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4/07/13

[서울살이] 2014년 7월 13일 일기

잠이 안 와서 큰일이다.
11시에 누웠는데 결국은 아마 2시나 되서 잠든 것 같다.
열대야 때문인가, 아님 인지하지 못하는 무슨 고민 같은게 있는건가.
뒤척이다가, 명상한다고 앉아있다가, 책을 읽다가 겨우 잠들었다.
역시 여러번 자다깨다 자다깨다 했는데, 10시 출근을 위해서 8시 반 넘어서는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부터는 일터에서 간단히 토스트로 아침을 해결할 생각이다.

씻기 전에 오늘의 운동 해야지. 스쿼트는 쉬어도 될듯.
이두인지 삼두인지 모르겠지만 팔운동을 했더니 짜릿짜릿 근육통이 며칠째 계속된다.
그럴때일수록 적당히 운동해서 풀어줘야 한다길래 팔운동을 했다. 10개, 12개, 3~40개, 할수 있는 만큼에서 몇개 더 하고 두세셋트 하라고했는데 질리면 하기싫어질 거 같아서 이것저것 섞어서 하다보니 뭘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안한것보단 낫겠지..생각하고. 기분좋게 샤워.

오후엔 트친님과 남산드립 약속이 있어서 가방에 주섬주섬 커피도구들을 싸서 출근했다.
10시 조금 전에 도착했는데, 오늘은 한 분이 쉬시고 두 명이서 청소하는 날, 청소할 방은 9개여서 4개를 맡았다. 근데 정말 생각보다 너무 힘이 안든다. 힘이 전혀 안 든다는 게 아니라 청소일이 어느정도는 힘들겄이다라고 예상했던 거에 비해 60%정도, 할만하다. 신경쓰이는 건 여행자숙소다 보니 내가 10시까지 간다고 해도 사람들이 체크아웃을 늦게 하면 시작시간이 그만큼 늦어진다. 그래도 뭐, 아무리 늦어도 3시 전에는 끝나니까. 오늘도 10시 30분 넘어서 일 시작했다. 그때 30분 동안 같이 일하시는 분들과 대화하는 게 싫은 시간이다. 다들 나쁜 사람도 아니고 이런 저런 의도도 없겠지만 묻고 맘대로 생각하고 부러워하고 질문하는데 대답하느라 피곤하다. 더 친해지면 훅훅 들어올 거 같아서 쫄아있다.

쓰레기통 분리수거까지 마치고 나니 2시. 대충 둘러보니 끝난 거 같길래 후다닥 샤워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퇴근할 준비를 했는데 끝난 게 아니네, 이불도 걷고 걸레도 널고 하시길래 또 후다닥 달려가서 또 일을 했다.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되니까.

일 다 끝내고나서 커피 내릴 때 필요한 뜨거운 물을 3층 간이부엌에서 끓여서 준비해간 보온병이 담았다. (어제 팬과 냄비를 봐뒀다) 일 시작하기 전에 얼려둔 물통에 얼음 몇개 더 채워넣어서 아이스커피가 필요할 때도 대비했다. (역시나 트친고객님은 아이스커피를 원하셨음)

지하철역에서 만나 함께 남산산책로까지 걸어가서 커피를 내렸다. 작년 칠월부엌에도 찾아와주셨던 친구님. 뭉크전에서 사온 머그컵을 선물로, 문화상품권을 커피값으로 주셨다. 됐다고, 이건 선물로 대접하고 싶다고 했는데…주니까 그냥 받았다. 아, 커피랑 같이 객실 청소하다가 나온 과자도 냈다. 이건 내가 제작년 부산 게스트하우스에서 청소일 할때부터 말하던 이삭인데 역시 여기에도 있었다. 오늘 이삭은 딸기우유와 모닝빵, 크래커다. 케익도 있었는데 그건 보관이 용이하지 않아 그냥 버렸다.

집에 와서, 이삭빵과 원래 있던 빵과 사과, 수박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작은언니의 견과 한 봉도 후식으로 먹었다. 친구가 저녁에 한강 조깅 같이 하자는 연락을 받아서 나갈까 하다가, 며칠 잠도 제대로 못잤고 몸도 무거운 것 같아서 오늘은 그냥 쉬기로 했다.

방에 불도 켜지 않고 선풍기 틀어놓고 같은 자세로 멍하니 누워서 두어시간 넘게 아이폰으로 트위터만 보면서 놀았다. 정말이지, 정말 좋더라. 사실 이런 현상 자체는 지난 한두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아이폰만 보던 시절과 똑같은데 그땐 괴로웠고 오늘은 행복했다. 이 차이는 무얼까, 왜 나는 마음이 편해진걸까, 곰곰히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돈문제 해결과 하루 일과의 규칙성을 어느정도 담보하는 노동인가…

아침에 출근하는데도, 기분이 참 좋더라. 며칠전 친구한테 전화하면서 조심스럽게 ‘바쁘냐?”라고 물었던 생각도 나고. 내가 회사다니던 때는 늘 바빴다. 일이 많기도 했고, 일 하지 않는 순간에는 바쁘게 놀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늘 바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요일에 출근하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나는 바쁘지 않아서 정말 좋구나, 행복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 네 시간 정도만 아무런 부담없이 일하고 남은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책보고 일기쓰고 이렇게 여유롭게 살고 있다니. 좋아서 미칠것만 같더라. 좋아서 미칠 것 같은 시간이 찾아와서 좀 걱정이긴 하다. 나한테는 괴로워 죽겠는 시간과 좋아서 미치겠는 시간 그 두개 밖에 없는 거 같아서,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게 숙제겠지. 마음을 찬찬히 봐야겠다.

대여섯시쯤 잠이 솔솔 왔는데 그때 자면 또 밤에 못자고 리듬이 꼬일까봐 일부러 자지 않으려고 트위터를 하고 놀았다. 언니한테 팥빙수 사오라고 문자보내고 언니가 9시쯤 팥빙수를 사와서, 엄마나 삶아놓고 간 팥과 섞어 먹었다. 그냥 먹을 땐 달지 않아서 맛없었는데 사온 팥빙수랑 섞으니 달콤한 거랑 섞여서 간이 딱 맞았다. 좋다좋다. 이것도.

칠월부엌 후기를 마저쓰고, 어제 만들어 놓은 예고편에 붙여서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일기쓰고, 이제 잘 준비. 오늘도 잘 지냈다. 내일은 남산도서관이나 남산만화정보센터에 가서 놀아야겠다.

[칠월부엌] 그 해 여름, 칠월부엌 이야기

작년 이맘때, 나는 부산 중앙동 사십계단 옆 작은 가게에서 열심히 팥빙수와 토스트를 만들어 팔았다. 칠월부엌을 시작한 이야기부터 메뉴 소개, 이용법 등 당시 (2013년 7월) 에 열심히 글을 썼는데 – 손님이 별로 없어서 시간이 많았고, 키보드에 손만 대면 하고 싶은 말이 줄줄줄 나오던 충만한 시절이었다 – 8월이 되자마자 그 약발이 떨어졌는지 제대로 된 맺음글이 없어서 늘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지금, 1년이나 지나버렸지만 그때처럼 손만대면 뭐든지 쓰고 있는 요즘 ‘생산과 창작의 시기’에 후딱 후기를 써버리려고 어제 사진첩을 뒤적거리면서 사진을 골라 후다닥 ‘하고싶’송을 얹어서 칠월부엌 예고편(?)을 만들었다.

하루하루 지출과 수입을 정리해서 총매출과 순수익을 계산했는데, 역시나 당연히 그때의 자료는 온데간데 없다. 돈은 좀 벌었냐는 사람들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60만원 매출에 40만원 재료비/준비비 지출’이라고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월세+전기세+수도세+쓰레기처리비용 뭐 이런거 하고 나니까 거의 안남았었는데, 저 계산이면 20만원 남아어야 하잖아? 이상하다. 40만원 매출에 재료비 60이었나? 친구가 걱정없이 잘 놀아보라고 후원금으로 11만원이나 보내줘서 월세는 낼 수 있었는데. 모르겠다. 꼬박꼬박 기록하면 뭐해, 그 수첩이 달아나버렸는 걸.

그래도, 먹고 자는 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장사하려고 준비한 빵과 키친케이에 있던 식자재들로 끼니를 해결했다. 대연동 생각다방에서 보름 정도, 감만동 친구네 시아버님 댁에서 일주일 정도, 칠산동 생각다방에서 나머지 기간을 살았다.

정호 씨 시아버님 댁에서 살게 된 사연은 신기하고 재미있다. 생각다방이 대연동 폐점기념 ‘재능개발대잔치’를 한달동안 계속 하던 때였다. 방에 텐트를 치고 살았는데 욕실도 딱히 없고 늘 행사장인 그곳에서 살기가 버거워졌다. 얼마간이라도 주거용 공간에서 살아야 겠다고 살 곳을 찾기 시작했다. 친구의 소개로 달방으로 방을 빌려주는 게스트하우스를 알게 되어 30만원이라는 돈이 좀 비싸긴해도 들어가서 살기로 결정하고 이사를 해야지해야지 하면서 하루이틀 미루던 어느날, 생각다방에 놀러온 친구가 시아버님이 아프리카 가나로 출장을 가셔서 몇달 집이 비는데 그집에서 지내는 게 어떠냐는 제안. 아아니, 저야 고맙죠. 그렇게 해서 얼떨결에 친구의 시아버님이 잠깐 비우신 집에서 살았다. 그러다 생각다방이 칠산동으로 이사를 온 뒤에는 다시 여기로 합류, 조금씩 새집에 적응하면서 같이 살았다.

생각다방산책극장을 인연으로 알게 된 부산친구들이 간간히 가게를 찾았고, 동네 인쇄소나 사무실에서도 토스트나 팥빙수를 가~끔 사드시긴 했다. 그때 알았지, 아 이거 한달이상 하면 돈이 좀 남을 수도 있겠다. 한달은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고 끝나버리는 짧은 시간. 그래도 재미나게 놀았다.

당시에는 행복지수가 거의 최고조에 달하던 때여서, 지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싶은 가족모임도 주선했다. 서울에서 큰언니네 가족 4인(언니+형부+남조카 2), 고향에서 오빠네 가족(오빠+언니+남조카2)+서울에서 큰언니와 엄마, 나까지 총 10명이 부산에서 모였다. 여름휴가를 맞아 온 가족이 부산으로 놀러왔다. 엄마랑 큰언니는 하루 일찍 와서 칠산동 생각다방에서 하루 묵었고, 다음날 다른 가족들은 송도 핑크로더 게스트하우스를 통으로 빌려서 먹고 놀고 자고. 송도해수욕장 앞 횟집에서 별로 맛없는 회를 먹었고, 부평시장에 가서 부산어묵집 순례를 하면서 쇼핑을 하고, 시장 통닭 몇마리 사와서 야식을 먹었다. 밤에는 언니, 오빠와 달맞이 고개에 커피 마시러 갔다.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이런 온가족 모임을 했다는 게, 엄마에게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여드렸다는 게 기분 좋았다.

엄마는 이런 조그만 가게에서, 하루에 만원팔아서 뭘 어쩌려고 하느냐, 소꿉장난하는거냐, 이렇게 말하면서 걱정하셨지만 나는 소꿉장난처럼 재미있게 잘 지내니 걱정말라는 걸 현장에서 보여드릴 수 있어서 뭐랄까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칠산동 생각다방에서는 ‘아니 우리 막내 이런 데 고생하면서 다니는 거냐’고 말해서 살짝 버튼이 눌리긴 했지만 아주 많이 화내지는 않고 조금 언성을 높이면서, 아니 그렇게 말하면 여기서 사는 내 치구들은 뭐가 되냐, 다들 잘 지내고 나한테 잘해주고 나도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잘 지낸다. 내가 50만원 벌어서 방세 내고, 밥 사먹고, 노는 데 돈 다 쓰는 거나 10만원도 못벌지만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면서 살고 밥 얻어먹고 그러면서 돈 안 쓰는 거랑 뭐가 다르냐, 고 따졌던 거 같다. 지금도 그 생각에 크게 변함은 없다. (나를 재워주는 친구들도 방세는 내야 하니까 친구를 가려가면서 빌어먹어야겠다고 진화하기는 했다. 하긴 같이 어떻게든 해결하면 되기는 할거다. 생각다방산책극장의 월세마련프로젝트처럼)

2013년 여름 한 달, 부산 중앙동에서 칠월부엌을 하고 나서 좋은 단골 새친구를 얻었고, 부산을 더 사랑하게 됐고, 원래 알던 친구들과도 더 가까워졌다. 어디서 또 장사를 하게 되더라도 괜찮을 거 같다는 경험치도 생겼고, 그래도 장소는 이렇게 차가 많이 다니는 곳보다는 사람은 좀 없더라도 바깥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전 산호여인숙 친구들도 여기서 처음 만났다.

당시에는 매일매일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다. 칠월부엌 간판 옆에서 사진찍고 100원 할인을 받았던 친구들의 사진도 있다. 썩 잘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손님과 손님 소개팅도 한 번 주선했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보고 찾아온 손님도 여럿 있었다. 친구들이 거의 매번 주말마다 서울에서, 다른 지역에서 찾아왔다. 손에 현금이 남아야만 장사를 잘 한 게 아니라 이런 모든 만남들이 씨앗이 되어 나를 채워줬다. 고맙고 행복하고, 운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더란다.

후에 다른 친구는, 내가 이 경험이 인턴이나 실습 같은 거였다고, 장사하는 것에 대한 감을 잡았으니 앞으로 정말 잘 할거라고 말했지만 그런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장담할 수 있는 말은 매우 재미있었다는 것. 나중에라도 이런 식으로 자리가 나면 또 해보고 싶다. 산호여인숙 계단참에서 커피를 팔 수 있었던 자신감도 여기서 조금은 영향을 받았을 거다. 좋다, 좋다. 그렇게 그 해 7월은 지나갔다.

2013년 겨울부터 봄까지, 산호여인숙과 대동작은집을 기반으로 대전 곳곳에서 커피도 팔고, ‘무려’ 공연도 하고 재미있게 지내다가 (우울과 불안과 슬픔에 허우적대며 괴로워도 하다가) 지금 7월, 다시 조금씩 커피를 팔아볼까 하는 궁리를 하는 중이다. 찾아가는 보따리카페, 기다리는 보따리카페 같은 거.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생각만 해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