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봄, 나는 산호에 산다.
봄이 왔다. 주인장 산호언니말에 따르면 봄에서 여름 넘어가기 직전, 여름에서 가을 넘어가기 직전 보름씩 30일 정도가 산호의 가장 좋은 시절이란다. 지금은 봄, 충분히 좋은 날이다. 아침마다 이리저리 볕을 따라다니며 커피도 먹고 빵도 먹고 미숫가루도 먹는다. 내가 고양이라면 맘껏 갸릉갸릉거릴텐데 사람이라 낼 수 있는 소리가 ‘아~’ 밖에 없어서 아쉽.
2월 마지막 주, 천안에서의 겨울나기를 끝내고부터 정신없이 봄을 맞이하러 다녔다. 잠시 대전에, 전주에, 광주에, 나주에, 경주에, 부산에, 제주에 들러들러 다시 대전. 고작 한 주를 살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너무 많은 장소에 가고,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산처럼, 아니 꽃처럼 많다.
아침 6시에서 6시 반 사이에 일어나 앞방 아가씨와 함께 수영장에 간다. 걸어서 20여분. 7시 10분 강습을 듣고 8시 수업이 끝나면 20분 정도 연습을 하고 가벼워진 몸으로 사뿐사뿐 돌아온다. 수영을 배우는 이유는 #ㅂㅂ 프로젝트의 일환 + 지난 겨울부터 해오던 #뫔튼튼 프로젝트의 연장이다. 어푸어푸 십여년 전 수영을 처음 배웠던 때와 같이 지금도 물에 잘 뜨지 않는다. 숨도 잘 안쉬어지고 팔을 젓기라도 할라치면 꼬르륵 가라앉는다. 그때는 잘 안되면 답답하고 속상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내 몸의 반응 속도가 그만큼이구나,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몸과 마음을 잘 살피고 있으니 하나도 조급하지 않다. 한달에 못하면 두달에 두달에 못하면 세달에 하면 된다. 11월 발리 가기 전까지 물과 친해지기는 하겠지. 그래서 수영장 가는 게 참 재미있다. 덧붙여 체중이 지속적으로 주는 효과도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 역시 조급하지는 않다. 아주 천천히라도 운동하고 적당히 잘 챙겨먹으면 몸이 적정한 수준으로 제자리를 찾아갈 걸 믿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출근복장으로 갈아입고 1층으로 출근해서 커피를 내린다. #보따리카페 #산책자의모닝커피 좌판을 차리지만 보통 아침에 손님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은) 낮에도 잘 없다. 나는 게스트룸이 있는 2층 “혼돈의방”에 월세로 살고, -1/2층 계단참에 커피집을 차렸다. 그리고 산호의 식구들과 친구들이 주된 손님이다.
산호여인숙이 자리한 대흥동은 대전 원도심으로 재미있는 이웃들이 많이 산다. 연극공동체 ‘나무시어터’ 단원들은 지난 겨울 주1회 산호에서 커피집을 열었을 때부터 단골이었고 근대문화재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연구자모임 ‘대전근대아카이브즈포럼’의 연구자 선생님들에게도 몇차례 커피를 대접했다. 대안화폐 두루와 지역품앗이 활동의 거점이 되는 원도심레츠 언니들과도 슬슬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여행자카페+북숍 ‘도시여행자’, 술에 취한 아빠가 들고와도 혼나지 않을 좋은 과일을 파는 ‘사과나무’, 충청권에서 유일하게 예술영화를 볼 수 있는 ‘대전아트시네마’에도 한 두번 들렀다. 아직 만나지 못한 동네사람, 가보지 못한 장소들도 있을테지만 산호여인숙에 머무는 덕분에 편하고 재미있게 커피를 내리게 되었다. 커피는 원래 어디든 찾아가서 내렸던 거라, #출장드립 요청이 어색하진 않은데 우쿨레레연주와 노래와 묶은 패키지는 처음이었다. 4월 6일 ‘도시에 살다’ 전시 오픈 행사 때 커피도 내리고 노래도 불렀다는 말씀. 떨렸지만 재미있었다. 커피 열 잔과 노래 두 곡 패키지로 “산호커피” 메뉴를 출시해야겠다. (혼돈의 방으로 초대하는 ‘혼돈커피’도 있으니까)
매달 열리는 짜투리 시장에도 나가야지, 봄이 왔으니 이번 달(4월) 19일에 열린다.
인연이 닿아 재미있는 일거리도 얻었다. 내가 ‘새싹돌보미’라 이름붙인 이 알바는 나무시어터 극단이 올리는 2014년 정기공연 “낙타가 사는 아주 작은 방”에 출연하는 배우의 두 어린 자녀를 돌보는 일이다. 연극 연습과 공연은 주로 저녁에 있는데 얘들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서 지금까지는 연습실 한 켠에서 비중이 적은 배우나 스탭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보았다고 한다. 나는 약간의 벌이가 필요하고 시간이 많은 사람, 극단은 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라 서로가 행복하게 공연 전 일주일부터 공연기간까지 열흘 정도, 아이들과 저녁에 놀고 있다. 나무의 아이들이라서 “새싹”이다. 아이들을 보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데 다행히 지금까지 여러 이모삼촌들과 잘 지내던 친구들이라 나와도 잘 지내는 편이다. 친구들은 “너가 얘를 본다고?”하면서 깜짝 놀라지만 내게도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4월 9일)부터 딱 닷새 간만 올리는 나무시어터의 정기공연 광고도 잠깐.

산호여인숙이 마련하는 두 번짹 공간 대동작은집은 5월에 연다. 두둥. 그럼 또 얼마나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벌어질까. 대전의 봄은 오늘도 따뜻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