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일찍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8시였나 8시 반이었나. 아홉시까지 뒹굴거리다가 오분만에 준비하고 나서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일찍 일어난 김에, 미뤄뒀던 방정리를 좀 했다. 엊그제 이번달 안에 방청소를 마치겠다고 다짐했는데 지킨 셈이다. 출근도 10여분 서둘러서 일찍 했다. 일찍 도착하면 아침으로 토스트 구워먹고 점심 챙기기도 수월할 수 있으니까.
오늘의 청소업무량은 객실 17개와 재실2개,같이 일하는 Y는 K군과 2인 1조로 일하는데, (본인 표현으로는 데리고 한다) 나보고 방을 8개를 하라는 거다. 9:8이라니.. 두명하고 한명하고 일하는 데 거의 동량을 하라는 게 말이 안되서 멀뚱멀뚱 쳐다보며 이거 저보고 다 하라고요? 그랬더니 내가 4-5층 오르락내리는 게 힘들어서 그런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1-2층 할래요? 하고 고르란다. 아니오. 층이 문제가 아니고 갯수가 문제로 보입니다. 너무 많나? 하면서 하나를 빼긴 했는데. 두 분이서 하면 제가 하나 할 때 두 개 하셔야 되는 거 아니냐고 좋은 말로 말해서 10:7을 만들었다. 재실도 그쪽에서 하기로 하고. 가만히 있으니 내가 가마니로 보이는 건가. 당황해서 자기 너무 많아서 지금 멘붕이 왔다며 나보고 나누라고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아니지만 이정도의 스트레스는 어디서 뭘하나 있구나. 내가 사람들이랑 부딪히기 싫어서 단순한 일 하고 싶었던 건데, 어딜가든 피할 수가 없구나.
내가 빨리 해서 일을 많이 주는 거냐는 식으로 물었더니, 자기는 빼먹지 않고 대충하지도 않고 시트도 다 가느라 느린 거라며, “그쪽은 다 안 갈잖아” 라고 말한다. 그래, 내가 아무리 해도 2시 전에 가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였어. 실제로 깨끗한 건 그대로 넘어간 것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양심껏 청소하는데.
오늘은 2시 반에서야 청소가 끝났고 내려와서 쓰레기 뒷정리를 하고 있으니, 설레발을 치며 맨날 내가 하는 게 미안하니 자기가 하겠단다. 그러시라고 하긴 했지만 저는 이건 괜찮으니 객실이나 잘 나눠주세요, 라고 말했지만 알아들은 거 같지는 않다.
3시쯤 사장이 점심을 사줬다. 번거로워지는 거 귀찮아서 메뉴도 Y가 먹자는 거 같은 걸로 시켰다.그렇게 밥먹고 샤워하고 퇴근, 샤워도 내가 맨 나중에 했는데 먼저 가셔도 된다니까 자기 할일도 없고 해서 기다리겠다고 같이 가잖다, 사장이랑 따로 할 말 있냐고, 그런거 없다고 알았다고 맘대로 하시라 했다. 음. 뭔가 이런 상황 당황스럽다.
한 오분 정도 같이 나와서 걷다가 헤어졌다. 자기 얘기를 막 해주면 드라마 보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데 다른 건 어떻게 거리를 조절하며 잘 지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고 상관없는데, 미움받는 것도 상관없는데 따를 당해서 자꾸 불리한 일이 생기면 안되니까 적당히 잘 지내야 한다. 어렵다기 보단 귀찮다. 사실 나하테는 어렵기도 하다.
어제처럼 시청, 광화문을 거쳐 한 시간쯤 걸었다. 부산은행에 들러 20만원을 찾았다. 월급이 나오기 전에 보험료와 조합비, 핸드폰 요금, 다음달 지하철 정기권 등을 사야할 거 같아서 ㅂㅂ프로젝트 통장에서 빌린 셈. 정독도서관에서 책을 좀 보다가 저녁모임에 가려고 했는데 졸다가 시간이 다 갔다.
저녁에는 삶의 대안에 대해 여러 책을 읽으며 함께 공부하는 모임에 갔다. 구성원들을 소개하고 세미나 방법과 날짜를 확인하는 오리엔테이션 자리, 한나아렌트 ‘인간의 조건’ 등의 책을 읽는 세미나다. 매우 어려울 거 같아서 겁이 덜컥 나지만, 살림살이+주거+일에 대해 현재와 같은 저성자시대에 대안을 찾고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지금 내게 실제적인 문제니까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러고 나면 이런 불안이 사라질까,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그만두게 될까, 잘 모르겠다.
세미나에 같이 참여하는 친구랑 저녁을 먹고 빙수를 먹고 집에 12시가 다 되어 들어왔다. 서울와서 이렇게 늦게까지 밖에 있어본 건 처음인 듯하다. 저녁먹으러 간 자리에서 ‘애기들’ 취급을 하며 점심특선메뉴로만 하는 정식메뉴를 내주셨다. 후후후. 수다떨고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었다. 오늘은 어제와 뭐가 다른지 알 수 없지만 잠시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놀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