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4/05/20

바닥이 사는 방

Image 대흥동 산호여인숙에서 대동작은집으로 이사온 지 이주일이 지났다.
이사온 기념으로, 혼자 지내는 게 무서울까봐 혹은 샘이 나서 사람들이 들러 지내고 간 밤이 있었다. 대동작은집이 태어난 걸 축하하러 온 오랜 친구들이 지내다간 밤도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던 빈 집이 마법같은 손길로 다시 살아나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채워질 순간을 함께하려는 마음들. 집은 이미 만들어진 모양새와 채워놓은 것들로도 실제로 너무 예뻐서 아.. 하고 어이없는 탄성을 자아낸다. 주워온 가구들과 기묘한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2층 구조. 만든 이와 사는 이, 이 집을 사랑하는 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숨은 장소들과 색깔, 적당한 지저분함.

이 집은 대동 언덕길 꼭대기에 자리한 네모 모양으로 하늘공원으로 올라오는 2x2x3x4x2x2x2x ….의 숱한 경우의 수 중 대부분 경로 안에 고개만 치켜올리면 떡하니 보인다. 대전에 들락날락하던 지난 겨울 맨처음 자전거로 대동 골목길을 오르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떠올린다. 자전거를 타고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오르막길을 헉헉거리며 걸어 올랐고 하늘공원에 앉아 대전시내를 내려다보며 여기, 내가 사랑해야할 곳이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대동은 내가 대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데리고 올라와 소개시켰고 바람쐬러 올라오고 커피팔러 올라오고 우쿨렐레치러 올라오고 그냥 올라오고… 그러다 산호부부가 이 무지개떡 같은 집을 얻었다고 했을 때 이 동네서 살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 싶었고 그로부터 몇 달 후 나는 여기 살고 있다. ‘무려’ 1층 창작공간 1호 입주 작가.

5월 초에 8일 동안 했던 마트 판매 알바로 멘탈을 다 녹여버리고 몸도 만신창이가 된 채로, 일단 이사를 했다. 사실 회복이란 건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건데 원래 사랑 앞에선 긴장하게 마련이라 이 집과 낯가리느라 맘껏 좋아하지 못하고 몸은 몸대로 쑤시고 맘을 여기저기 떠돌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말만 줄줄 늘어놓는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 결국 가출. 나무타는 소리를 들으며 만화책을 밤새 볼 수 있는 괴산 탑골만화방에서 이틀밤을 자며 머무는 동안 두 세권 만화책을 뒤적거리고 대부분은 잠을 잤다. 부드럽게 곡진 산새가 아름다워서 아늑한 마을이었다. 아직 낯을 가리는 상대와 있어서 조금 긴장상태이긴 했지만 금방 그러려니 하는 상태가 되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별다른 말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어서 좋았다. 계속 잠이 왔다. 지난 달엔 하루도 빠지지 않던 수영장을 사흘이나 빠지고 계속 늘어지니 이러다 짜투리시장도 빼먹을 것 같아서 금요일밤에 서둘러 대전으로 돌아왔다.

어리광을 부리며 이방저방 어지르고 돌아다니는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언제 가야할지, 돌아가야할지 말아야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안 하고 싶은지, 다 모르겠다고 나 몰라라 그냥 잠들었다. 여기도 아픈 것 같고 저기도 아픈 것 같고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뭐가 뭔지 모르겠고 생각하는 게 귀찮고 결정하는 건 더 싫은 그런…  그럭저럭 남은 힘을 짜내 짜투리 시장을 끝내고 나니 괴산에서부터 목을 간지럽히던 감기가 이때다 하고 튀어나왔다. 목소리부터 내가 아니다. 멀리 부산에서 반가운 친구들이 왔는데도 잠만 쿨쿨 잤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많은 말이 하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는데 목이 아프니 말을 안하게 되었다. 며칠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지껄이는 중이었는데 차라리 다행이었다. 애매함은 너무 어렵다.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최선을 다해 아프면 되고, 괴롭고 슬프고 짜증나면 그렇게 마음을 쓰면 된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아팠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밤을 지내고 나니 여기 대동작은집이 더 편해졌다.

대흥동에 다녀온 어젯밤엔 적당히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올라오면서 역시 대동은 참 좋다,고 생각했다. 복지관 놀이터 앞 벤치에 할머니 한 분이 달빛을 받으며 앉아 쉬고 계셨다. 가볍게 목례를 했다. 집에 돌아와 도라지청을 끓여마시고 부여청과에서 산 오렌지를 까먹고 난 뒤 청소를 하고 입구에 이름표를 달았다. 그리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다.
아침엔 비가 왔다. 커피를 내려마셨고 선물받은 귀한 초를 켰다. 그리고 여전히 애매한 상태에서 이렇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이야기를 적고 있다. 애매함을 견디는 게 내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자 견뎌내야 할 숙제다. 오늘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애매한 마음을 바라보며 많은 애매한 이야기를 적어내야 할 것 같다. 뜬금없지만 수영장에 일주일 째 가지 않은 건 결과적으론 잘한 일이다. IMG_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