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고, 뜯고, 살아가라(3)
세 번째 위빠싸나 명상
내가 처음으로 위빠싸나를 만난 건 2005년이다. 워킹홀리데이비자로 호주에 가서 남들처럼 영어학원 다니고, 농장에서 일하고, 건물청소 일도 하고, 영어과외도 하고, 동네주민들과 친해져서 노부부댁에서 파티도 하고, 자전거도 타러 다니고, 학원에서 만난 스위스친구랑 호주여행도 하고 그러던 시절 우연히 공짜로 먹고 자고 하는 명상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열흘동안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공짜. 묵언. 명상. 듣기만 해도 재미있는 조합이었다. 신청서를 보낸 뒤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가는 방법이 정확하지 않아 몇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머물던 집의 호주아저씨가 아무래도 자기 생각엔 안내되어있는 A역이 아니라 B역에서 내려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그런가, 하면서 끝까지 아리송한 마음으로 출발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그냥 아저씨 말대로 B역에서 내렸다. 나말고도 몇몇이 더 내렸고 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이 사람들 내가 모르고 못찾아왔으면 어쩔뻔했어.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잘 찾아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위빠싸나는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단 접수를 하면 방을 배정받고 가지고 있던 전화기나 책, 수첩 등을 주최측에 맡긴다. 오롯이 명상에만 집중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무언가를 따로 적거나 읽거나 생각하는 일을 금지한다. 어떤 친구는 너무 심심해서 디지털카메라 설명서를 막 읽어봤다고 했고, 자세히 안내받지 않고 선생님 말씀을 적어내려가던 친구는 “적지 않습니다. 외거나 적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직접 마음을 닦으세요”라며 제지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흘 동안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두 시간 명상, 그리고 아침 식사 후 약간의 휴식, 세 시간 명상 후 점심식사, 다시 세 시간의 명상 후 한시간의 간단한 저녁식사 또는 휴식, 한 시간의 명상 후 담마이야기를 들은 후 질문을 주고 받고 여덟시나 아홉시 쯤 잠이 든다.
2005년 11월 호주에서 첫번째 열흘코스를 마친 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좋은 기분과 행복해진 마음으로 집에서도 계속 아침저녁으로 앉아서 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한 일주일쯤 시도했을까 그러다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다시 무얼하며 살아야 하나 방황하다 겨우 마음 잡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지 반 년 째 답답함과 괴로움이 밀려왔다. 가까운 친구가 지난 번 호주에서 했던 그 명상코스를 다시 참여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주어 한국에서 열리는 코스에 참여했다. 영어로 진행된 코스에 따로 한국말테입을 듣는 등 배려를 많이 받았지마 지도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나 다 같이 듣는 이야기들을 정확히 알고싶어 한국어로 된 코스에 언젠가 참가하고 싶다고 생각해오던 터였다. 그런데 솔직히 그 두번째 코스는 어떻게 지났는지 거의 기억에 없다. 같이 코스에 참여했던 사람들 누구도 기억나지 않고 지도했던 선생님이나 명상할 때 기분 같은 것들은 생각나지 않고 열 명도 넘게 다 같이 묶었던 큰 방에서 누군가 자꾸 말을 했고,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굴었던 기억만 난다. 대만 지도 선생님이 진행하셨고 통역이 있었지만 한국어코스가 그리웠던 나는 실망했다. 첫번째 코스때는 선생님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명상을 하라고 했었는지, 그리고 명상하다 어떤 종류의 딴생각이 들었는지, 모두가 한 시간동안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을 때 얼마나 고요하고 신비로운 느낌이었는지 등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말이다. 실망만 가득 안고 두 번째 코스를 마친 뒤에는 명상이라는 것에 회의가 들었다. 일년 내내 일상적인 사회생활, 거짓말, 나쁜 마음, 마음을 더럽히는 행동들을 잔뜩하다가 회개하듯 열흘 명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위선자 같달까. 아무리 방을 어지렵혀도 가끔씩은 청소하는 것처럼 마음의 때도 닦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가까운 분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위빠싸나는 내게서 잊혀져 갔다.
그러다 나물뜯기 모집글에서 위빠싸나를 다시 만났다. 나물뜯는 산골생활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어보였는데 위빠싸나 열흘코스도 포함되어 있다. 훗, 나한테 이정도 쯤이야. 자발적으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 뿐이지 부러 위빠싸나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좋지 않은 기억은 다 사라져 없고 좋은 기억만 어렴풋 남아있으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시도해보고 싶기도 했다. 차라리 지금 이렇게 괴로운 생활을 마치기에 좋은 기회라 여겨졌다. 처음 코스 때는 둘이서 방을 같이 썼는데, 여기서는 독방을 준다. 호주 선생님, 대만 선생님이에 이어 드디어 처음으로 한국말을 쓰는 선생님께 지도를 받게 된다.
열흘동안 내내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자세히 듣지 못했던 담마이야기도 훨씬 마음에 와닿았고 잘 몰랐던 마음닦기의 방법도 새로 배웠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가 물어볼 수 있었다. 첫번째 두번째와 차원이 다른 울림이 있었다. 물론 종일 앉아 있다보면 다리가 저리고 조여오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어깨는 짓눌리는 듯하고 머리를 깨질 것처럼 아팠다. 지난 번에도 이렇게 아팠나 싶을 만큼. 그렇지만 숨을 알아차리고 몸이 느낌에 마음을 모으면서 딴생각이 들거나 졸릴때 어쩔 수 없이 마음껏 상상하고 잠들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다시 마음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하고 잠을 깨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새벽에는 잠이 오지 않아 서너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마음을 잘 닦아가고 있으면 마음이 시끄러울 일이 없어 잠으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붓다는 두 시간 정도 몸을 뉘어 쉬시고 잠을 전혀 자지 않으셨다 한다. 신비로운 어떤 경험이 확 느껴지진 않았지만 조용히 마음이 울리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위빠싸나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지난날 쌓아온 빠라미(공덕)때문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위빠싸나를 만났다가 헤어질뻔 했던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만나게 된 것, 큰 울림을 갖게 된 것 역시 상당한 빠라미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게다가 지금은 앞으로 석 달 동안 아침저녁으로 계속해서 앉을 수 있으니 내 몸에 자연스레 버릇이 들지 않을까 기대된다. 열흘 코스 동안에 가벼운 저녁을 먹기도 하고 먹지 않기도 하는데(지난 두 번에서는 먹었고, 두 번째 이상하는 사람들은 먹지 않거나 차만 마셨다) 이번 코스에서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원래 위빠싸나를 닦을 때는 해가 진 뒤로 속을 완전히 비우는 것이라 한다. 그렇게 열흘을 지내보니 지낼만 했다. 물론 운동량이 전혀 없어서 배가 고플새도 없었겠지만 약간 허기진 가벼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열흘코스가 끝나고 저녁이 나오는 첫날,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유난을 떠는 것도 그렇고 배가 고플것도 두려워서 그냥 먹었는데 저녁내내 속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은 저녁을 먹지 않았따.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저녁을 먹지 않을 생각이다. 진짜 배고파서 먹을 때보다는 그냥 때가 되었으니까, 입이 심심하니까, 뭔가 먹어야 할 것 같으니까 먹을 때가 더 많았다. 그 허기는 진짜 허기가 아니라 마음의 허전함과 결핍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걸 끊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래저래하다가 배가 터질듯 많이 먹고, 심심하면 몸에 좋지도 않은 군것질거리를 입에 달고 살고, 뚱뚱해지는 자신은 맘에 들어하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나는 식탐이 강하니까, 라는 말로 웃어넘기다가도 단식이라도 해서 이런 식습관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는 있었다. 군것질이나 과식을 하지 않겠다는 건 내의지가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저녁을 먹지 않겠다는 건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는 잘 지키기 어려운 결심이다. 직장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저녁을 먹지 않기가 어렵고 친구나 가족들은 진심으로든 그냥 하는 말이로든 왜 저녁을 먹지 않느냐, 무조건 굶는게 수가 아니다, 건강에 안 좋다 등 자신이 아는 지식과 오해를 총동원하여 말을 보탠다. 물론 여기서도 남의 눈이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다. 조금씩 먹으면서 줄이는 게 더 낫지 않겠냐, 살 많이 빠지겠네 하며 말을 더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푸른누리에서는 남을 신경쓰지 말고 남에게 뭐라하지도 말며 자유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선생님은 저녁을 먹지 않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라고 가능하다면 시도해보라고 지지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저녁을 먹지 않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