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음 행선지를 정하는 기준은 집이다. 지낼 곳이 정해지면 그리로 간다. 그래서 “산책자의 모닝커피”가 자기 동네나 어떤 행사에 와서 커피를 내려주길 바라는 분이 나타나면 (고맙게도 가끔 있다. 그러니 이 글을 읽으시는 누군가도 부담없이 연락해보시길) ‘먹여주고 재워준다면 어디든 간다’라고 대답한다. 설사 초대해주신 분이 숙소를 제공하지 못해도 어떻게든 묵을 곳은 생기게 마련인데 그렇게 해서 좋은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그 인연이 다른 장소로 나를 불러 머물고 옮기는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부르는 곳이 없다해도 언제든 환영해주는 ‘집’이 몇 군데 있고, 아직 간다간다 말만하며서 미뤄놓은 곳, 소개 받았지만 안 가본 곳, 모르는 곳이 많으니까 다음에 어디로 갈 지는 걱정하지 않는다.
나를 설명하기는 참 성가신데, 대충 얘기하고 나면 사람들은 ‘커피 팔아 경비 마련해서 여행하는 사람’ , ‘여행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 보는 것 같다. 언제부터 이렇게 살았느냐, 어디어디 가봤느냐, 언제까지 이러고 살거냐, 그건 그렇고 커피가 팔리느냐, 그 돈으로 생계가 가능하냐고 묻고 걱정한다. 당연히 커피판매 수익만으로 살 수는 없다. 나는 그럴듯한 ‘여행가’도 아니고 거창한 신념이나 목표를 가지고 ‘이런 생활’을 시작한 것도 아니다. 어쩌다보니… 다음에 어디로 갈지도 정하지 않고 언제까지 어딜가서 어떻게 하겠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목표도 없다. 게다가 아직도 정확한 원가 및 순이익을 계산할 줄 모른다. 생두 1kg이 대략적으로 몇 잔의 커피를 만들어내는지를 셈하지 못한 건 내가 게을러서가 맞지만 내 인건비를 빼고라도 생두를 볶는데 들어가는 가스, 도구와 장소를 사용하는 데 드는 비용을 얼마로 계산해야하는지, 그렇게 볶은 원두로 커피를 내릴 때 드는 물, 물을 끓이는 에너지, 종이컵, 여과지 같은 소모품, 설거지나 커피찌거기 뒷정리 비용은 계산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 비용이 온전히 내가 부담하는 비용일 때도 있고 머무는 곳에 부과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부분은 내가 값을 치르기도 하고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에 계산하기가 더 어렵다. 그저 사먹는 사람 입장에서 한 잔에 3천원 정도면 가게에서 마시는 비용대비 내가 내리는 커피의 맛이나 분위기에 적당한 값일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말대로 그때 그때 손에 쥐는 돈이 다음 콩을 살만 한 돈이 되는가만 따진다.

나도 돈에 민감하다. 쓸 데가 있고 들어올 곳은 적기 때문에 신중하고 계획적으로 쓴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일해서 돈을 벌어 그 돈을 쓰면서 사는 게 일반적인 삶의 방법이니까 많이 벌지 못하는 나는 더 신경쓴다. 먹고 살기 위해 돈을 쓴다고하지만 돈을 벌기위해서 돈을 쓰는 경우도 많다. 생필품 외에도 일할 때 필요한 것들을 사고,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불편함과 시간을 줄이는 장치들을 이용하고, 일하느라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도 돈을 쓴다.
나는 뭔가 사고 싶어서 안달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살 수 있으면 사고 누가 사주면 받고 사고싶다가도 좀 지나면 잠잠해진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데 익숙해지면 돈을 벌기 위한 투자비용, 스트레스 해소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일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시간과 에너지로 사는 대신 천천히 직접 만들거나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줍거나 얻어서 재활용하는 데에도 거부감이 없고 누군가의 배려나 호의도 있는 그대로 환영한다. 시간이 많으므로 느리고 불편하지만 비용이 싼 선택을 할 수 있고 그 불편함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바쁜 사람은 택시를 타고 한가한 나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셈이다.

이 모든 게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덕이라는 말도 맞다. 나는 아직 젋고 지독한 가난을 겪은 적도 없고 아직까지는 (아마 앞으로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감도 없다. 주변 친구들은 만나면 밥을 사주고, 갖고 싶은 물건을 말하면 사주기도 하고, 기꺼이 자기 공간을 내어준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경력을 쌓고 인맥을 유지하면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처럼 나는 좋은 사귐을 만들고 유지해야한다. 어디서든 잘 지내다가 장날마다 찾아오는 이야기꾼처럼 찾아가 그간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좋게 놀다오면 된다. 나를 지지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잘 살면서 이런 삶이 마치 직업처럼 어엿한 삶의 방법이 된다는 걸 보여주면 된다. 늘 즐겁게 잘 놀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잘 지내는 거니까, 나는 잘 살아내서 성실하게 그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거다.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늘 감사하다. 그치만 다 그럴만 하니까 그런 거라는 옛말처럼 내가 잘하니까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 것일게다. 앞으로도 잘 해야지. 이 모든 것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이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삶을 꾸릴 수 있는 거다. 더 많이 욕심내거나 일부러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것,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 이게 다다. ‘젊음’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을 수는 없다. 최소한 5년은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 뒤에는? 그 때가서 생각하자. 미리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지금을 진심으로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길이 열릴 거다.
각자의 인생은 학교를 다니든 회사를 다니든 집에서 살림을 하든 어디선가 각각 본분에 맞는 무언가를 하면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이어 완성한다. 성인이 되면 제 한몸 건사해야한다는 조건이 추가되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을 하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어렵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사람들과 갈등을 해결하며 버티는 것도, 꿈과 현실을 저울질하며 고민하는 것도 다 어렵다. 내가 고민을 하든말든 전화요금도 월세도 보험료랑 카드값은 자비없이 빠져나간다. 월급날이 되어도 다음 월급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사니까, 3개월 고비를 넘기면 3년은 훌쩍 간다던데, 사는 게 별건가 버티는 거지, 여길 그만두고 옮긴다고해서 다를까, 여러가지 고민을 들고 이리저리 헤매보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다음날도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살다보면 정말 3년도 가고, 5년도 가고, 10년도 가기는 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나는 한 직장에서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매번 그만두고 그만두고 또 그만두었는데, 늘 너무 힘들었다. 남들도 다 힘든 거 알고 힘들지만 다들 잘 버티는 데 왜 나는 못하는 걸까. 모두 회사 다니기 힘들고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그만두는 사람은 언제나 나뿐이었다. 난 정말 이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인걸까. 직장생활이라는 건 원래 그런거니까 월급날 기다리면서 살고, 가끔 휴가가고 여행하고, 나를 위해 가끔 선물도 하면서 사는 거라고 했다.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만 왜 유별나게 구는 걸까. 회사를 다니는 중에 틈틈히 여행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 때뿐, 돌아오면 독약같은 그리움에 현실을 견디기가 더 힘들었다. 그러다 드디어 당분간은 다시 회사라는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결심했다. 중간중간 일들이 있긴했지만 2년 정도 그렇게 살아보니 이게 여행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사실 나는 원래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회사를 안 다니는 게 좋은 거였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어디를 가보고 싶다는 마음에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그냥 기회가 생기면 그때그때 순간의 선택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그게 나였다. 그렇게 마음의 방향이 원하는 곳으로 몸을 틀어 살았던 순간들이 가장 행복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고, 일을 그만두고, 어디로 떠났다가 다시 일을 하고 또 그만두고 하는 과정들이 경력관리를 전혀 하지 못하고 맘대로 살아온 철없는 인생이기는 했지만 그나마 내 마음의 방향이 원하는 길이었던 거다.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 그곳이 어딘지는 모른다. 낯선 장소로 떠나는 여행일 수도 있고 은둔자처럼 아무데도 가지 않는 생활일 수도 있다. 재밌는 일이 생겨서 새롭게 회사를 다니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끈기 없는 사람도 아니고, 비루한 일상을 탈출한 모험가도 아니고, 다른 이의 환상을 먹고 사는 여행가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모르는 길을 가는 사람’일 뿐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가는 그 길-회사다니고 돈을 모으고 결혼하고 아이낳고-이 더 어렵지도 쉽지도 않다. 시골로 내려가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 오지를 여행하며 한계를 뛰어 넘는 사람 등 특이한 사람들의 생활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여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볼 때면 그렇지 않은 보통의 삶을 사는 우리는 더 우울해진다. ‘저게 사는 게 사람사는 건데, 나는 여기서 버둥거리면서 살고 있구나. 멋있다.’ 어떻게 살든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은 닥치고 사람은 늘 자신의 선택에 불안해할 텐데 미디어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끔은 당사자들도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대안을 선택했는데 행복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사람들의 ‘멋있다’ ‘부럽다’는 말을 듣고 살아야 하니까. 나도 한 때는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두려움을 떨치고 더 큰 세상으로 나오니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었다며. (어서 뒤따라 오시라는 말입니까) 나 역시 ‘평범한’ 일상을 사는 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부러움과 배려를 먹고 사는 것도 맞다. 그렇기 때문에 늘 조심하려고 한다. 내 선택은 내 적성과 능력에 맞는 삶의 방식일 뿐, 내 선택이 더 반짝이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소중한’ 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라고.
내가 커피를 내리며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은 내 이런 생활이 멋있어보인다고 부럽다고 말한다. 20대의 나라면 “그럼 당신도 그렇게 사세요. 당신이 놓지 못하는 편안함, 돈이나 사회적 안정감 같은 것만 포기하면 이렇게 사는 게 어려울 일이 있나요, 내일 당장 회사를 그만두면 되잖아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실제로 그렇게 대답한 적도 많다. 그리고는 마음 속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월급의 노예, 겁쟁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진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정말이다) 그렇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늘 같은 장소로 출근해서 비슷비슷한 시간을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끈기와 성실함이 오늘의 당신을 만들었고 그 선택이 바로 당신이다.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이 강한 거다. 나는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면 미칠것만 같아서 어떻게든 빨리 그만두려고 갖은 애를 썼다.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내가 맡은 일들을 밤을 새워서랄도 문서로 정리해놓고 사직서를 책상 위에 두고 나온 적도 있다. 그때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 어리기도 어리석기도 했다. 설사 남은 자들은 업무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랬을리가) 난데없는 상황에 따른 당혹스러움은 어쩔 것이며 그 분위기가 사실은 업무내용과 직결되는 것일 터다. 물론 회사라는 게 이런 일들이 처음은 아닐테니 어떤 식으로든 수습은 되고 굴러는 가겠지만.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어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3개월을 버티면 3년을 버티고 3년을 버티면 과장도 달고 팀장도 되고 업계에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된다는데 나는 늘 1~2년을 버티지 못하고 늘 신입으로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다. 그때는 전업 여행가도 부러웠고 성실한 직장인도 부러웠고 주부도 부러웠고 뭐든지 꾸준하게 3년 이상 하고 있는 사람은 다 부러웠다. 나는 이도저도 아닌것만 같았다. 주기적으로 회사를 들어갔다가 다니기 싫다고 괴로워하다가 그만두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런데 가까운 친구가 어느날 내게도 꾸준한 게 있다고 말해줬다.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는 꾸준함’. 그때부터였을 거다. 남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내 마음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바라보며 그 길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대신 지금 이렇게 하고 싶은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방법을 찾고 감당한다. 그 뒷감당은 내가 진심으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심지어는 이전에 억지로 감당해야 했던 괴로움이 비하면 견딜만 했다.
우리네 삶에는 여러가지 길이 있을 거다. 누구는 같은 직장에 10년, 20년 근속하면서 자리를 지기는 우직한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직종이나 업종을 달리하면서 자신의 전문분야를 넓혀가며 어떤 식의 자기 경력을 만드는 사람도 있을 거다. 세상에 다양한 종류의 노동과 직업이 있을 텐데 어떤 종류의 길들은 많은 사람들이 가기 때문에 선택하기가 더 쉬울 뿐이다. 어디든 기쁨과 어려움이 있을 테고 소중한 하루하루가 있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지만 저기 앞에는 가시밭길을 헤치며 가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사실은 어쩌면 이 길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다. 바다가 보이는 길을 갈 것인가 숲길을 갈 것인가. 바다가 보이는 길도, 숲길도 아름답기도 하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한 것처럼. 당연히 가다가 이 길이 아닌가 싶으면 돌아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지난 10년 간 그랬던 것처럼.
내 삶은 모험도 아니고 여행도 아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당신과 우리 모두의 삶도 모험이고 여행이다. 그렇지만 나는 모험 같은 일상을, 그저 모두에게 소중한 그 하루를 내 방식대로 산다고 말하고 싶다. 내 사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좋아보여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든, 영감을 불러일으켜 무언가 다른 걸 시도하게 한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감사한 일이다. 마치 예술가처럼. 남들이 많이 가는 길이라고 해서 쉬운 길일리가 없고 남에게 쉬워 보인다고 해서 내게도 쉬울 리는 없다. 나는 숱하게 헤매면서 내 취향을 찾아냈고 수많은 갈래길에서 그나마 이쪽이 내가 가기에 수월해보여서,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이 선택을 한 것이다. 당장 몇달전까지만 해도 ‘와 이 길도 만만치는 않구나’를 느끼고 절망하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사실 모르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