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4/05/24

[세쪽책] 바닥

 

001호 [바닥] 대동작은집 2014년 5월 24일 발행 :
http://www.facebook.com/3pagesbook : 글_신바닥 책값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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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 바닥

왜 바닥이냐고 물으면 말문이 막힌다.
기억도 잘 나지 않고 명확하지도 않은데 지나온 시간동안 의미는 자꾸 더해져서 대답을 할라치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2003년에 ‘또하나의문화’에서 주최하는 페미니즘 강좌를 들을 때 지었다. 서로 자기가 직접 지은 이름으로 부르고 모두 존대하면서 나이나 지위를 넘는 평등한 관계를 맺자고 했다. 그러려니했다. 개념이 신기하거나 호칭이 어색하다기 보다는 이름짓기가 어렵다고 느꼈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 아이디에 숫자가 들어있으면 성의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의미있는 이름을 짓고 싶었다.

바닥을 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마지막까지, 끝까지, 경계까지 가고 싶었다. 당시는 두 번째 회사를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첫 번째 회사인 어린이책 출판사를 괴로움 끝에 그만두겠다고 말한 다음날 기적처럼 다른 일터로 옮겼다. 그것도 원하던 조직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지역사업팀으로. 세상이 아름답고 고마워 날아오를듯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었는데 석 달도 되지 않아 괴로워졌다. (그래서 다른 재미를 찾아 또문대학 강좌를 들었던 거 같다.) 다니던 출판사가 시시해서 괴로웠는데, 문화예술단체 막내간사노릇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힘에 부쳐서 괴로웠다. 좋아한다고, 하고싶다고, 열심히 하겠다고 믿었던 내 마음에 처음으로 분열증이 왔다. 나아지길 기다리면서도 끝까지 가면 뭐가 있는지 보고 싶었던 거 같다.

아파트 같은 건물에서는 바닥은 아래층에서 보면 천장이다. 이런 이중적인 면, 경계에 걸쳐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비록 아파트에서는 바닥을 친 줄 알았는데 또 바닥이 있고 또 바닥이 있고 할테지만……. 어쨌든 강좌 후속 모임으로 친구들을 몇년 째 만나고 새로운 일도 꾸리면서 나는 계속 ‘바닥’이었다.

 2009년부터 3년 동안 대안학교 출신 구성원들이 주축이 된 여행사에서 일할 때는 공식적으로 그 이름을 썼다. 이미 고민 끝에 지어놓은 이름이 있고 나쁘지 않고 새로 짓기도 귀찮아서. 거기서는 내부조직뿐아니라 협력업체나 손님을 만날 때도 ‘바닥’이었다. 이름으로 부르기 불편한 단어여서 어색하다고 말해주기 전까지는 그런 줄도 몰랐다. 무슨 심보인지 사람들이 부를때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특별하게 느껴져 더 좋았다. 성을 붙이면 덜 이상해보일까 하고 신바닥으로 성을 붙였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신맛을 좋아하는 바닥의 줄임말이다.)

바닥을 치고 올라온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닥으로 살든, 주민등록상의 실명으로 살든 일하는 건, 사는 건 늘 괴로웠다. 괴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도망치듯 직종자체를 바꾸니 직업인으로서 경력은 쌓이지 않고 늘 신입대우를 받았다. 세 번째 회사로 시민단체, 네 번째 출판사, 다섯 번째 여행사, 여섯번 째는 다섯번 째 회사 재입사. 사람이 이름따라 간다고 바닥을 못벗어나는 건 아닐까. 무릇 인생이라면 계단을 오르듯 성장해야하는데 나는 왜 늘 다음칸으로 오르지 못하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같을까. 새 인생을 살게 좋은 이름을 하나 지어주십사 존경하는 선생님께 눈물로 애원하기도 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이름 자체가 진리인 겸손한 이름이라고 격려해주셨다.

인간은 자기 내면을 돌아보고 알아차리기 위해 내면 깊이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여기가 끝인가, 바닥인가 싶어도 사실 더 내려가야한다. 그 사실을 알고 마음을 닦는 데에 겸손하게 임해야 한다고, 그러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이름이란다.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말씀이었다. 바닥은 뿌리, 본질의 다른 말이다. 또한 바닥은 기본, 시작. 위로는 무엇을 쌓아올리든지 튼튼하게 다져야 하는 토대로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좋은 이름이다. 참말로 좋은 이름이다.

2014년 5월 대전. 산호여인숙의 서쪽, 대동작은집에서 1호 입주작가로 아직 누구도, 무엇도 가지 않은 길을 조심스럽게 낸다. 바닥을 단단히 다진다. 글은 ‘모르는 길을 가*’는 것이 직업인 내게 기본으로 필요한 재능이다. 삶의 방향과 속도를 정하면서 가려면, 둘러보고 계획하고 고민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사유하기를 반복해야하는데 기록은 필수다. 글을 쓰며 준비하고 글을 써서 정리한다. 노래할 때도 글을 먼저 적고, 그림을 그린 뒤에도 글을 적는다.

부지런히 내려가 본래 마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글로 옮겨둘 것.
마음을 따르는 행동을, 행동에 따르는 마음을 깊이 천천히 바라보자, 그리고 글로 기록할 것.
바닥에 고여있는 미뤄두었던 기록들도 들춰보고 정리하자, 그리고 글을 완성할 것.

 *모르는 길을 가는 사람 https://ramblingmelly.wordpress.com/2014/02/05/unkn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