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부엌] 어쩌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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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나는 여기에서 “칠월부엌”을 하게 됐을까.

부산과 이렇게 깊고 진한 인연이 생긴 건 작년 여름부터다. 워낙에 회사를 진득하게 오래 다니지 못하는 편이라 여지껏 그렇게 다니다 말다 다니다 말다 몇년째 신입. 그래도 열심히 일하거나, 잘 하거나, 즐겁게 하려고 노력했다.
돈보다는 의미나 재미, 긴 안목을 가지고 지금을 견뎌내기 보다는 순간순간 할 수 있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 편이었다.

그래도 회사다니는 것 쉽지 않았다. 프리랜서를 하거나 창업을 하겠다는 마음도 없었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회사를 다니지 않고, 돈을 벌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2011년 여름 마지막 회사 퇴사.
쉬고, 놀고, 여행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여행하고, 그냥 있고, 다시 불안해하다가 마지막 회사에 2012년 봄 재입사. 한 달만에 후회.
한 달 동안 어떻게 하면 그만둘 수 있을까, 그만두고 뭐할까, 나란 인간은 왜 이럴까 괴로워하다가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고향에 내려가 간호를 해야한다는 거짓말을 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그런데 정말 연말에 아버지가 돌아가셔버렸다. 그 죄책감과 상실과 슬픔과 눈물은 아마 앞으로 꽤 오랬동안 천천히 무겁게 마음 한 켠에 있을 것 같다.) 마지막 회사와의 인연-입사-퇴사-재입사-거짓말하고 재퇴사-은 그로부터 1년 뒤 2013년 봄, 다시 일할까말까를 고민하게 할만큼 특별했지만 결국 직장인이 다시 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2012년 7월 여름, 서울의 모두로부터 부산으로 숨어들어왔다.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종류의 인간임을 인정하고 불안하고 두렵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직장생활이 괴롭고 두렵지만 돈 때문에 멈출 수 없는 거라면, 다른 방식으로 돈 문제를 해결해보자.
돈말고 다른 이유가 성취감과 보람, 만족감,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 등이라면 직장 생활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돈 문제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아껴쓰고 좋은 사람들에게 신세지고, 기회가 생기면 조금씩 벌면 된다. 앞으로 얼마간 살 수 있는 돈은 모아두었다. 그렇게 일년을 일단 살아내자, 그렇게 살아내고 나면 다른 힘이 생길지도 모른다. 다른 방식으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건 직장생활이 주는 보람이나 성취를 넘어서는 어떤 실현,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내가 누구에게는 빛이 될수도 있을 거다.

일단 돈을 조금 쓰면서 하는 여행은 아는 사람에게 신세지는 것이었는데, 한달씩만 산다고 해도 일년에 열 두 명, 전국 각지에 비빌언덕 열두개가 없겠냐 하는 마음이었다. 허락을 받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도 두세군데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주변에는 이런 내 계획을 지지해주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기꺼이 자신의 집에 한달 머물러도 좋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서 부산에 오게 되었다.

원래는 한 달씩 이곳저곳을 머무르며 일년을 사는 거였는데, 어쩌다보니 부산에서 두 달 넘게 지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면서 먹고 자고 조금 돈을 벌고 오랜 숙원이었던 길거리 자전거카페도 열어봤다. 그 사이 새로운 곳으로 초대받기도 했다. 그렇게 다음달 갈 곳, 할 일들이 생겼다. 국화가 아름다운 가을에 양주 한마음수련원에서 열리는 국화축제에 자전거카페가 초대되기도 했다.
부산에서 경주, 전주를 거쳐 양주에서 조금의 돈을 벌고 제주에서 놀다가 해운대 자전거카페의 손님이던 말레이시아 친구들을 만나러 페낭에도 다녀왔다. 그러던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엄마와 함께 고향집에서 머물다 재미있는 기회가 생겨서 나물공부하러 산에 들어갔다가 2013, 올여름엔 다시 부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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