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4/07/11

[서울살이] 2014년 7월 11일 일기

세쪽책 하나를 완성하고 나니 동이 텄다. 다섯시. 서둘러 잠자리에 들다.
9시가 되었는데 눈이 떠진다. 어라, 이상하네. 그러려니 하고 뒤척인다. 요즘들어 손이 많이 붓는다. 어제 저녁엔 또 뭘 먹었더라.. 삼십분 정도 트위터하고 페이스북 들락날락 거리다보니 붓기도 가라앉고 정신도 난다.

자리에 누워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조금 읽었다.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뿅뿅 샘솟는다. 모닝페이지를 쓰던 노트를 꺼내 이어서 좀 적는다. 그러다 보니 또 딴지시 하고 싶어진다. 운동 계획표를 그렸다. 한달동안 스쿼트나 런지, 플랭크 등 할 수 있는 맨몸 근력운동을 좀 해봐야겠다.

커피를 내리고, 뜨거운 걸로 한 잔 아이스로 한 잔 어제 사온 통팥빵과 사과 반쪽으로 늦은 아침을 먹는다. 샤워하기 전에 스쿼트 60개, 벽짚고 팔굽혀펴기 50개, 크런치와 레그레이즈를 헥헥 거리며 20개 정도 한다. 힘드니까 오늘은 그만.

전에 한창 운동하고 살이 빠질 때 적어두던 신체사이즈표를 찾을 수가 없다. 비교해보고 싶은데.. 그냥 오늘을 첫번째 칸에 두고 하나 더 그린다. 한달마다 한번씩 재보기로 한다. 월요일에 보건소에서 받아온 대사증후군 결과지와 체성분표를 뚫어져라 보면서 3월에 비해서 살이 찌긴 했지만 아직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고 위로한다. 운동, 찬찬히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마도 세쪽책을 올린 걸 본 모양이다. 기분 좋게 이야기 나누고, 지지받고, 깔깔 거리다가 끊었다. 불안한 이야기, 아르바이트 이야기, 자전거 카페 이야기 하면서 자전거 뒤에 달 나무 상자 만들 목수를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다가 꽤 오래 연락을 하지 않은 옛친구에게 전화해 볼 용기가 생겼다.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를 남겼다.

오후다. 이제 뭐할까.
오늘 꼭 해야 하는 한 가지 일은 내일 일터에 제출할 주민등록등본을 떼는 것 뿐이다. 운동삼아 큰언니집까지 걸어가서 출력을 해오고 나가는 김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도 몇권 팔아서 현금을 마련하고 서초동중앙도서관에서 책도 보면 좋겠다고 동선을 고민한다.

2시 30분, 소설책 열 권을 챙겨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선다. 한 시간 정도 걸어 6km 떨어진 서점에 도착했다. 17,700원을 받았다. 중간에 아침에 전화한 친구랑 통화해서 다음주 약속도 잡았다. “야~ 너는 도대체 어디서 뭐하고 사는 거냐?”라는 매우 반가운 목소리를 들었다. 고마웠다.

30분을 더 걸어 언니집에 도착했는데 각종 보안프로그램 설치가 되지 않아 주민등록등본 출력은 실패다. 씨리얼과 포도만 먹고 다시 동사무소로 향했다. 서류를 떼고 서초동중앙도서관에 6시 직전에 들어가 책을 집어 들었다. “99%를 위한 주거” 한창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30분 후 친구한테 놀자고 연락이 온다. 망설임 없이 나섰다.

친구를 만나, 김밥과 쫄면을 사 들고 한강으로 향했다. 돗자리를 사서 자리를 잡고 냠냠 저녁식사. 친구 회사 이야기, 내가 만나고 통화한 친구들 이야기를 하고 놀았다. 후식으로 웨하스를 먹고 9시 반쯤 자리를 정리하고 버스타고 돌아왔다.

샤워하고, 내일 입고갈 옷과 일할 때 입을 옷과 끝나고 갈아입을 속옷과 도시락용 빵을 챙겨놓고 이제 잠자리에 든다. 오랜만에 출근, 조금 떨린다. 어서 자야지.

[세쪽책] 안전잔액한계선

007_ 안전잔액한계선007호 [안전잔액한계선]
산책자의 모닝커피 2014년 7월 11일 발행 :
http://www.facebook.com/3pagesbook :
글_신바닥 : 책값 500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이제 한 달에 70만원이 생긴다. 핸드폰비, 교통비, 조합비, 보험료, 저축 등 고정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용돈을 아껴쓰면 11월 발리 여행을 가기 전까지 여행경비를 충분히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2011년 여름 이래로 고정적인 월급이 없는데도 자유롭게 운용가능한 계좌 잔액이 아직 0이 되지는 않았다. 지난달부터 두자리, 한자리로 내려가면서 불안불안한 상태지만 나름대로 설정해 놓은 위기대처용 비상금이 있으니 위급한 상황은 아니다.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울렁인다. 해외여행 두 번 다녀온 걸 빼면 잔액은 아주 천천이 줄었고 가끔 벌기도 해서 지금까지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모아놓은 돈을 쓰면서도 위기대처용 계좌에 일정금액을 분산해서 꼬박꼬박 저축도 했다.

2014년 상반기를 결산하면서 월평균 수입을 계산해보니 30만원 안팎. 본격적으로 대전에서 살면서 커피를 내리고, 콩을 볶아 판매하기 전까지는 노트북도 팔고, 가족이나 지인을 대상으로 운좋게 기획서 쓰는 걸 도와주거나 여행계획을 세워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용돈을 포함해서 월 평균 비용은 50만원 정도, 모아놓은 돈의 계좌에서 그 부족분을 채우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게다가 3월부터는 발리 여행을 위해서도 따로 돈을 모으고 있다. 사실 3년이면 얼마되지도 않던 돈으로 오래 버틴 셈이고, 전재산을 탈탈 털어도 0인 것은 아니니 그동안 잘 지냈다.

이제 더이상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 처한 거다. 물론 보험을 해지하고, 핸드폰 비용을 줄이고, 저축을 하지 않는다면 고정비용은 줄 테고, 지금이 첫번째 위기라면 1단계 위기대처용 자금을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돈을 버는 방식을 택했다. 1차 잔액한계선을 100이라고 치면 2차는 80, 3차는 50정도 될 텐데 1차 한계선앞에서 우왕좌왕 겁을 먹고 있는 셈이다. 2차 한계선으로 낮출 것이냐, 100을 유지할 것이냐. 요근래의 우울하고 괴로웠던 건 이유가 그게 아닐까 싶다.

상황과 마음과 말과 행동이 한결같지 않아서 혼란스럽다. 백수로 지내고 있긴하지만 여전히 의료실비를 보장한다는 사보험에 들어 있고, 누군가에게는 꽤 큰 금액일 1차 잔액한계선 앞에서도 이렇게 불안하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불행하게 살지 말고 그때그때의 행복에 따라 살자고, 아껴 쓰면 지금 있는 돈을 다 쓸 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되니 그때까지만이라도 걱정없이 놀자고, 돈이 없는 상황에 닥치면 그 때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자유입출금 통장의 잔액이 이번달 나가야 하는 자동이체 금액보다 적은 지금 이 상황에서 덜컥 겁을 먹는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살려고 자급하는 삶, 주워쓰고 얻어쓰는 삶을 살겠다고 하지만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만 갖고싶은 물건, 막상 갖고 있어도 어디다가 딱히 쓸 필요도 없는 비싼 물건-예를 들면 신형아이폰이나 맥북에어-을 산다. 나는 소비의 노예가 아니고 딱히 채우고 싶은 욕망도 없어서 적게 벌고 행복하게 사는 게 가능할 거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모순이다. 애걔, 그러면 그렇지, 라고 누가 비웃을 것만 같다.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부끄럽다.

그런데 어쩌랴, 나는 이런 사람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연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시시한 존재라는 사실을,
따지고보면 세상 사람들도 다들 다그렇게 시시하다는 것을.
나는 나를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100이라는 1차 잔액한계선 앞에서 겁먹고 80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하고, 왜 그러냐 추궁하고, 그러기를 강요하면서 스스로를 미워하는 대신 20만큼 돈을 벌어 100을 유지하는 편을 택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게, 할 수 있는 게 그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임금노동이긴하지만, 그래도 내가 정한 기준에 의해 선택한 일자리라 다행이다. 집에서 가기 편하고, 되도록 짧은 시간동안만 했으면 좋겠고, 몸을 움직이는 일을 찾았다. 나이와 경험치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지는 않았다.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를 잘 못한다는 걸 여러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이제한이 없고 초보도 지원 가능한 커피집이나 샌드위치 가게에도 선뜻 지원하지 못했다. 경험이 전혀 없는 식당 주방이나 홀서빙은 문의조차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런 행동패턴도 배가 덜 고파서이기도 할 테지만, 내 깜냥을 ‘인정’하자고 천천히 되뇌였다. 그러다 게스트하우스 청소일자리를 발견하고 며칠동안 고민하다가 용기내어 전화 했다. 처음에 통화했을 때는 당장 자리가 나지 않아서 8월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성수기 바닷가 게스트하우스 일자리를 찾아 부산으로 내려갈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다음날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게스트하우스 객실 청소는 제작년 부산에서 석달 정도 했던 일이다. 해외에서는 그런 식으로 여행하는 여행자를 많이 봤고 그렇게 부산에서 장기여행자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무료로 머물고, 조금의 용돈을 벌었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고, 아쉬울 것도 두려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즐겁게 일했다. 그래서 서울에서도 그런 일자리를 중심으로 찾았다. ‘그래도 내가 청소일을’ 이런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회사원으로 직장을 꾸준히 다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순간부터 돈벌이에 대한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았고, 게다가 나는 좋아하는 일이라도 회사를 다니면서는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 어쨌거나 회사라는 건, 내가 꾸준히 다닐 수 없는 종류의 장소, 조직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함께 일하는 사람이나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거나 협력하지 않고 혼자서 알아서 내맘대로 하는 거다. 모든 일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니 만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골라서 만날 수 있을 것,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으로만 만나고,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방어할 것. 판매사원, 베이비시터, 편집자, 여행가이드, 기획자, 청취자, 상담자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통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의 목록을 완성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