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14 5월

[세쪽책] 비규정직

003호 [비규정직]
대동작은집 2014년 5월 31일 발행 :
www.facebook.com/3pagesbook :
글_신바닥 : 책값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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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 3년 전인 2011년 8월부터 직장인으로 살기를 멈추고 여행자, 프리랜서, 커피장수, 집귀신, 한량, 아마추어예술가, 백수, 날품팔이꾼 등으로 지낸다. 처음에는 돈이 떨어지거나 재미가 없어질 때까지만 ‘이런 생활’을 하려고 했다.

여태까지 이직을 자주 하기는 했지만 직장인 아닌 모습을 상상하긴 어려웠다. 매번 2~3년도 버티지 못하는 스스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다니지 않는 순간에도 늘 다음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어느 일터에서도 이러기를 반복한다면 이직이 답은 아닐 것이다. 이번만큼은 불안함이나 조급함 때문에 습관처럼 다시 직장인이 되지는 말자고, 모아놓은 돈을 다 쓸 때까지는 걱정없이 놀자고 생각했다. 오래오래 놀고 싶으니 돈은 아껴써야했다. 먹고 자는 데 돈이 들지 않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적게 쓰고 가끔 버니 지금(2014년 5월)까지도 돈이 큰 문제는 아니다.

어라, 그러면 이렇게 평생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다음엔 어디서 무얼 할까,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계획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준비하는 과정이 귀찮지만 신나고, 어렵지만 즐겁다. 세상 모든 이가 내 편인 것 같다가도 괴로워서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은 날도 있다. 그래도 직장인으로 사는 것보다는 여전히, 훨씬 재미있다. 지낼수록 ‘이런 생활’은 특별한 선택이라기보다 내가 할 수 있고 여전히 계속하고 싶은 유일한 생활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걸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즐겁고 행복한 것도 재미요, 불안하고 괴로운 것도 재미다. 매 순간마다 배우고 깨닫는 게 있으니까. 이제 재미없을 때 그만둔다는 기준은 없애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당연히 ‘이런 생활’도 가능하려면 최소한의 돈을 벌어야 하니 이것저것 해보는 중이다. 커피도 팔고, 품을 팔아서 아이도 돌보고, 옷가게에서 판매일도 하고, 청소도 하고, 가이드도 하고, 기획서도 쓰고, 글도 쓰고, 노래도 한다. 노동의 대가는 현금 외에도 식사나 잠자리 제공과 같은 서비스나 현물로도 받는다. 돈을 버는 일은 대부분 힘들지만 그래도 할만한 것과 다시 할 수 없는 일로 나뉜다. 경험을 통해 이렇게 가능한 일의 목록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다.

도움도 많이 받는다. 운이 좋게 그런 곳만 찾아가는 지도 모르겠지만 베풀고 나누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이어진 다른 인연을 만나 ‘이런 생활’이 이어진다. 미리 몇 달 뒤를 걱정하고 고민하지 않는다. 그 때 되면 어떻게든 된다. 무슨 일이든 생긴다. 우연히 좋은 기회가 찾아오기도 하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때는 벌이면 된다. 모든 과정이 ‘이런 생활’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생활’을 계속해나가는 것 자체가 내 직업이라고 여긴다. 직업인은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한다. 그리고 여가시간에는 문화생활도 하고, 취미생활도 한다. 내가 일하고 놀고 사는 방법도 그와 같다. 직접 돈벌이가 되는 일도 하지만 일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이런 생활’을 한다. 열심히 놀며 잘 산다. 사람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혼자도 잘 논다. 읽고 보고 느끼면서 공부한다. 쓰고 그리고 노래하면서 삶을 기록한다. 한 장소에 오래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정해진 몇 가지 일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문분야가 없기 때문에, 기존에 존재하는 방식이 아니라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다는 차이는 있지만 나 역시 돈과 재화를 얻기 위해서 일을 한다. 그래서 나는 비규정직 노동자다.

어떤 이들은 나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낀다. 대리만족하는 심정으로 부러워하기도 하고, 저것 보다는 낫지 하며 위안을 받기도 할 것이다. 다르게 사는 걸 상상할 수 없어서, 두려워서, 귀찮아서, 게을러서 지금처럼 사는 걸 원하지 않으면서도 경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뿐만 아니다. 자기가 처한 조건에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최선인데, 보통이라고 말하는 저 높은 기준에 닿지 못하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도 그렇다.

‘이런 생활’은 이상하고 신기해 보인다. 설명하기 어려운 비규정직일뿐, 그냥 우리 모두는 생긴대로 다양하게 살 뿐이다. 들여다보면 다르게 사는 삶도 행복과 불행이 함께하지만 남들 사는 대로 따라 살지 않아도 큰일 나는 거 아니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살면 된다. 여기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

[songs] 묻지 말아요 들어오지 말아요

2014. 5. 대전 대동작은집에서 완성.
산호여인숙에 살며 수영장에 열심히 다니던 어느날, 왜 샴푸를 안 쓰냐, 왜 비누샤워를 안하고 수영장에 들어가느냐, 왜, 왜, 왜.. 그럴꺼면 수영장에 왜 오느냐.. 오지랖 걱정여사님 공격에 와르르 무너졌다. 아 쫌 알아서 한다고, 물어보지 좀 말라고. 훅 들어오지 좀 말라고. 중얼중얼 거리며 만들기 시작한 노래. 계속 붙잡고 있다가 세상풍파에 흔들리고 상처받는 깨알같은 소심한 종족들의 영혼을 위해 드디어 완성. 아직 감기가 다 낫지 않아 목소리가 약간 맹맹. 하지만 미룬다고 나중에 제대로 할 턱이 없으니 일단 대공개.

 

[묻지 말아요 들어오지 말아요]

작은 우주 이렇게 깊고 험한 곳
숨을 곳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다
볕이 드는 곳으로 왔네
여기 조용한 내 자리까지도
들린다 흐른다 넘어온다
묻지 말아요 들어오지 말아요
묻지 말아요 들어오지 말아요

나의 우주 이렇게 좁고 험한 곳
쳐다보지 말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마음을 다 알고 있어요
묻지 말아요 들어오지 말아요
묻지말아요 들어오지말아요

[유난무난_00] 이런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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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뒤늦게 여행기록을 정리하는 이유는 써 놓은 일기가 아까워서다.

2.  그때는
어디든 가고 싶었다. ‘거기 좋다더라’ 말 한마디에서 여행은 시작되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찾아보고 다른 이의 후기를 읽으면서 준비했다. 실제로 필요한 정보와 구체적인 계획은 생각 않는 여유, 혹은 무모함.

3.  거기에선
어디여도 상관없을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다녀와 돌이켜보면 더욱 그렇다. 자연과 사람이 주는 감동, 끝이 정해져 있는 일정 안에서 느끼는 몸과 마음의 기쁨과 슬픔,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 어색한 행동, 익숙한 생각의 흐름,  당연한 외로움, 기적같은 도움들,  익숙해지는 손놀림과 감정,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인정. 뉴질랜드 여행정보로는 유용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 부분은 여행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4. 그러니까,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그래도 자랑은 해야하니까, 어디를 어떻게 다녀왔는지, 여행기가 포함해야 하는 내용들은 여기에 포함된다. 여행경로와 일정, 준비물, 추천하는 여행지 등. 역시 주관적인 이야기가 될 테지만 여행후기는 원래 여러가지 선택지를 펼쳐보이고 경험담을 나누는 거니까. 자전거를 사고 들고오기까지 고생했던 이야기나 내가 참가했거나 하고 싶었던 빙하 체험, 트램핑 코스, 자전거 트레일, 숨은 트레일 등 여행상품을 소개할 수도 있겠다.

5.  다시 지금
글을 끝내고 나면 지금 이렇게 여행하듯, 돌아다니면서 사는 생활에 대해 한 겹 정도 더 성숙해질 지도 모르겠다.

IMG_1001유난해 보이는 바닥 씨가 2011년 11월에 (와, 벌써 2년 반이나 지남) 뉴질랜드로 떠난 무난한 자전거 캠핑 여행기를 정리할 예정입니다. 연재는 아니고 매주 화요일에 글의 일부를 올리고, 게으르지 않게 계속 쓰려고 하는 약속이지요.  금요일에는 이런저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세 쪽 책도 꾸준히 발행합니다.

[ㅂㅂ_02] 부산은행 통장 잔액은 5월말 기준 80만원

나를 아끼고 지켜보고 지지하고
현금+송금+현물+음식+편지+문자+마음+비밀로 사랑을 보내는 후원자 여러분께 보내는
편지이자 보고서.
(후원자여러분이라니, 이런 창조경제돋는 어휘를 봤나.
‘ㅂㅂ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바닥의 친구들’ 이니 줄여서 3ㅂ라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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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늦었어요.
#ㅂㅂ 프로젝트를 선언하고 부산은행 계좌를 공개한 지 벌써 넉 달쯤 지났네요.
3월부터 입금으로, 선물로, 콩쥐의 두꺼비처럼 꼭 필요한 도움으로, 눈물나는 편지로 마음들을 전해받았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참말로 고맙습니다.

일단 부산은행 계좌 소식이 궁금하실 것 같아서 잔액을 공개합니다. 2월부터 시작했으니 순탄하게 4개월치 80만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커피나 노동에 대한 보답이 아닌 순수한 후원금은 85,020원이에요. 그러고보니 무려 10%에 해당되는 금액이네요. 솔직히 사람 욕심이란게 끝이 없는 거니까 만원이 생기면 이만원을 바라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렇게 순수하게 ‘네가 믿는 대로 잘 살아라, 기운내서 계속 나아가라, 여행 경비에 보태라’고 돈을 보내주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20원은 부산은행에서 준 이자입니다. 부산은행도 제 삶의 방식을 20원 어치 이해하나봐요.

“3ㅂ님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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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버젓이 이렇게 캡쳐에 40원이라고 나와있는데, 20원이라고 쓴 이유는 뭘까요. 이런 실수를 맨날 반복하는 게 특정 장애라고 하던데 아빠 기일도 맨날 16일인지 18인지 헷갈리고, 40원이라고 읽고 20원이라고 쓰고 말이지요. 40원으로 수정하려면 위에 그림부터 다 다시 고쳐야 하니까 그냥. 내 잘못이다. 나는 원래 그런 실수를 종종한다.고 덧붙입니다. 부산은행은 나를 20어치 더 사랑하는 걸로 결론_5.27.추가)

나머지 90% 는 커피를 팔거나 이것저것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채웠습니다. 운좋게 노트북도 중고로 팔았고요. 계획대로 매달 20만원을 맞춰서 부산은행 통장으로 이체했습니다. 얘 돌보기, 기획안 작성/검토,  마트 야외행사장에서 옷 판매, 핸드드립 과외,  상담/대화/경청 서비스(한 시간 동안 함께 커피 마시며 대화하는 혼돈커피), 우쿨렐레 연주와 노래, 작명 등 할 수 있는 일들을 했지요.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들에게는 외화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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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만큼 좋은 건 현물, 선물,  맛있는 거 였는데 받기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발리여행 잘 다녀오라고 먹을 걸 주거나 사준 건 아니지만, 여행직전까지 제가 사는 것 자체가 여행준비니까 중간에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여행 경비가 필요하지만 사는 데도 돈이 드니까 돈이 들지 않게 도와주는 일도 결과적으로 여행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요. 마음을 내어주는 분들이 그걸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전 고맙게 받고 이렇게 3ㅂ님들께 생색을 잔뜩 내며  ‘나 이렇게 사랑받으며 살고 있다고요’ 보고합니다.

무엇무엇 때문에 특별히 전해지는 마음도 좋고, 오고가는 마음 속에 그냥 불쑥 전혀지는 것들도 참 좋아요. 산호여인숙 옆집 할머니 파 다듬는 거 도와드리고 얻은 사과 한 알, 귤, 파 한 주먹을 얻었을 때는 해운대 김할매를 잇는 할매친구를 사귀었구나 생각하고 기뻤어요. 대동으로 이사오면서 이제 대동할매들과 친해져야 하는데 아직 낯을 가리는지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뻐서가 아니라 상추가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 솎아낸 잎들을 좀 나눠주시긴 했습니다.
가끔 서울에 가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앞다투어(?) 맛있는 걸 사줍니다.  나도 볼 겸 여행도 할 겸 대전에 놀러온 친구들과는 대전음식인 두부두루치기와 성심당 튀김소보루, 부추빵을 함께 먹습니다. 저도 사람구실 하느라고 멀리서 친구가 오면 부담가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대접하기도 합니다. 트위터에서 알게 된 친구님이 찾아오기도 했고, 선물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산호여인숙에 살 때는 같이 사는 친구들과 함께 요리하고 나눠먹고 즐겁게 놀면서 선물 같은 축복을 맘껏 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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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잠깐 부산에 갔을 때 절친 해운대 김할매는 이번에도 복돈 (빳빳한 천원짜리 신권 10개 묶음)과 미역을 선물로 주셨어요. 빈혈이 심해져서 간간 노래를 불렀더니 친구들이 간도 사주고, 미역국도 끓여줬죠. 잊지 않고 예쁘다고 찜했던 통을 책과 함께 보내준 친구, 커피콩을 보내준 친구, 보들 외롭지 말라고 친구를 데려다 준 친구도 있었죠. 보들이 옆에 작은 고양이가 바로 새동무. 이름은 미옥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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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먹을 것 뿐이었겠어요. 따지고 보면 지금 살고 있는 대동작은집은 산호부부가 집을 한 채 통으로 선물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대전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인 대동에, 원없이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는 공간과 조건을 만들어주었죠.
여기서 여행준비를 따로 하는 건 아니지만 2014년의 계획 중엔, 완결된 형태의 글작업을 손에 쥔다. 도 있었거든요. 6월 안으론 뭐라도 만들어낼겁니다. 그건 산호여인숙+대동작은집에 사는 조건이기도 하고 약속이기도 하고 제 다짐이기도 해요. 글쓰는 습관과 완결짓는 훈련을 위해 당장 ‘세쪽책’ 프로젝트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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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겸 방, 금메달, 바닥책과 술, 초상화, 나들이 길에서 만난 작약, 따뜻한 나라에서 온 향기나는 초, 나만을 위한 노래, 흔쾌히 내어준 자전거, 세상에 하나뿐인 전용잔. 무엇하나 고맙지 않은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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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고 보면 커피장사 밑천도 사람들의 마음이에요.
#보따리카페 트레이드마크가 된 레고드립스테이션은 마산 무브먼트 친구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산호에 있던 블럭으로 만든 거고. 여과지 주머니도 친구가, 전등갓도 친구가 만들어 준 거예요. 컵받침대도 선물로 많이 받았고, 오래전부터 쓰고 있는 테이블매트, 식탁보도 친구들로터 마련했죠. 휴대용 컵 등 필요한 물건이 있다 싶으면 막 사주고 보내주고….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운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커피를 내리고, 장사를 하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인사할 수 있게 되었죠. 3월에는 부산에도 짧게, 제주에도 짧게 놀러다녀왔는데 (고향가는 길에 들른 전주, 광주는 하루 씩) 그 바쁜 와중에도 조금 일해서 돈을 벌고, 선물을 챙겨 받았어요. 제주에서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접했는데 그 마음이 통했는지 타시텔레게스트하우스에서 콩을 좀 지원받기도 했죠. 맑은 영혼으로 볶은 커피콩을 역시 맑은 영혼으로 내려 나눠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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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물나게 고마운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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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ㅂ 프로젝트 주머니 속 행운의 돈들을 주욱 펼쳐봤어요. 행운의 2달러 지폐, 해운대 김할매의 복돈, 천안 피티센터 코치님이 행운을 담아 전해준 만원짜리 구권, 페소와 유로, 내가 좋아하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플라스틱 지폐가 들어있어요. IMG_0934이 돈들이 마구마구 번식해서 앞으로 다섯달, 목표한 금액을 꼭 채울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나를 원하는 손님을 만나도록 다시 적극적으로 움직여야겠어요. 그래서 일단 커피콩을 볶아서 원도심레츠(대안화폐 두루를 사용하는 지역 품앗이 활동 마을기업)에 내다 팔기로 했어요. 콩팔아 발리 갈 기세로 열심히 볶고 있습니다.

IMG_0619 IMG_0946 IMG_0978그런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예비 3ㅂ님들을 위해 부산은행 계좌번호 올리고 이번 편지(보고서)마칠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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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5월이 다 지나가는 마당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해오던 걸 계속 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 늦은 4월 정리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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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엔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년전에 잠깐 배우려다가 운동신경없음+조급함+부끄러움+참견쟁이아줌마+무성의한수영강사 등등 복합적으로 그만 둘수밖에 없었다. 4월엔 수영장 쉬는 날 빼고는 거의 수영장에 갔다. (물론 지금 5월은 개.망.) 수영을 배울때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이전에 배울 때와 내 맘이 어떻게 다른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지금은 수영장 쪽으로 발길도 안돌리는 상태가 되었지만 너무 늦기 전에 조만간. 배움이나 훈련에 대해.

IMG_0930 혼자 방에서 술을 마신 밤이 네 번이나 있었다. 선물 받은 기념품 크기의 럼부터, 뛰쳐나가 사온 작은 병 와인, 캔맥주, 산호여인숙 냉장고에 있던 소주+오렌지 쥬스까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시작했는데, 모두가 어쩔 수 없던 대재앙 앞에서 취하지 않고 잠들 수 없는 밤이 계속 되었다. 숙취로 하루를 끙끙 앓고나서야 술을 마실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걸 다시 알아채고 금주.

로스팅을 세 번 했다. 단골도 생겼고, 짜투리 시장에선 팔이 빠져라 핸드밀을 돌려 커피를 내렸다. 커피버섯도 성황리에 완판했는데 버섯재배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아무데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나와 은덕, (스)껍데기와 알멩이)가 키우는 녀석들도 비리비리하다. 먹튀 아니 먹고 그냥 있음 상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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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봤고, 세 편은 방에서 컴퓨터로 봤다.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걸 느낌.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 귀엽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남들이 좋아하는 것처럼 당연히 좋아하게 되었다.

*한공주 : 가슴이 답답해서 몇번씩 앞자리를 발로 차대고 싶었다. 젠장. 무섭고 두렵고 눈뜨기싫지만 계속 보다보니 숨은 쉬어지더라, 편해지더라. 볼수있게 잘 만들어놓은 밭, 그게 연출/연기 덕이리. 어떤 상황은 기도밖에 수가 없듯 이건 일단 많이들 보는 게 좋겠다.

*만신 : 김금화 만신 개인삶은 짠하기도하고 쎈팔자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천재예술가를, 사람을 넘어선 존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그리고 진짜진짜 아름답고 또 아름다움.

*문라이즈킹덤 :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보다 이 영화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찾아봤는데, 좋긴좋은데 컴퓨터로 보니 못쓰겠음. 수지 옷 이쁘고 사랑스럽고 화면에서 매력이 넘치지만 컴퓨터로 보다보니 비교불가, 감상불가.

*안경 : 전에 볼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다시 보니 새롭게 느껴진다. 내 사는 모습이 영화속 사람들 같다하여 다시 찾아봤다. 천천히 사색하면서 고기 먹고 사는 건 참 부럽고 부럽지.

*화양연화 : 이쁜 화면이 보고 싶었다. 멋있는 남자 아름다운 여자도 보고 싶었고, 사랑은 모르겠다만 장만옥은 정말 아름답더라.

버거킹 와퍼를 세 번 먹었다. 친구들이 세 명 다녀갔고 (그 중 한 친구와 와퍼를 먹었다) 자전거 책을 보내준 친구도, 커피를 보내준 친구도 있었다. 대전에서 사귄 친구를 졸라 귀여운 그림책을 한 권 얻었고 우연히 읽기 시작한 한 권의 책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 책은 <후쿠시마에서 살아간다>

고마운 마음들에 신세지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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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에서 살아간다

원래 국가가 해야 되는 일인데, 일본 정보는 절대 하지 않을 거다. 왜냐면 아이들을 피난시키는 순간, 원전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에, 단순히 정부가 나서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후쿠시마 시민들과 다 같이 일어서고 있다. -20쪽

 

절대로 안전하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일본에서도 절대로 안전하다고 말해진 곳이 바로 후쿠시마였다. 한국은 지진도 없고 쓰나미도 없으니까 괜찮다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지진이나 쓰나미로 원전이 멈췄던 것이 아니라 전원이 멈추면서 발생한 문제였다. 때문에 다른 일에 의해 전원만 꺼지면 언제든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절대 안전이라고 얘기하면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걸 얘기하기 위해 우리가 다시 올 테니 그렇게 연대해가면 좋겠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체르노빌 원전 터졌을 때 일본 원전은 체르노빌과 다르다고 얘기햇었다. 똑같은 얘길 하고 있는 거다. -59~60쪽

이전에는 시민성이, “정부가 하는 게 옳고 돈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면 돼”하는 것이었다면, 3.11을 계기로 국가에게 배신당했다, 버려졌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실감하기 시작했다. -21쪽

두려움만으로는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 연대는 가장 절실한 사람들과 손을 잡는 것이라 배웠고 그렇게 생각한다. 앞서가는 사람들과 손을 잡는 것은 연대가 아니다. 넘어지는 사람을 받치는 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의식적인 연대이다. 그렇게 우리는 의식적으로 손을 잡았고 앞으로도 손을 잡을 것이다.  -78쪽

IMG_0642IMG_0639커피를 내려 파는 것 외에 세 가지 일을 했다. 공연 준비가 한창인 연극배우의 자녀를 돌보는 “새싹돌보미”, 전시 오픈일에 커피케이터링과 묶어서 판매한 우쿨렐레 공연, 대형마트 외부 행사장 판매 아르바이트. 아이를 보는 일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하고 싶을 정도로 생각할 거리, 배울 거리가 많은 일이었고 우쿨레레 공연과 노래는 매우 부끄럽지만 놀고 먹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최적의 베짱이 아르바이트. 마지막판매아르바이트는 내 몸과 마음을 무너져내리게 해 5월을 망쳐버린 극단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다시 하게 될 일은 없을 테니 인생 공부였다고, 진로탐색을 위한 직업체험이었다고 치면 덜 괴로워진다. 이 역시 “노동”에 관한 세 쪽 책에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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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아 지켜본 마음과 행동

별 일 없이 잘 지낸다, 고 말하지만 썩 좋지는 않다.
아팠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에 대한 핑계 정도. 아마 아프지 않았더라면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더 힘들었을 거다.
사랑에 빠졌던 처음 그 순간처럼 대동은 그대로 있고, 매력넘치기 그지 없는 대동작은집이 나를 위해 이렇게 나타났는데.
모두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나는 여기 살고 있는데.
풍경, 햇살, 바람, 소리, 빛깔. 이 집을 둘러싼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인데.
‘우어어어어어어어 이렇게 좋다니, 나는 축복받았구나 이 은혜와 신세를 다 어떻게 갚지 어쩌면 나는 이다지도 운이 좋은거지?’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이상하다.
산호여인숙에 처음 발을 들일 때, 대동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여기 집이 만들어지고 있을 때, 여기서 살고 싶다고 생각할 때 그 순간순간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기억하는 내 몸은 계속 이상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좋지? 행복하지? 아니야? 안 좋아? 안 행복해? 왜 이렇게 불안해? 뭐가 이상해?

이상하다.
어찌할 줄 모르겠다.
늘 하던대로 아침이면 일어나 운동을 하고 아침을 챙겨먹고 일기를 쓰면 되는데, 열흘이 넘도록 하지 않고 있다.
아침에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당연히 더 누워있어도 되지. 하는 마음으로 뒤척인다. 회사를 가는 것도 아니고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남한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폐인이 된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별 생각이 없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을 가진 게 처음인 것도 아닌데 어쩔 줄 모른다는 게 사실이냐 바닥?

솔직해지자, 이런 느낌은 매우 익숙하다.
자주 그런다. 좋다고 달려들었다가 금새 시들해질 때의 느낌, 숨이 넘어갈 것처럼 오늘 당장 이걸 다 어떻게든 해버려야 하는 폭풍같은 마음이 지나가고 난 뒤의 마음이다. 그럴 때면 늘 지독히도 아팠다. 힘에 겨워 그 자리를 뜨고나서도 고통은 계속 된다. 집(?)으로 돌아가도 다른 장소로 옮겨도 서너달은 이런 방황들이 계속 되었던 거 같다. 작년에 나물을 그만두고 아파서 이리저리 떠돌 때도 그랬고 그 전 해 제주에서 집짓다가 몸이 다 상해서 그럴바엔 돈이나 벌자, 생각하고 회사를 들어갈 때도 그랬다. 아, 그렇다면 지긋지긋한 회피/도피 그러다 망. 한참 후에 정신차리고 기력도 살아남. 이런 반복이 또 시작된거냐.
그렇지만 사실 이런 마음이 도망가고 싶을 때만 생기는 거겠냐,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뭔가 해야하지만 하기 싫을 때, 지금 도대체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 총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겠는 ‘어려운’ 순간에 생기는 마음일 것이다.

나는 생활인으로서 판단, 선택, 결정을 하는 일이 아주 미숙하다. 독립적으로 혼자 산 적이 없고 막내라 언니들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도 운 좋게 귀인들을 많이 만나서 여행하듯 살 수 있었다. 여행자는 살림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우렁이 처럼 집을 치우고 간단한 장을 봐서 요리를 할 수는 있지만 쌀을 사고, 세탁세제를 사고, 쓰레기봉투를 사서 당연한 하루가 돌아가도록 살림을 할 필요는 없었다. 대동작은집에서 생활인으로 살아야 하는 게 지금 나한테는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혼자고, 방도 집도 넓고, 이제 채워지기 시작하는 새집이고, 그렇다고 늘 혼자도 아니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결정해야 할 게 많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서 자야할지, 뭘 먹어야 할지, 지금 이방향으로 가도 될지, 시간이 괜찮은지. 혼자 다니면 상의할 상대가 없어서 불안하고 외롭기도 하지만 투닥거림이나 의견조율, 상대를 배려하고 눈치 볼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편하다. 젼혀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도 하지만 어떻게든 다 좋게 해결된다. 어쩌면 좋게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결정이라고 쉽고 편했으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던 시간들이 있었겠지. 이제는 많이 어렵지는 않다. 두려운 순간이지만 곧 지나가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시간과 장소는 흘러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다는 걸, 어쨌든 여행은 잘 끝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일 터다. 돌아오지 못할 걸 뻔히 알면서도 어어어어 하면서도 떠나는 길, 적절하지 않은 소비인 줄 알면서도 던지는 지갑, 그리고 마음졸이기. 여기, 남아있는 한달여의 시간도 그럴테지. 긴 여행이라고, 내가 움직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도전할 마음이 생긴다.

20대 후반 외국에 1년 나가 살 때 나는 처음으로 로션과 샴푸와 속옷을 내 손으로 사봤다. 나는 오늘 ‘산책 삼아’ 네 군데의 마트를 돌아다녔고 인터넷쇼핑몰에서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를 고심끝에 장바구니에 넣었다.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이 10점 만점에 8점까지 치솟았지만 이제 결제를 하려고 한다.

 

 

[세쪽책] 바닥

 

001호 [바닥] 대동작은집 2014년 5월 24일 발행 :
http://www.facebook.com/3pagesbook : 글_신바닥 책값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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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 바닥

왜 바닥이냐고 물으면 말문이 막힌다.
기억도 잘 나지 않고 명확하지도 않은데 지나온 시간동안 의미는 자꾸 더해져서 대답을 할라치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2003년에 ‘또하나의문화’에서 주최하는 페미니즘 강좌를 들을 때 지었다. 서로 자기가 직접 지은 이름으로 부르고 모두 존대하면서 나이나 지위를 넘는 평등한 관계를 맺자고 했다. 그러려니했다. 개념이 신기하거나 호칭이 어색하다기 보다는 이름짓기가 어렵다고 느꼈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 아이디에 숫자가 들어있으면 성의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의미있는 이름을 짓고 싶었다.

바닥을 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마지막까지, 끝까지, 경계까지 가고 싶었다. 당시는 두 번째 회사를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첫 번째 회사인 어린이책 출판사를 괴로움 끝에 그만두겠다고 말한 다음날 기적처럼 다른 일터로 옮겼다. 그것도 원하던 조직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지역사업팀으로. 세상이 아름답고 고마워 날아오를듯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었는데 석 달도 되지 않아 괴로워졌다. (그래서 다른 재미를 찾아 또문대학 강좌를 들었던 거 같다.) 다니던 출판사가 시시해서 괴로웠는데, 문화예술단체 막내간사노릇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힘에 부쳐서 괴로웠다. 좋아한다고, 하고싶다고, 열심히 하겠다고 믿었던 내 마음에 처음으로 분열증이 왔다. 나아지길 기다리면서도 끝까지 가면 뭐가 있는지 보고 싶었던 거 같다.

아파트 같은 건물에서는 바닥은 아래층에서 보면 천장이다. 이런 이중적인 면, 경계에 걸쳐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비록 아파트에서는 바닥을 친 줄 알았는데 또 바닥이 있고 또 바닥이 있고 할테지만……. 어쨌든 강좌 후속 모임으로 친구들을 몇년 째 만나고 새로운 일도 꾸리면서 나는 계속 ‘바닥’이었다.

 2009년부터 3년 동안 대안학교 출신 구성원들이 주축이 된 여행사에서 일할 때는 공식적으로 그 이름을 썼다. 이미 고민 끝에 지어놓은 이름이 있고 나쁘지 않고 새로 짓기도 귀찮아서. 거기서는 내부조직뿐아니라 협력업체나 손님을 만날 때도 ‘바닥’이었다. 이름으로 부르기 불편한 단어여서 어색하다고 말해주기 전까지는 그런 줄도 몰랐다. 무슨 심보인지 사람들이 부를때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특별하게 느껴져 더 좋았다. 성을 붙이면 덜 이상해보일까 하고 신바닥으로 성을 붙였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신맛을 좋아하는 바닥의 줄임말이다.)

바닥을 치고 올라온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닥으로 살든, 주민등록상의 실명으로 살든 일하는 건, 사는 건 늘 괴로웠다. 괴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도망치듯 직종자체를 바꾸니 직업인으로서 경력은 쌓이지 않고 늘 신입대우를 받았다. 세 번째 회사로 시민단체, 네 번째 출판사, 다섯 번째 여행사, 여섯번 째는 다섯번 째 회사 재입사. 사람이 이름따라 간다고 바닥을 못벗어나는 건 아닐까. 무릇 인생이라면 계단을 오르듯 성장해야하는데 나는 왜 늘 다음칸으로 오르지 못하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같을까. 새 인생을 살게 좋은 이름을 하나 지어주십사 존경하는 선생님께 눈물로 애원하기도 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이름 자체가 진리인 겸손한 이름이라고 격려해주셨다.

인간은 자기 내면을 돌아보고 알아차리기 위해 내면 깊이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여기가 끝인가, 바닥인가 싶어도 사실 더 내려가야한다. 그 사실을 알고 마음을 닦는 데에 겸손하게 임해야 한다고, 그러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이름이란다.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말씀이었다. 바닥은 뿌리, 본질의 다른 말이다. 또한 바닥은 기본, 시작. 위로는 무엇을 쌓아올리든지 튼튼하게 다져야 하는 토대로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좋은 이름이다. 참말로 좋은 이름이다.

2014년 5월 대전. 산호여인숙의 서쪽, 대동작은집에서 1호 입주작가로 아직 누구도, 무엇도 가지 않은 길을 조심스럽게 낸다. 바닥을 단단히 다진다. 글은 ‘모르는 길을 가*’는 것이 직업인 내게 기본으로 필요한 재능이다. 삶의 방향과 속도를 정하면서 가려면, 둘러보고 계획하고 고민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사유하기를 반복해야하는데 기록은 필수다. 글을 쓰며 준비하고 글을 써서 정리한다. 노래할 때도 글을 먼저 적고, 그림을 그린 뒤에도 글을 적는다.

부지런히 내려가 본래 마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글로 옮겨둘 것.
마음을 따르는 행동을, 행동에 따르는 마음을 깊이 천천히 바라보자, 그리고 글로 기록할 것.
바닥에 고여있는 미뤄두었던 기록들도 들춰보고 정리하자, 그리고 글을 완성할 것.

 *모르는 길을 가는 사람 https://ramblingmelly.wordpress.com/2014/02/05/unknown/

바닥이 사는 방

Image 대흥동 산호여인숙에서 대동작은집으로 이사온 지 이주일이 지났다.
이사온 기념으로, 혼자 지내는 게 무서울까봐 혹은 샘이 나서 사람들이 들러 지내고 간 밤이 있었다. 대동작은집이 태어난 걸 축하하러 온 오랜 친구들이 지내다간 밤도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던 빈 집이 마법같은 손길로 다시 살아나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채워질 순간을 함께하려는 마음들. 집은 이미 만들어진 모양새와 채워놓은 것들로도 실제로 너무 예뻐서 아.. 하고 어이없는 탄성을 자아낸다. 주워온 가구들과 기묘한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2층 구조. 만든 이와 사는 이, 이 집을 사랑하는 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숨은 장소들과 색깔, 적당한 지저분함.

이 집은 대동 언덕길 꼭대기에 자리한 네모 모양으로 하늘공원으로 올라오는 2x2x3x4x2x2x2x ….의 숱한 경우의 수 중 대부분 경로 안에 고개만 치켜올리면 떡하니 보인다. 대전에 들락날락하던 지난 겨울 맨처음 자전거로 대동 골목길을 오르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떠올린다. 자전거를 타고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오르막길을 헉헉거리며 걸어 올랐고 하늘공원에 앉아 대전시내를 내려다보며 여기, 내가 사랑해야할 곳이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대동은 내가 대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데리고 올라와 소개시켰고 바람쐬러 올라오고 커피팔러 올라오고 우쿨렐레치러 올라오고 그냥 올라오고… 그러다 산호부부가 이 무지개떡 같은 집을 얻었다고 했을 때 이 동네서 살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 싶었고 그로부터 몇 달 후 나는 여기 살고 있다. ‘무려’ 1층 창작공간 1호 입주 작가.

5월 초에 8일 동안 했던 마트 판매 알바로 멘탈을 다 녹여버리고 몸도 만신창이가 된 채로, 일단 이사를 했다. 사실 회복이란 건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건데 원래 사랑 앞에선 긴장하게 마련이라 이 집과 낯가리느라 맘껏 좋아하지 못하고 몸은 몸대로 쑤시고 맘을 여기저기 떠돌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말만 줄줄 늘어놓는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 결국 가출. 나무타는 소리를 들으며 만화책을 밤새 볼 수 있는 괴산 탑골만화방에서 이틀밤을 자며 머무는 동안 두 세권 만화책을 뒤적거리고 대부분은 잠을 잤다. 부드럽게 곡진 산새가 아름다워서 아늑한 마을이었다. 아직 낯을 가리는 상대와 있어서 조금 긴장상태이긴 했지만 금방 그러려니 하는 상태가 되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별다른 말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어서 좋았다. 계속 잠이 왔다. 지난 달엔 하루도 빠지지 않던 수영장을 사흘이나 빠지고 계속 늘어지니 이러다 짜투리시장도 빼먹을 것 같아서 금요일밤에 서둘러 대전으로 돌아왔다.

어리광을 부리며 이방저방 어지르고 돌아다니는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언제 가야할지, 돌아가야할지 말아야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안 하고 싶은지, 다 모르겠다고 나 몰라라 그냥 잠들었다. 여기도 아픈 것 같고 저기도 아픈 것 같고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뭐가 뭔지 모르겠고 생각하는 게 귀찮고 결정하는 건 더 싫은 그런…  그럭저럭 남은 힘을 짜내 짜투리 시장을 끝내고 나니 괴산에서부터 목을 간지럽히던 감기가 이때다 하고 튀어나왔다. 목소리부터 내가 아니다. 멀리 부산에서 반가운 친구들이 왔는데도 잠만 쿨쿨 잤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많은 말이 하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는데 목이 아프니 말을 안하게 되었다. 며칠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지껄이는 중이었는데 차라리 다행이었다. 애매함은 너무 어렵다.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최선을 다해 아프면 되고, 괴롭고 슬프고 짜증나면 그렇게 마음을 쓰면 된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아팠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밤을 지내고 나니 여기 대동작은집이 더 편해졌다.

대흥동에 다녀온 어젯밤엔 적당히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올라오면서 역시 대동은 참 좋다,고 생각했다. 복지관 놀이터 앞 벤치에 할머니 한 분이 달빛을 받으며 앉아 쉬고 계셨다. 가볍게 목례를 했다. 집에 돌아와 도라지청을 끓여마시고 부여청과에서 산 오렌지를 까먹고 난 뒤 청소를 하고 입구에 이름표를 달았다. 그리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다.
아침엔 비가 왔다. 커피를 내려마셨고 선물받은 귀한 초를 켰다. 그리고 여전히 애매한 상태에서 이렇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이야기를 적고 있다. 애매함을 견디는 게 내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자 견뎌내야 할 숙제다. 오늘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애매한 마음을 바라보며 많은 애매한 이야기를 적어내야 할 것 같다. 뜬금없지만 수영장에 일주일 째 가지 않은 건 결과적으론 잘한 일이다. IMG_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