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4/07/28

[서울살이] 2014년 7월 28일 일기

좀 일찍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8시였나 8시 반이었나. 아홉시까지 뒹굴거리다가 오분만에 준비하고 나서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일찍 일어난 김에, 미뤄뒀던 방정리를 좀 했다. 엊그제 이번달 안에 방청소를 마치겠다고 다짐했는데 지킨 셈이다. 출근도 10여분 서둘러서 일찍 했다. 일찍 도착하면 아침으로 토스트 구워먹고 점심 챙기기도 수월할 수 있으니까.

오늘의 청소업무량은 객실 17개와 재실2개,같이 일하는 Y는 K군과 2인 1조로 일하는데, (본인 표현으로는 데리고 한다) 나보고 방을 8개를 하라는 거다. 9:8이라니.. 두명하고 한명하고 일하는 데 거의 동량을 하라는 게 말이 안되서 멀뚱멀뚱 쳐다보며 이거 저보고 다 하라고요? 그랬더니 내가 4-5층 오르락내리는 게 힘들어서 그런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1-2층 할래요? 하고 고르란다. 아니오. 층이 문제가 아니고 갯수가 문제로 보입니다. 너무 많나? 하면서 하나를 빼긴 했는데. 두 분이서 하면 제가 하나 할 때 두 개 하셔야 되는 거 아니냐고 좋은 말로 말해서 10:7을 만들었다. 재실도 그쪽에서 하기로 하고. 가만히 있으니 내가 가마니로 보이는 건가. 당황해서 자기 너무 많아서 지금 멘붕이 왔다며 나보고 나누라고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아니지만 이정도의 스트레스는 어디서 뭘하나 있구나. 내가 사람들이랑 부딪히기 싫어서 단순한 일 하고 싶었던 건데, 어딜가든 피할 수가 없구나.

내가 빨리 해서 일을 많이 주는 거냐는 식으로 물었더니, 자기는 빼먹지 않고 대충하지도 않고 시트도 다 가느라 느린 거라며, “그쪽은 다 안 갈잖아” 라고 말한다. 그래, 내가 아무리 해도 2시 전에 가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였어. 실제로 깨끗한 건 그대로 넘어간 것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양심껏 청소하는데.

오늘은 2시 반에서야 청소가 끝났고 내려와서 쓰레기 뒷정리를 하고 있으니, 설레발을 치며 맨날 내가 하는 게 미안하니 자기가 하겠단다. 그러시라고 하긴 했지만 저는 이건 괜찮으니 객실이나 잘 나눠주세요, 라고 말했지만 알아들은 거 같지는 않다.

3시쯤 사장이 점심을 사줬다. 번거로워지는 거 귀찮아서 메뉴도 Y가 먹자는 거 같은 걸로 시켰다.그렇게 밥먹고 샤워하고 퇴근, 샤워도 내가 맨 나중에 했는데 먼저 가셔도 된다니까 자기 할일도 없고 해서 기다리겠다고 같이 가잖다, 사장이랑 따로 할 말 있냐고, 그런거 없다고 알았다고 맘대로 하시라 했다. 음. 뭔가 이런 상황 당황스럽다.

한 오분 정도 같이 나와서 걷다가 헤어졌다. 자기 얘기를 막 해주면 드라마 보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데 다른 건 어떻게 거리를 조절하며 잘 지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고 상관없는데, 미움받는 것도 상관없는데 따를 당해서 자꾸 불리한 일이 생기면 안되니까 적당히 잘 지내야 한다. 어렵다기 보단 귀찮다. 사실 나하테는 어렵기도 하다.

어제처럼 시청, 광화문을 거쳐 한 시간쯤 걸었다. 부산은행에 들러 20만원을 찾았다. 월급이 나오기 전에 보험료와 조합비, 핸드폰 요금, 다음달 지하철 정기권 등을 사야할 거 같아서 ㅂㅂ프로젝트 통장에서 빌린 셈. 정독도서관에서 책을 좀 보다가 저녁모임에 가려고 했는데 졸다가 시간이 다 갔다.

저녁에는 삶의 대안에 대해 여러 책을 읽으며 함께 공부하는 모임에 갔다. 구성원들을 소개하고 세미나 방법과 날짜를 확인하는 오리엔테이션 자리, 한나아렌트 ‘인간의 조건’ 등의 책을 읽는 세미나다. 매우 어려울 거 같아서 겁이 덜컥 나지만, 살림살이+주거+일에 대해 현재와 같은 저성자시대에 대안을 찾고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지금 내게 실제적인 문제니까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러고 나면 이런 불안이 사라질까,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그만두게 될까, 잘 모르겠다.

세미나에 같이 참여하는 친구랑 저녁을 먹고 빙수를 먹고 집에 12시가 다 되어 들어왔다. 서울와서 이렇게 늦게까지 밖에 있어본 건 처음인 듯하다. 저녁먹으러 간 자리에서 ‘애기들’ 취급을 하며 점심특선메뉴로만 하는 정식메뉴를 내주셨다. 후후후. 수다떨고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었다. 오늘은 어제와 뭐가 다른지 알 수 없지만 잠시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놀았다.

[세쪽책] 칼퇴근

008_칼퇴근

008호 [칼퇴근]
산책자의 모닝커피 2014년 7월 28일 발행 :
http://www.facebook.com/3pagesbook :
글_신바닥 : 책값 500원

명동에 있는 여행자숙소에서 객실 청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모집공고에 나온 근무시간은 10시-2시, 업무량에 따라 조금 일찍 끝나거나 늦게 끝날 수도 있다고 면접볼 때 사장에게 안내받았다. 10시에 출근하면 보통은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인사하고 업무를 나누고 손님들이 체크아웃할 때를 기다려 10시 30분쯤 일을 시작한다. 청소해야할 객실이 적을 때는 3~4개 정도, 많을 때는 6개까지 하기도 한다. 방을 빼지 않아도 가끔 청소를 부탁하는 객실도 있는데 그럴때는 휴지통을 비우고 비품을 채워넣는 등 간단히 청소한다. 들어가는 품은 객실 청소의 20%정도다. 그렇게 각각 맡은 업무량을 끝내면 쓰레기장에서 일반쓰레기와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를 분리수거해 내놓는다. 종이박스를 따로 묶고 플라스틱과 캔류를 비닐봉지에 담아 한켠에 내놓으면 일이 끝난다. 

제작년 부산 해운대 게스트하우스에서 청소스탭으로 일할 때보다 명동 레지던시 총무님으로 일하는 지금이 업무강도는 낮은 편이다. 부산에서는 4인실, 6인실 도미토리가 주였고, 신발을 벗는 방이었기 때문에 훨씬 더 깨끗하게 청소해야 했다. 해수욕장 근처라 화장실에는 모래가 가득했고 여사장이 직접 청소도 하고 반장으로 업무를 분할하고 마지막 점검까지 했다. 여기는 화장실에 청소후 물기를 다 닦아내야 하고, 침구류의 마무리도 일일이 매듭지어 묶어줘야 하는 등 잔손이 많이 가지만 그때보다는 쉽다. 어쩌면 그때가 너무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무리 일을 쉬엄쉬엄 해도 맡은 분량을 2시 전에 끝낸다는 거다. 쉬엄쉬엄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작업속도를 맞추려고 해도 내가 너무 빨라서, 또는 상대가 느려서 내가 끝내는 시간은 어쩔 때는 12시, 12시 반, 1시 반. 이 정도로 늦게 하면 상대도 끝냈겠지 싶은데 아직도 동료는 객실을 2개 정도 못마친 상황. 그냥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뒷정리를 혼자 다 해도 1시 반도 안 된다. 맡은 분량을 다 끝내면 먼저 가라고 해서 먼저 퇴근하길 며칠 반복했더니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나를 콕 찝어 청소를 더 꼼꼼히 하고, 비품을 잘 챙기고, 냉장고 안을 락스로 닦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같이 일하는 동료는 2명인데, 작업량이 내가 월등히 많다. (그래도 내가 훨씬 일찍 끝난다) 그리고 사장은 전에 없이 복도를 닦아라, 게단을 닦아라 하면서 일을 더 시키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이게 동료들한테 미운털이 박힌 가장 큰 이유겠다. 나 때문에 평균 업무량이 더 많아질 수 있구나, 사장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충분히 2명이서 할 일을 3명에게 시켰구나, 라고 본전 생각이 나게 할 수도 있겠다) 

처음에 며칠은 정말 쉬지도 않고 했더니 1시간 반정도 일찍 일이 끝났고, 가도 된다길래 급한 일이 있는 척 하고 나왔다. 그래서 일터에서는 내가 다른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바쁜일이 있으면 말하고 가라길래 2주동안 그렇게 30분 정도 일찍 퇴근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은 다 하고, 보통은 남들보다 일을 더 많이 했다. 그런데도 결과적으로 나는 사장한테는 일찍 퇴근하는 못마땅한 사람이 되었고, 동료들한테는 나 때문에 일을 더 많이 해야하는 상황을 만든 적이 되었다. 

쉬엄쉬엄 적절한 속도와 강도로 일하는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놨는데 내가 깨뜨린 걸 수도 있겠다. 나는 내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이상한 결과를 만들었나보다. 내가 다른 사람들 신경 안 쓰고 내맘대로 떳떳하게 맡은 바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업무량으로 계약한 게 아니니까 (엄밀히 말하면 계약서도 안쓰고 그냥 하는 거지만, 모집공고 상으로는) 업무시간을 맞추는 게 계약 이행 조건인 셈이다. 

이전의 직장들이 야근과 철야를 밥먹듯이 하고, 노동강도가 너무 세서 더이상 그렇게 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왔는데, 업무강도가 상대저으로 낮은 이번 일터에서는 반대로 칼퇴근을 하기 위해 시간을 버터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내몸을 혹사시키는 데 너무 익숙한 탓일까. 칼퇴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이 건에 대해 맨처음 언니와 상의했을 때, 적당히 쉬엄쉬엄하면서 2시까지 기다렸다가 퇴근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일하고 싶지 않다. 일을 다 마쳤는데 왜 멍하니 기다려야 하냐,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겠다, 라고 얘기했다. 오늘 만난 다른 친구들은 지금까지 일해온 사람들이 맞춰놓은 노동량의 기준을 내가 확 높여 누군가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사장 입장에서는 충분히 두 명으로도 가능한 일이구나 싶을 테니까. 그말도 맞지만 사실 그 정도가 적당한 업무량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내 기준이 너무 빡센 걸 수도 있겠다 싶다. 인간답게 일한다는 거, 노동의 조건은 모두에게 다르지만 최대한 보수적으로 정해놓는 게 좋을 터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이 상황에서 나는 모두의 적이 되었고, 일터의 노동환경을 열악하게 만든 셈이고, 나한테 자꾸 일이 몰리면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당연히 같은 급여를 받으면서 남보다 내가 더 일을 많이 하면 부당하다고 느낀다. 만약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일하는 것만 생각한다면 계약한 시간보다 일이 빨리 끝나면 복도나 계단을 청소해도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아야 하는데, 나만 일을 더 많이 하는 건 억울하다. 동료들 입장에서는 손이 빠르고 쉬지도 않고 일하는 나 때문에 전에 하던 양보다 일이 많아지면서 부당하다고 느낄 거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칼퇴근을 하기 위해 더욱 쉬엄쉬엄 일해야겠다. 노력해보자. 일반회사에서 상사가 퇴근 안 했다고 퇴근시간 이후에 눈치보며 기다리는 것 같은 불합리한 상황은 아니니까. 처음에 알고 온 것처럼 2시까지 일하는 거니까. 근데 여기서 궁금증, 나는 왜! 쉬엄쉬엄 일을 조금만 해도 되는 상황을 못견디고 혼자 막 이렇게 하는 것일까. 어떤 심리때문일까. 조급증? 불안함? 과도한 책임감? 완벽주의? 다른 기회에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