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4/05/31

[세쪽책] 비규정직

003호 [비규정직]
대동작은집 2014년 5월 31일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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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신바닥 : 책값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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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 3년 전인 2011년 8월부터 직장인으로 살기를 멈추고 여행자, 프리랜서, 커피장수, 집귀신, 한량, 아마추어예술가, 백수, 날품팔이꾼 등으로 지낸다. 처음에는 돈이 떨어지거나 재미가 없어질 때까지만 ‘이런 생활’을 하려고 했다.

여태까지 이직을 자주 하기는 했지만 직장인 아닌 모습을 상상하긴 어려웠다. 매번 2~3년도 버티지 못하는 스스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다니지 않는 순간에도 늘 다음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어느 일터에서도 이러기를 반복한다면 이직이 답은 아닐 것이다. 이번만큼은 불안함이나 조급함 때문에 습관처럼 다시 직장인이 되지는 말자고, 모아놓은 돈을 다 쓸 때까지는 걱정없이 놀자고 생각했다. 오래오래 놀고 싶으니 돈은 아껴써야했다. 먹고 자는 데 돈이 들지 않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적게 쓰고 가끔 버니 지금(2014년 5월)까지도 돈이 큰 문제는 아니다.

어라, 그러면 이렇게 평생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다음엔 어디서 무얼 할까,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계획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준비하는 과정이 귀찮지만 신나고, 어렵지만 즐겁다. 세상 모든 이가 내 편인 것 같다가도 괴로워서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은 날도 있다. 그래도 직장인으로 사는 것보다는 여전히, 훨씬 재미있다. 지낼수록 ‘이런 생활’은 특별한 선택이라기보다 내가 할 수 있고 여전히 계속하고 싶은 유일한 생활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걸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즐겁고 행복한 것도 재미요, 불안하고 괴로운 것도 재미다. 매 순간마다 배우고 깨닫는 게 있으니까. 이제 재미없을 때 그만둔다는 기준은 없애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당연히 ‘이런 생활’도 가능하려면 최소한의 돈을 벌어야 하니 이것저것 해보는 중이다. 커피도 팔고, 품을 팔아서 아이도 돌보고, 옷가게에서 판매일도 하고, 청소도 하고, 가이드도 하고, 기획서도 쓰고, 글도 쓰고, 노래도 한다. 노동의 대가는 현금 외에도 식사나 잠자리 제공과 같은 서비스나 현물로도 받는다. 돈을 버는 일은 대부분 힘들지만 그래도 할만한 것과 다시 할 수 없는 일로 나뉜다. 경험을 통해 이렇게 가능한 일의 목록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다.

도움도 많이 받는다. 운이 좋게 그런 곳만 찾아가는 지도 모르겠지만 베풀고 나누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이어진 다른 인연을 만나 ‘이런 생활’이 이어진다. 미리 몇 달 뒤를 걱정하고 고민하지 않는다. 그 때 되면 어떻게든 된다. 무슨 일이든 생긴다. 우연히 좋은 기회가 찾아오기도 하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때는 벌이면 된다. 모든 과정이 ‘이런 생활’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생활’을 계속해나가는 것 자체가 내 직업이라고 여긴다. 직업인은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한다. 그리고 여가시간에는 문화생활도 하고, 취미생활도 한다. 내가 일하고 놀고 사는 방법도 그와 같다. 직접 돈벌이가 되는 일도 하지만 일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이런 생활’을 한다. 열심히 놀며 잘 산다. 사람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혼자도 잘 논다. 읽고 보고 느끼면서 공부한다. 쓰고 그리고 노래하면서 삶을 기록한다. 한 장소에 오래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정해진 몇 가지 일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문분야가 없기 때문에, 기존에 존재하는 방식이 아니라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다는 차이는 있지만 나 역시 돈과 재화를 얻기 위해서 일을 한다. 그래서 나는 비규정직 노동자다.

어떤 이들은 나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낀다. 대리만족하는 심정으로 부러워하기도 하고, 저것 보다는 낫지 하며 위안을 받기도 할 것이다. 다르게 사는 걸 상상할 수 없어서, 두려워서, 귀찮아서, 게을러서 지금처럼 사는 걸 원하지 않으면서도 경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뿐만 아니다. 자기가 처한 조건에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최선인데, 보통이라고 말하는 저 높은 기준에 닿지 못하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도 그렇다.

‘이런 생활’은 이상하고 신기해 보인다. 설명하기 어려운 비규정직일뿐, 그냥 우리 모두는 생긴대로 다양하게 살 뿐이다. 들여다보면 다르게 사는 삶도 행복과 불행이 함께하지만 남들 사는 대로 따라 살지 않아도 큰일 나는 거 아니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살면 된다. 여기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