살자고 말씀하셨다. 바깥에서 사는 일이야 스트레스도 많고 눈치도 보고 싫은 것도 해야하지만 여기 우리끼리 살면서는 그러지 말고 모두에게 좋은 대로 맞춰보자고 하셨다. 그런의미에서 쉬는날 일을 해서 화가나면 내 화가 그냥 나는 건지, 아님 쉬는날 쉬어야 하는데 쉬지 못해서 당연히 나는 화인지 짚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한주 한두시간, 한번 가지고는 잘 모르겠길래 오늘 상황을 보려고 했는데 오늘은 쉬었으니 패쓰. 다음번에 기회가 생기면 한번 더 생각해봐야겠다.
저녁은 평일과 마찬가지로 일곱시 반부터 한 시간 동안 앉는다. 집에 있는 사람은 웬만하면 앉을테고 외박을 나갔던 사람은 명상 시간 중에나 끝나고서야 집에 도착하니 조용히 밤을 보내고 각자 하루를 마감한다. 나도 오늘은 좀 일찍 가서 오래 앉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