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백수다.
제작년 여름 백수가 되었고, 작년과 올해 백수였고 내년에도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백수일 것이다.
그 전에도 대여섯 번 회사를 그만 둔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일상적인 느낌, 다른점이라면 늘 다음 다닐 회사나 할 일을 정해놓고 그만뒀었는데 2011년의 퇴사는 너무 괴로워서 그 다음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하고싶은 일들을 하나씩 하면서 매우 게으르고 행복하게 여러 달을 지냈다. 그러다 기회가 닿아서 여행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머물며 하는 여행, 여행하듯 체험하듯 하는 일 뭐든 조금씩 조금씩 하면서 살았다.
퇴사 당시에 통장에 있는 돈이 떨어지면 그 때 다시 적극적으로 일을 하든, 돈을 벌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아직 돈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니까 엄청 돈이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기 보단 사는 데 별로 돈이 안드는 방식으로 지냈다. 중간에 조금씩 벌기도 했다.
집에서 그냥 있거나, 아껴서 여행다니고, 아는 사람들에게 신세지거나, 일을 하고 숙식을 제공하는 곳에서 머물거나 하는 식이었다.
한해 마지막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돌아보고 수고했다고 토닥거려볼까 하고 봤더니
어딘가에 몸담고 한 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게 된 뒤부턴 그렇다할 신년기념의식도 없어서 지난 3년치를 한꺼번에 해야할 형편이다.
게다가 최근 3년은 더 특별하다. 2012년은 뉴질랜드 여행중에 시골마을 캠핑장 텐트 안에서 혼자 맞이했고 2013년은 아빠 장례식장에서 2014년은 언니 없는 언니집에서 혼자 맞이하는 중이다.
2011년 9월.
예측할 수 없는 지금 ‘이러한 삶의 방식’ 궤도에 들어섰다. 재미있게 지냈다.
2012년 7월.
한차례 마음 속 혼돈을 겪고 되는 데까지 ‘이렇게 살아보기’로 하다. 행복하게 살았다.
2012년 12월 31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갈 곳도 할 것도 많았다.
2013년 10월.
몸이 안좋아졌다.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져 내린 것만 같았다.
2013년 12월.
삼십대 중반, 내 인생의 2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올 초부터 몸이 신호를 보내왔던 것 같은데 적당히 달래다가 무시하고 체력이 전과 같을 거라 밑고 너무 막 놀았나보다.
운동하고 몸을 아끼고 나를 정성껏 돌봐야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했을까?
아마 아닐것이다. 젊음날은 젊은날 대로 한껏 누리고 살았으니 이제는 젊지 않은 날을 그 방식으로 살면 되는 거다.
평생 비만인 상태로 살아왔던 몸뚱아리를 일단 정산체중으로 돌려서 무릎, 허리, 발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자.
운동하는 습관을 몸에 익혀서 이제 숨쉬듯, 밥먹듯, 운동하면서 몸을 살피고 살자.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데는 좋은 것을 적당히 먹는 식습관도 중요하단다. 잘 알고 부지런히 요리해서 맛있게 먹자.
그렇게 “다이어트”를 하며 겨울을 나고 있다. 앞으로 두어달 2014년에도 그럴것 같다. 아직 몸이 완벽하게 회복된 건 아니고 겨울은 추우니까 지금 있는 이 따뜻한 곳에서 잘 지내봐야지. 여유가 생겨서 하다가 중도에 포기했던 “아티스트웨이”도 꾸준히 하고 있다.
매일매일 아침에 일기처럼 “모닝페이지”를 쓰고 유치하지만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사소한 행동(아티스트데이트)를 통해 내 안에 숨어지내고 있는 아이같은 창조성을 깨우치는 워크북인데, 벌써 6주차에 접어들었다. ‘아티스트웨이’에 따르면 내가 간절히 원하면 신이 그 바람을 듣고, 혹은 어떤 기운들이 작용해서 운명처럼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데 나 역시 최근 생긴 우연같은 기분좋은 일들을 덕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일은 1월 1일.
이른 생일모임을 위해 친구들을 만난다. 참 좋아하는 사람들.
오랜만에 함께 영화도 보고 가는 김에 공식적인 절친도 만날 셈이다. 이 절친은 약속을 따로 하지는 않고 연락을 할까 말까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먼저 연락이 와서 신기했다. 그래서 내일 저녁에 만든 카레를 내일아침에 배달하기로 했다. 이런것들이 작지만 동시성이 아닌가 한다.
따듯하고 기분좋은 연말이다.
조용하고 풍요로운.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충만한 마음으로 평소처럼 잠들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