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고, 뜯고, 살아가라(4)
나물요원의 하루
푸른누리의 하루는 종소리와 함께 새벽 4시에 시작한다. 아직은 캄캄하고 싸늘한 공기를 가르며 다들 명상홀로 조용히 걸어간다. 부지런한 누군가는 훨씬 전에 명상홀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그렇게 은은한 불빛 아래 한 시간 동안 위빠싸나를 닦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명상만 하던 열흘에 비해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아 아나빠나(숨을 알아차리는 명상)를 주로 한다. 처음 잡은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아픔을 느껴보는 것(아디타나로 앉기)도 위빠싸나 명상의 일부인데 잘 안되어서 많이 뒤척인다.
길고 긴 한 시간이 지나면 선생님께서 작은 종소리로 명상이 끝났음을 알린다. 바로 아침식사.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물 뜯는 데 필요한 칼, 자루 등을 챙겨 6시쯤 집을 나선다.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20~30분 정도 차를 타고 인근의 산이나 밭으로 간다. 그리고 각자 자리 잡은 곳에서 나물을 뜯는다. 이른 봄인 요즘은 원추리, 뱀도랒, 꽃나물, 구릿대, 머위, 냉이, 삼나물, 참나물 등이 나오는데 주로 앞의 네 개를 뜯는다. 다년생 식물들이라 스무날쯤 지나면 또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나 있다고 한다.
네 시간 정도 나물을 뜯고 다시 푸른누리로 돌아온다. 그날그날 뜯은 나물을 바로 포장해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 안에 봉지에 정량을 담아 청주로 보낸다. 괴산이던가. 정확히 지명이 기억나지 않는다. 트럭을 운전하는 한 분이 담당해서 주로 간다. 나물을 넣을 때는 여러 사람이 뜯은 걸 한 데 모아 골고루 섞이게 뒤집은 다음 600g씩 담는다. 저울에 달아 비닐무게와 말랐을 때 줄어들 무게를 감안하여 조금 넉넉하게 한 개를 만든다. 뜯을 때 지푸라기나 흙을 털지만 봉지에 담으면서 발견한 것들도 빼고 혹시나 나쁜 풀이 섞여들여가지 않도록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나물의 종류와 먹는 법을 적은 작은 종이를 함께 넣고 비닐에 담은 뒤에 종이상자에 세 개씩 넣어 트럭에 차곡차곡 쌓는다. 보통 이 작업은 수량에 따라 다르지만 요즘 처럼 200개 이하밖에 안 나올 때는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어제 같은 경우는 많이 먹으면 위험할 수도 있는 풀이 섞여 들어간 걸 뒤늦게 발견해 이미 포장이 끝난 비닐을 하나하나 다시 뜯고 펼쳐서 그 풀을 꼴라내기도 했다.
아침에 눈이나 비가 오면 6시에 바로 나물을 뜯으로 갈 수 없을 때도 있다. 너무 추워 나물이 얼어 있으면 나물을 뜯어도 보낼 수가 없기 떄문이다. 낮에 날이 풀리면 자연스럽게 다시 살아나지만 아침에 얼어있는 나물을 뜯으면 버리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추운 날은 해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하거나 추위에도 괜찮은 나물을 우선 뜯는다. 며칠인가 무슨 요일인가보다 오늘 비가 오는가, 바람이 많이 부는가, 날이 추운가, 볕이 좋은가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이는 생활이 참 자연스럽다. 농부가 된 것 같아 으쓱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반복하면서 자세나 물건을 놓는 위치에 따라 작은 노하우들이 쌓이는 단순작업이 즐겁다. 리듬이 생겨서 착착착. 그렇게 상자를 가득 실은 트럭이 떠나고 나면 우리는 점심을 먹는다. 물론 트럭을 몰고갈 사람은 서둘러 일찍 점심을 먹고 떠났다.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고 느긋하게 점심을 먹는 시간. 그 뒤로 2시까지 휴식. 대부분 사람들은 낮잠을 잔다. 부지런한 선생님과 푸른누리에 원래 살던 식구들 여럿은 그 사이에도 묵나물을 만들기도 하시고 뭔가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기운도 좋아. 우리도 오래살면 잔근육도 생기고 기운도 좋아져서 일을 많이 해도 지치지 않을까? 난 아침나절 네 시간의 나물뜯기도 두세 시간 지나고 나면 언제 끝나나 시계만 보고 있을때가 많은데…
다시 오후일 나갈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차를 타고 또 다른 장소를 찾아 떠난다. 집에서 해야할 일이 있는 사람은 남아 있기도 하고, 두 시반까지 아까 떠났던 나물트럭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조금 늦게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되었던 오전과 비슷한 일이다. 나물을 뜯는다. 오후는 두 시간이나 두 시간 반 정도. 오전보다 짧은 시간이지만 날도 춥지 않고 흙도 젖지 않아서 일하기가 수월하다. 그리고 오후에 나물을 많이 뜯어놓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이 나물과 내일 오전에 뜯는 나물을 합하여 내일 오후에 같은 방법으로 차에 실어 보낸다.
푸른누리에는 일곱 살 난 여자아이가 한 명 같이 사는데 그 친구는 요즘 유치원에 다닌다. 아침에 일나갔다 포장하러 돌아오는 10시 경에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오후 일이 끝날 시간에 먼저 돌아오는 차가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온다. 아이는 또래 친구는 없지만 돌봐주는 어른이 여럿인 작은 마을에 사는 셈이다. 누구든지 함께 놀고 돌본다. 함께 아이를 키우는 건 멋진 일인 것 같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좋을 때와 싫을 때가 있고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 아이와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내가 못한다고, 안한다고 마음이 불편한 일은 없으면 좋을텐데 아이를 귀찮아하는 나를 보면 다른 사람이나 아이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내 마음이 너그럽지 못한가 싶어서 생각을 좀 하게된다.
오후에 집에 돌아와 여섯시쯤 저녁을 먹고 쉬었다가 일곱시반 부터 여덟시까지 한 시간 위빠싸나 마음닦기를 마치고 마무리 모임을 하면 완전히 하루 일과가 끝난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만큼 일찍 끝난다. 보통 아홉시나 열시쯤 잠든다. 잘 때쯤엔 아침일이 아득하게 어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단순하고 아름다운 생활이 좋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니 갈등은 생길테지만 서로의 슬기를 모아 잘 해결하고 마음을 닦으며 평탄하게 살 것이다. 어쩌면 평탄해보이지만 마음은 시끄러울 수도 있다. 같이 사는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자주 거슬리거나 아이를 귀여워하지 않는 나를 받아들여야 할 때 같이 내 마음 안에 일렁이는 감정들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 것 같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일이 몰리는 상황이나 서로 피곤하여 짜증을 내는 상황처럼 모두의 눈에 보이는 문제나 갈등 상황이야 마무리 모임때 대화로 풀거나 당사자와 어떻게든 해결을 하겠지만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내가 알아서 더 많이 생각해보고 명상하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할 테니까. 시간이 더 흐르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할것같다. 너무 같은 생활. 많지 않은 자유시간, 그 안에서 뭘 해야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그렇지만 지금 당분간은 날마다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경치에, 좋은 공기에, 흙냄새를 귀하게 여기면서 살아가겠다. 아홉시만 되어도 총총 빛나는 별들이 가득한 하늘을 볼 수 있음에 감동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