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13 5월

[닦살07] 나물요원 활동중단

닦고, 뜯고, 살아가라 (7)

아파 잠깐 쉴까 하다 영영

그간 많은 일이 있었으니 지난 일기(를 대신해서 거의 매일 적고 있는 트위터) 기반으로 빠르게 요약 재구성해보자.

2012.4.21. 동료요원의 머리를 밀었다.
2012.4.26. 서울집에 외박 나와서 가족과 함께 왕창 도시 음식을 먹었다. 하루만에 복귀했지만 이후 며칠은 과식, 폭식으로 괴로워했다. 가서 먹기도 하고 문장대에서 팔기도 할 요량으로 커피와 내리는 도구 등등, 찌거기로 키울 버섯까지 왕창 60리터 가방을 가득채워 왔다.
2012.4.30. 일 안하던 몸이라 무리가 갔나보다. 슬슬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결국 오늘은 일 못나가겠네 싶어서 기어서 조퇴신청하러 갔는데 선생님이 중요한 얘기를 하시느라 말씀드릴 타이밍을 놓쳤다. 에라이 하면서 일하러 나갔다가 오후엔 앓아누웠다.
2012. 5. 1. 오전까지 푹 쉬고 오후에 다시 일을 나갔다.
2012. 5. 2. 내 몸 아픈게 얼마나 아픈지 모른게, 그냥 원래 일하면 아픈거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 일을 나갔다.
2012. 5 3. 밤새 뒤척이다가 아침에 끙끙거리면서 방밖에도 못나가고 있자, 동료요원이 죽었나 살았나 확인하러 왔다. 그렇게 종일 쉬었다. 오후에는 동네 보건소에가서 물리치료도 받았다. 그러니 또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서 기다리고기다리던 휴일전야를 맞이하야 다른 요원들과 읍내나가서 치맥회식을 했다.
2012. 5. 4. 모두의 휴일, 종일 누워서 허리운동과 회복에 힘쓰고 있다.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친구님이 파스, 찜질용 전기방석, 케익 등을 들고 놀러왔다. 그때까지는 이것이 병문안이 아니고 그저 방문이었다. 그래도 허리가 많이 아프다고해서 이것저것 사오고, 우리집에까지 가서 옷가지와 찜질방석을 챙겨다 줬다. 속리산 태종대를 가겠다고 기웃거리기도 했다. 읍내에 가서 또 고기를 먹었다.
2012. 5. 5.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허리가 아파서 밥먹으러도 못갈 정도였는데 좀 나아져서 오후부터는 일을 나갈 수 있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푹 쉬고 아주 낫자는 선생님의 조언대로 맘 편히 놀기로 했다. 집에서 쉬엄쉬엄 밥짓는 거나 좀 돕자고 해서 저녁밥과 다음날 아침의 새벽밥 보조, 를 했을 뿐인데 또 못일어나는 사태 발생했다. 아무것도 하지말고 그냥 먹고 쉬고 허리가 낫기를 기다리자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2012. 5. 8. 어버이날, 어버이도 아닌 언니님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이 날 집에 오게 된 상황도 정신없고 웃기다. 점심즈음 선생님께서 그렇게 아프면 그냥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게 좋지 않겠냐고 하셔서 나는 늘 그렇듯,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여기서 그냥 쉽고 싶습니다만 이런 말을 구구절절하면서 상대를 이해시키기는 귀찮고 피곤하니까 그냥 하자는대로 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알겠다고 대충 짐을 쌌다. 어짜피 매일 점심즈음에 청주로 나가는 배송차량이 있으니까 그 차를 타고 나가서 괴산에서 차를 타고 천안이든 서울이든 가면 되니까. 그래서 밥도 안 먹고 (사실 남들 다 일하러 나갈때 혼자 집에 있기 때문에 느지막하니 일어나서 혼자 밥먹어서 배가 하나도 안고팠다. 이런식으로 빈집에서 지난 휴일에 서울서 챙겨운 커피툴로 커피를 내려먹으며 지난 며칠 신선놀음 환자생활을 하고 있었다) 짐을 싸서 후다닥 나왔는데, 배송차량이 벌써 총알같이 떠난 후였다. 우리는 서로 각자 자기 역할이 분명하게 있어서 선생님이 ‘오늘 바닥 태우고 나가라’라는 부탁을 하기도 전에 차량운전을 맡은 동료요원이 가버렸다. 나는 뭐 꼭 오늘 가야 되는 건 아니니까 다시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룰루랄라 놀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십오분 후 떠나는 차가 아래 큰길가에 있으니 그걸 타고 나가는 게 어떠냐고 하신다. 이번엔 한 번 서둘렀다가 맥빠졌으니 어디로 갈지 짐을 어떻게 쌀지 여유있게 생각좀 해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가 생각하긴 뭘 생각해 벌써 옷 갈아입었네. 라는 말을 듣고 그냥 차를 타고 나왔다. 청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천안 큰언니집으로 갈지 서울로 갈지 결정을 못했었는데 산꼭대기 푸른누리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5분 승용차, 이평 정류소에서 청주 터미널까지 2시간 시외버스를 탄 뒤라 서울로 간다면 또 터미널에서 집까지 가는 버스를 타는 게 끔찍하고 삼십분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어서 천안으로 왔다.

그 다음날부터 천안과 서울을 오가며 정형외과와 한의원 몇군데에서 물리치료를 받다가 허리가 아주 나을 때까지 침이나 맞으며 천안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침맞고 척추교정받고 물리치료 받으면서 허리가 낫기를 세월아 네월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푸른누리에는 추가로 새로뽑은 나물요원도 왔고, 귀농체험을 하러 온 청년들도 있고 일손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뒤에도 주문량을 맞추기에 충분한 정도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주문량이 많아져야 바쁘게 일할 맛도 나고 돈도 좀 벌려서 명상센터 짓는 데 보시도 하고 그럴텐데 그런면은 좀 아쉽기는 했다. 그런사정 때문에 굳이 아픈몸을 이끌고 푸른누리로 들어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어이없게 100일, 온날을 계획하고 있던 나물요원 살이는 반도 못채우고 끝나버렸다. 천안에서 지낸 지 얼마지나지 않았을 때 아무래도 너무 대충 정리하고 온 것 같아서 언니차를 얻어타고 가서 일단 짐을 다 빼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된 셈이다.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어짜피 방을 공유하는 거라 내 짐이 공간을 너무 차지하면 안 된다는 생각, 내 물건이 널부러진 방을 남이 오래오래 쓸지도 모른 사실이 썩 유쾌하지 않아서 한 번 가 본 것이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되었다. 아니 이런 인연이 닿았으니 언제고 또 마음을 닦으러 갈지, 나물을 뜯으러 갈지, 뒷산에 버섯을 캐러 갈지, 인사드리고 놀러갈지 모르니 마지막은 아닐 게다. 그래도 더이상 나물요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