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14 7월

[칠월부엌] 그 해 여름, 칠월부엌 이야기

작년 이맘때, 나는 부산 중앙동 사십계단 옆 작은 가게에서 열심히 팥빙수와 토스트를 만들어 팔았다. 칠월부엌을 시작한 이야기부터 메뉴 소개, 이용법 등 당시 (2013년 7월) 에 열심히 글을 썼는데 – 손님이 별로 없어서 시간이 많았고, 키보드에 손만 대면 하고 싶은 말이 줄줄줄 나오던 충만한 시절이었다 – 8월이 되자마자 그 약발이 떨어졌는지 제대로 된 맺음글이 없어서 늘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지금, 1년이나 지나버렸지만 그때처럼 손만대면 뭐든지 쓰고 있는 요즘 ‘생산과 창작의 시기’에 후딱 후기를 써버리려고 어제 사진첩을 뒤적거리면서 사진을 골라 후다닥 ‘하고싶’송을 얹어서 칠월부엌 예고편(?)을 만들었다.

하루하루 지출과 수입을 정리해서 총매출과 순수익을 계산했는데, 역시나 당연히 그때의 자료는 온데간데 없다. 돈은 좀 벌었냐는 사람들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60만원 매출에 40만원 재료비/준비비 지출’이라고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월세+전기세+수도세+쓰레기처리비용 뭐 이런거 하고 나니까 거의 안남았었는데, 저 계산이면 20만원 남아어야 하잖아? 이상하다. 40만원 매출에 재료비 60이었나? 친구가 걱정없이 잘 놀아보라고 후원금으로 11만원이나 보내줘서 월세는 낼 수 있었는데. 모르겠다. 꼬박꼬박 기록하면 뭐해, 그 수첩이 달아나버렸는 걸.

그래도, 먹고 자는 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장사하려고 준비한 빵과 키친케이에 있던 식자재들로 끼니를 해결했다. 대연동 생각다방에서 보름 정도, 감만동 친구네 시아버님 댁에서 일주일 정도, 칠산동 생각다방에서 나머지 기간을 살았다.

정호 씨 시아버님 댁에서 살게 된 사연은 신기하고 재미있다. 생각다방이 대연동 폐점기념 ‘재능개발대잔치’를 한달동안 계속 하던 때였다. 방에 텐트를 치고 살았는데 욕실도 딱히 없고 늘 행사장인 그곳에서 살기가 버거워졌다. 얼마간이라도 주거용 공간에서 살아야 겠다고 살 곳을 찾기 시작했다. 친구의 소개로 달방으로 방을 빌려주는 게스트하우스를 알게 되어 30만원이라는 돈이 좀 비싸긴해도 들어가서 살기로 결정하고 이사를 해야지해야지 하면서 하루이틀 미루던 어느날, 생각다방에 놀러온 친구가 시아버님이 아프리카 가나로 출장을 가셔서 몇달 집이 비는데 그집에서 지내는 게 어떠냐는 제안. 아아니, 저야 고맙죠. 그렇게 해서 얼떨결에 친구의 시아버님이 잠깐 비우신 집에서 살았다. 그러다 생각다방이 칠산동으로 이사를 온 뒤에는 다시 여기로 합류, 조금씩 새집에 적응하면서 같이 살았다.

생각다방산책극장을 인연으로 알게 된 부산친구들이 간간히 가게를 찾았고, 동네 인쇄소나 사무실에서도 토스트나 팥빙수를 가~끔 사드시긴 했다. 그때 알았지, 아 이거 한달이상 하면 돈이 좀 남을 수도 있겠다. 한달은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고 끝나버리는 짧은 시간. 그래도 재미나게 놀았다.

당시에는 행복지수가 거의 최고조에 달하던 때여서, 지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싶은 가족모임도 주선했다. 서울에서 큰언니네 가족 4인(언니+형부+남조카 2), 고향에서 오빠네 가족(오빠+언니+남조카2)+서울에서 큰언니와 엄마, 나까지 총 10명이 부산에서 모였다. 여름휴가를 맞아 온 가족이 부산으로 놀러왔다. 엄마랑 큰언니는 하루 일찍 와서 칠산동 생각다방에서 하루 묵었고, 다음날 다른 가족들은 송도 핑크로더 게스트하우스를 통으로 빌려서 먹고 놀고 자고. 송도해수욕장 앞 횟집에서 별로 맛없는 회를 먹었고, 부평시장에 가서 부산어묵집 순례를 하면서 쇼핑을 하고, 시장 통닭 몇마리 사와서 야식을 먹었다. 밤에는 언니, 오빠와 달맞이 고개에 커피 마시러 갔다.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이런 온가족 모임을 했다는 게, 엄마에게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여드렸다는 게 기분 좋았다.

엄마는 이런 조그만 가게에서, 하루에 만원팔아서 뭘 어쩌려고 하느냐, 소꿉장난하는거냐, 이렇게 말하면서 걱정하셨지만 나는 소꿉장난처럼 재미있게 잘 지내니 걱정말라는 걸 현장에서 보여드릴 수 있어서 뭐랄까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칠산동 생각다방에서는 ‘아니 우리 막내 이런 데 고생하면서 다니는 거냐’고 말해서 살짝 버튼이 눌리긴 했지만 아주 많이 화내지는 않고 조금 언성을 높이면서, 아니 그렇게 말하면 여기서 사는 내 치구들은 뭐가 되냐, 다들 잘 지내고 나한테 잘해주고 나도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잘 지낸다. 내가 50만원 벌어서 방세 내고, 밥 사먹고, 노는 데 돈 다 쓰는 거나 10만원도 못벌지만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면서 살고 밥 얻어먹고 그러면서 돈 안 쓰는 거랑 뭐가 다르냐, 고 따졌던 거 같다. 지금도 그 생각에 크게 변함은 없다. (나를 재워주는 친구들도 방세는 내야 하니까 친구를 가려가면서 빌어먹어야겠다고 진화하기는 했다. 하긴 같이 어떻게든 해결하면 되기는 할거다. 생각다방산책극장의 월세마련프로젝트처럼)

2013년 여름 한 달, 부산 중앙동에서 칠월부엌을 하고 나서 좋은 단골 새친구를 얻었고, 부산을 더 사랑하게 됐고, 원래 알던 친구들과도 더 가까워졌다. 어디서 또 장사를 하게 되더라도 괜찮을 거 같다는 경험치도 생겼고, 그래도 장소는 이렇게 차가 많이 다니는 곳보다는 사람은 좀 없더라도 바깥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전 산호여인숙 친구들도 여기서 처음 만났다.

당시에는 매일매일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다. 칠월부엌 간판 옆에서 사진찍고 100원 할인을 받았던 친구들의 사진도 있다. 썩 잘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손님과 손님 소개팅도 한 번 주선했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보고 찾아온 손님도 여럿 있었다. 친구들이 거의 매번 주말마다 서울에서, 다른 지역에서 찾아왔다. 손에 현금이 남아야만 장사를 잘 한 게 아니라 이런 모든 만남들이 씨앗이 되어 나를 채워줬다. 고맙고 행복하고, 운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더란다.

후에 다른 친구는, 내가 이 경험이 인턴이나 실습 같은 거였다고, 장사하는 것에 대한 감을 잡았으니 앞으로 정말 잘 할거라고 말했지만 그런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장담할 수 있는 말은 매우 재미있었다는 것. 나중에라도 이런 식으로 자리가 나면 또 해보고 싶다. 산호여인숙 계단참에서 커피를 팔 수 있었던 자신감도 여기서 조금은 영향을 받았을 거다. 좋다, 좋다. 그렇게 그 해 7월은 지나갔다.

2013년 겨울부터 봄까지, 산호여인숙과 대동작은집을 기반으로 대전 곳곳에서 커피도 팔고, ‘무려’ 공연도 하고 재미있게 지내다가 (우울과 불안과 슬픔에 허우적대며 괴로워도 하다가) 지금 7월, 다시 조금씩 커피를 팔아볼까 하는 궁리를 하는 중이다. 찾아가는 보따리카페, 기다리는 보따리카페 같은 거.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생각만 해도 참 좋다.

 

 

 

[서울살이] 2014년 7월 12일 일기

일하러 가는 게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잠이 잘 안왔다.
11시 반부터 자려고 불끄고 누웠는데도 뒤척뒤척,
자다가 보면 한 시, 세 시, 다섯 시… 더워서 그런가? 불면증.

늦게 않게 8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커피도 내려서 도시락으로 빵과 함께 챙겼다.
지하철타고 기분 좋게 출근.

일터는, 게스트하우스라기 보다는 비즈니스호텔에 가깝다. 상호도 레지던스.
중국인 관광객들이 로비에서 조식을 먹고 있다. 토스트 제공에 딸기잼과 땅콩버터,
내일부터 나도 여기서 간단히 아침 먹어도 되겠다.

같이 청소일을 하는 동료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고참 언니, 또래 여성. 한 살 많은 걸 강조하는 걸 보니 언니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좋아보이지만 관심도 많고 질문도 많아서 피곤할 거 같다. 이미 나는 여기서도 ‘자유로운 영혼’ 태그를 달고 입장했다.

‘와, 여행 많이 다니신다면서요, 영어도 잘하시겠네요. 멋있다..”

아, 네…. 그냥 웃고 가만히 듣고 적당히 장단을 맞춘다.
10시부터 2시까지라고 해서 10분 전쯤 도착했는데 10시 15분에서야 오셨고 30분에나 일을 시작하더라. 오늘 같은 경우는 12객실 청소로 2시 15분쯤 끝났다. 그리고 이불에 시트를 묶는 거 정도만 번거롭지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사장이 스트레스를 주거나 할 일도 없을 거 같고, 잘 하면 일 시작 전후로 남산 산책로에 커피 팔러 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지켜봐야지.

이 두 명의 아줌마들과 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너무 들어오지 않게만 하면 될 듯.

일 끝나고 나서도 10분 넘게 커피 마시며 얘기했다. 첫날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듣고 있었다. 커피메이커로 내린 맛없는 커피를 권해줘서 그것도 두 잔이나 마셨다.

남산도서관에 걸어가서 도시락으로 챙겨간 빵과 커피를 먹고 한 시간 정도 책을 보다가 5시에 문 닫길래 나왔다.
대출증을 만들려고 했는데 전에 영등포도서관에서 만든 걸로 사용해야한단다.
어플을 깔면 모바일회원증을 사용할 수 있다는데, 이래저래 해보다가 귀찮아서 그냥 관뒀다.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를 절반쯤 읽었는데 재밌었다. 내일이나 모레 와서 마저 읽어야지.

남산산책로를 따라 좀 걷다가, 한옥마을로 내려와서 지하철 타고 집에 왔다.
일주일 동안 거의 한 시간씩 걷다보니, 30분 걸은 걸로는 양이 안 차서 한 정거장 더 가서 서점에서 어제 보다만 ‘99%를 위한 주거’를 다 보고 집에 돌아왔다.

스쿼트 80개를 겨우 했다. 자세가 뭔가 흐트러진 것 같은 기분인데 몰라 힘들어.
허리를 펴기 위해 어깨에 대금을 역기처럼 얹고 10개 정도 더 했다.
아령을 들고 며칠 전에 팔운동도 조금 했는데 욱씬욱씬 땡긴다. 운동이 되기는 된 모양, 하지만 오늘은 하지 않았다. 내일…. 하지 뭐.

밥먹고 내일 도시락으로 챙겨갈 통팥을 좀 챙기고 뭘할까 하다가
작년 칠월부엌 사진들을 골라서 동영상편집을 했다. ‘하고싶’송을 얹었다.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이런걸 하다보면 시간이 잘 간다. 여기다가 ‘칠월부엌을 마치며’ 를 써서 블로그에 올려야지. 뒤늦은 후기인 셈이다.

내일은 ‘산책자의 모닝커피’ 서울서비스가 시작되는 날이다.
칠월부엌에도 찾아왔던 오랜 트위터 친구님을 만나 남산에서 커피를 내려 대접하기로 했다. 히힛. 기대된다. 그래서 오늘 남산 산책로를 걸으며 어디가 좋을지 장소를 물색했다. 내일 해보고, 이런 식으로 찾아오는 친구님들을 만나서 커피를 대접해도 재밌을 것 같다. 혹시 원하는 친구님이 있으면 연락주시길. 내가 찾아갈 수도 있다.

언제부터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알아보기 시작한 시점부터?) 고마운 일이다.
한 달 정도는 이렇게 시시콜콜 일기를 써볼까 한다. 꾸준히. 쓰는. 연습.
그리고 다시 우울해지면 그 마음을 잘 지켜보기 위해.

[서울살이] 2014년 7월 11일 일기

세쪽책 하나를 완성하고 나니 동이 텄다. 다섯시. 서둘러 잠자리에 들다.
9시가 되었는데 눈이 떠진다. 어라, 이상하네. 그러려니 하고 뒤척인다. 요즘들어 손이 많이 붓는다. 어제 저녁엔 또 뭘 먹었더라.. 삼십분 정도 트위터하고 페이스북 들락날락 거리다보니 붓기도 가라앉고 정신도 난다.

자리에 누워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조금 읽었다.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뿅뿅 샘솟는다. 모닝페이지를 쓰던 노트를 꺼내 이어서 좀 적는다. 그러다 보니 또 딴지시 하고 싶어진다. 운동 계획표를 그렸다. 한달동안 스쿼트나 런지, 플랭크 등 할 수 있는 맨몸 근력운동을 좀 해봐야겠다.

커피를 내리고, 뜨거운 걸로 한 잔 아이스로 한 잔 어제 사온 통팥빵과 사과 반쪽으로 늦은 아침을 먹는다. 샤워하기 전에 스쿼트 60개, 벽짚고 팔굽혀펴기 50개, 크런치와 레그레이즈를 헥헥 거리며 20개 정도 한다. 힘드니까 오늘은 그만.

전에 한창 운동하고 살이 빠질 때 적어두던 신체사이즈표를 찾을 수가 없다. 비교해보고 싶은데.. 그냥 오늘을 첫번째 칸에 두고 하나 더 그린다. 한달마다 한번씩 재보기로 한다. 월요일에 보건소에서 받아온 대사증후군 결과지와 체성분표를 뚫어져라 보면서 3월에 비해서 살이 찌긴 했지만 아직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고 위로한다. 운동, 찬찬히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마도 세쪽책을 올린 걸 본 모양이다. 기분 좋게 이야기 나누고, 지지받고, 깔깔 거리다가 끊었다. 불안한 이야기, 아르바이트 이야기, 자전거 카페 이야기 하면서 자전거 뒤에 달 나무 상자 만들 목수를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다가 꽤 오래 연락을 하지 않은 옛친구에게 전화해 볼 용기가 생겼다.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를 남겼다.

오후다. 이제 뭐할까.
오늘 꼭 해야 하는 한 가지 일은 내일 일터에 제출할 주민등록등본을 떼는 것 뿐이다. 운동삼아 큰언니집까지 걸어가서 출력을 해오고 나가는 김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도 몇권 팔아서 현금을 마련하고 서초동중앙도서관에서 책도 보면 좋겠다고 동선을 고민한다.

2시 30분, 소설책 열 권을 챙겨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선다. 한 시간 정도 걸어 6km 떨어진 서점에 도착했다. 17,700원을 받았다. 중간에 아침에 전화한 친구랑 통화해서 다음주 약속도 잡았다. “야~ 너는 도대체 어디서 뭐하고 사는 거냐?”라는 매우 반가운 목소리를 들었다. 고마웠다.

30분을 더 걸어 언니집에 도착했는데 각종 보안프로그램 설치가 되지 않아 주민등록등본 출력은 실패다. 씨리얼과 포도만 먹고 다시 동사무소로 향했다. 서류를 떼고 서초동중앙도서관에 6시 직전에 들어가 책을 집어 들었다. “99%를 위한 주거” 한창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30분 후 친구한테 놀자고 연락이 온다. 망설임 없이 나섰다.

친구를 만나, 김밥과 쫄면을 사 들고 한강으로 향했다. 돗자리를 사서 자리를 잡고 냠냠 저녁식사. 친구 회사 이야기, 내가 만나고 통화한 친구들 이야기를 하고 놀았다. 후식으로 웨하스를 먹고 9시 반쯤 자리를 정리하고 버스타고 돌아왔다.

샤워하고, 내일 입고갈 옷과 일할 때 입을 옷과 끝나고 갈아입을 속옷과 도시락용 빵을 챙겨놓고 이제 잠자리에 든다. 오랜만에 출근, 조금 떨린다. 어서 자야지.

[세쪽책] 안전잔액한계선

007_ 안전잔액한계선007호 [안전잔액한계선]
산책자의 모닝커피 2014년 7월 11일 발행 :
http://www.facebook.com/3pagesbook :
글_신바닥 : 책값 500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이제 한 달에 70만원이 생긴다. 핸드폰비, 교통비, 조합비, 보험료, 저축 등 고정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용돈을 아껴쓰면 11월 발리 여행을 가기 전까지 여행경비를 충분히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2011년 여름 이래로 고정적인 월급이 없는데도 자유롭게 운용가능한 계좌 잔액이 아직 0이 되지는 않았다. 지난달부터 두자리, 한자리로 내려가면서 불안불안한 상태지만 나름대로 설정해 놓은 위기대처용 비상금이 있으니 위급한 상황은 아니다.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울렁인다. 해외여행 두 번 다녀온 걸 빼면 잔액은 아주 천천이 줄었고 가끔 벌기도 해서 지금까지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모아놓은 돈을 쓰면서도 위기대처용 계좌에 일정금액을 분산해서 꼬박꼬박 저축도 했다.

2014년 상반기를 결산하면서 월평균 수입을 계산해보니 30만원 안팎. 본격적으로 대전에서 살면서 커피를 내리고, 콩을 볶아 판매하기 전까지는 노트북도 팔고, 가족이나 지인을 대상으로 운좋게 기획서 쓰는 걸 도와주거나 여행계획을 세워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용돈을 포함해서 월 평균 비용은 50만원 정도, 모아놓은 돈의 계좌에서 그 부족분을 채우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게다가 3월부터는 발리 여행을 위해서도 따로 돈을 모으고 있다. 사실 3년이면 얼마되지도 않던 돈으로 오래 버틴 셈이고, 전재산을 탈탈 털어도 0인 것은 아니니 그동안 잘 지냈다.

이제 더이상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 처한 거다. 물론 보험을 해지하고, 핸드폰 비용을 줄이고, 저축을 하지 않는다면 고정비용은 줄 테고, 지금이 첫번째 위기라면 1단계 위기대처용 자금을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돈을 버는 방식을 택했다. 1차 잔액한계선을 100이라고 치면 2차는 80, 3차는 50정도 될 텐데 1차 한계선앞에서 우왕좌왕 겁을 먹고 있는 셈이다. 2차 한계선으로 낮출 것이냐, 100을 유지할 것이냐. 요근래의 우울하고 괴로웠던 건 이유가 그게 아닐까 싶다.

상황과 마음과 말과 행동이 한결같지 않아서 혼란스럽다. 백수로 지내고 있긴하지만 여전히 의료실비를 보장한다는 사보험에 들어 있고, 누군가에게는 꽤 큰 금액일 1차 잔액한계선 앞에서도 이렇게 불안하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불행하게 살지 말고 그때그때의 행복에 따라 살자고, 아껴 쓰면 지금 있는 돈을 다 쓸 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되니 그때까지만이라도 걱정없이 놀자고, 돈이 없는 상황에 닥치면 그 때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자유입출금 통장의 잔액이 이번달 나가야 하는 자동이체 금액보다 적은 지금 이 상황에서 덜컥 겁을 먹는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살려고 자급하는 삶, 주워쓰고 얻어쓰는 삶을 살겠다고 하지만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만 갖고싶은 물건, 막상 갖고 있어도 어디다가 딱히 쓸 필요도 없는 비싼 물건-예를 들면 신형아이폰이나 맥북에어-을 산다. 나는 소비의 노예가 아니고 딱히 채우고 싶은 욕망도 없어서 적게 벌고 행복하게 사는 게 가능할 거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모순이다. 애걔, 그러면 그렇지, 라고 누가 비웃을 것만 같다.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부끄럽다.

그런데 어쩌랴, 나는 이런 사람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연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시시한 존재라는 사실을,
따지고보면 세상 사람들도 다들 다그렇게 시시하다는 것을.
나는 나를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100이라는 1차 잔액한계선 앞에서 겁먹고 80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하고, 왜 그러냐 추궁하고, 그러기를 강요하면서 스스로를 미워하는 대신 20만큼 돈을 벌어 100을 유지하는 편을 택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게, 할 수 있는 게 그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임금노동이긴하지만, 그래도 내가 정한 기준에 의해 선택한 일자리라 다행이다. 집에서 가기 편하고, 되도록 짧은 시간동안만 했으면 좋겠고, 몸을 움직이는 일을 찾았다. 나이와 경험치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지는 않았다.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를 잘 못한다는 걸 여러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이제한이 없고 초보도 지원 가능한 커피집이나 샌드위치 가게에도 선뜻 지원하지 못했다. 경험이 전혀 없는 식당 주방이나 홀서빙은 문의조차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런 행동패턴도 배가 덜 고파서이기도 할 테지만, 내 깜냥을 ‘인정’하자고 천천히 되뇌였다. 그러다 게스트하우스 청소일자리를 발견하고 며칠동안 고민하다가 용기내어 전화 했다. 처음에 통화했을 때는 당장 자리가 나지 않아서 8월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성수기 바닷가 게스트하우스 일자리를 찾아 부산으로 내려갈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다음날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게스트하우스 객실 청소는 제작년 부산에서 석달 정도 했던 일이다. 해외에서는 그런 식으로 여행하는 여행자를 많이 봤고 그렇게 부산에서 장기여행자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무료로 머물고, 조금의 용돈을 벌었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고, 아쉬울 것도 두려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즐겁게 일했다. 그래서 서울에서도 그런 일자리를 중심으로 찾았다. ‘그래도 내가 청소일을’ 이런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회사원으로 직장을 꾸준히 다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순간부터 돈벌이에 대한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았고, 게다가 나는 좋아하는 일이라도 회사를 다니면서는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 어쨌거나 회사라는 건, 내가 꾸준히 다닐 수 없는 종류의 장소, 조직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함께 일하는 사람이나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거나 협력하지 않고 혼자서 알아서 내맘대로 하는 거다. 모든 일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니 만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골라서 만날 수 있을 것,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으로만 만나고,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방어할 것. 판매사원, 베이비시터, 편집자, 여행가이드, 기획자, 청취자, 상담자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통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의 목록을 완성해가고 있다.

[서울살이] 2014년 7월 10일 일기

책 읽은 얘기를 대충이나마 정리해서 글을 두 꼭지 쓰고 나니 새벽 네시에나 잠들었다.
이렇게까지 늦을 줄 몰랐는데, 당일 읽은 책에 대해서 늦더라도, 대충이라도 정리해놓고 싶었다.

몇시간 자지도 않았는데 8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한 번씩 깼다.
깰 때마다 아이폰을 들여다 보고 시간을 확인하고 동시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알람도 확인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정말 중독적인 면이 있기는 한 거 같다)
열한 시 경, 일어나서 씼고 외출 준비를 했다. 한 오분쯤 일어나 앉은 자리에서 명상을 했고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몇쪽 읽다보니 뭐라도 쓰고 싶어서 모닝페이지 노트에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을 좀 썼다. 세쪽. 샤워하기 직전 거울을 보고 20개씩 3세트 스쿼트를 했다.

점심 약속이 한 시였고 명동까지 넉넉 잡아 한 시간 정도라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는데, 왠 걸 30분도 안걸리더라. 일찍 도착한 김에 아이폰 서비스센터에 가서 케이블 교체를 받으려고 했는데, 1년 이내라 무상수리/교체 기간이기는 하지만 외부적손상이 있는 건 교환이 안된단다. 힝. 하고 그냥 돌아왔다.

트위터에서 1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님을 만나 명동교자에 가서 콩국수를 먹었다. 완전 맛있다.
오랜만에 갔지만 역시 명동교자의 자동화된 척척 시스템은 감탄스럽다.
10여년 전 처음 명동교자에 갔을 때 앉자마자 주문, 선불, 2분내 서빙. 그 자동적인 착착 시스템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게 작은 소망이었는데….

길치인 관계로 약간 헤메다가 면접을 보기로 한 게스트하우스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친구님의 여행이야기, 사는 이야기, 내 사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나누다가 면접 시간 2시 5분 전에 가서 5분 간 면접보고 좋은 기분으로 돌아와 친구님과 다시 수다.
저녁 시간 무렵까지 얘기하고 놀다가 6시 반 경 귀가.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은, 냉장고 안에서 죽어가고 있던 각종 야채 살리기 대작전. 뒤져보니 물러가는 호박 1/3토막,쪽파 몇줄기가 있었다. 양파, 피망, 마늘, 고추도 잘게 썰어서 약한 불에 기름없이 살살살 익히고 냉동새우와 홍합 몇개를 굴소스에 버무렸다. 채소가 좀 익은 뒤 해물을 넣었는데 뭔가 비린내가 나길래 두반장 소스를 그냥 좀 넣어봤다. 매콤하니 괜찮네. 아침에 언니가 해놓은 현미잡곡밥 반공기랑 냉장고안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잎채소(알고 보니 된장찌게용 근대라고 했다)에 비네가 소스를 뿌려서 샐러드 겸 쌈야채로 먹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주아주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10여년 전 페미니즘모임에서 같이 공부하던 언니가 직장생활 스트레스에서 시작,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자존감, 풀지 못한 유년기 부모와의 관계, 결국 사는 건 이 무한루프 속에서 나의 비루함을 지켜보는 과정이라는 것까지…
오랜만이지만 방금 어제 하던 얘기를 잇는 것처럼 소중한 시간이었다.
무기력에서 의욕적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는 과정에 있는 날인 걸 어떻게 알고 이렇게 친구에게 기능할 기회를 주다니. 이것저것 고맙다.

낮에 면접 본 게스트하우스에서 토요일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얏호. “네, 잘부탁합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두 시간 가까이 전화통화를 했는데, 하면서 언니들이 운동하는 헬스장까지 운동 겸 한 시간여를 걸었다.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큰언니는 용돈을 줬고, 팥빙수가 먹고 싶어서 몇군데 가게를 둘러봤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아쉽지만 김영모 과자점에서 빵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집에 도착. 커피를 내려서 맛있는 아이스커피를 만들고 당장 빵을 뜯어먹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일단 물한컵을 마시니 식욕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배가 불러서 안 먹어도 될 것 같았지만 그것까지 참지는 못했다. 샤워하고 나서 언니를 위해 늦은 저녁밥상을 차렸다. 저녁에 만든 해물야채볶음 요리 남은 것과 잡곡밥. 나는 사온 통팥빵을 반개만 먹었다.치즈 수풀레도 한 두 수저만. 잘했다. 그리고, 이제, 잘 시간.

생각산책8월호에 보낼 글을 다시 한 번 좀 읽어본 뒤, 고치거나 그냥 보내거나 하면 된다. 오늘 대화중에 느꼈던. 어떤 마음에 대해서 한번 찬찬히 생각해봐야지. 세쪽책 06호를 써도 좋겠다.

[책] 속도를 늦추면 행복이 보인다

SBS 스페셜 “적게 벌고 더 잘사는 법 – 도시부족의 탄생”을 뒤늦게 봤다.
‘적당히 벌어서 아주 잘 살’고 있었던 때는 저런 얘기따위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방송에서 하는 건 일단 삐딱하게 의심하고 보는 편이라 뭐 다른 얘기가 있겠나 싶었다. 불안하고 괴로운 시기라서 그랬을까, 보고나니 좋았다.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든 다른 삶을 원해서 한 선택이든 지금 이 체제가 맞지 않는다면 대안을 찾아야 하는 거였어. 나는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이었지. 저렇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건데.  가끔씩 이렇게 흔들리는 걸 잘 견디기가 어렵다. 친구들이 지지한다고 말해줘도 불안해서 뭐든 읽을 거리, 볼 거리를 찾는 중이다. 쉽게 이 불안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 과정을 덤덤히 바라보고 이런 나를 받아들이는 것도 숙제라면 숙제다.

여튼 내용 중에 점심 장사 없이 하루에 여섯 시간, 일주일에 닷새 여는 음식점 ‘가끔은 달이라도 쳐다봅시다’ 이야기가 나오는데, 주인장 코사카 마사루 씨가 쓴 책이 있다는 걸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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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제목도 표지도 그저 그런데, 내지 디자인은 참 예쁘다. 조한혜정 선생의 추천사는 뭐랄까, 매우 우아해서 이 책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였다. 풍요로움과 즐거움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는 일’을 하는 데서 온다는 말은 내가 내 커피에 대해서 늘 하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가 ‘다운시프트’하기 전 경쟁사회 구성원으로 치열하게 산 얘기,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하고 경험하고 배우면서 창업을 준비하기까지, 적게 벌고 잘 살기 위한 원칙을 지키며 가게를 꾸리고 자급하며 사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늘려 살다보니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자아찾기’가 끝났다는 말이나 시스템이나 거대자본을 거부하면서 삶의 방식과 의미가 달라졌다고 단정짓는 말하기가 내 취향은 아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 전달된다. 그리고 저자에게는 진실로 그러할 것이다. 다른 삶의 방식과 기준이 있는 것처럼 이런 ‘적게 벌고 느리게 살며 행복한 방식’에도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을 터이니. 저자는 여행을 통해 짐을 줄이는 훈련, 지혜로워 지는 경험을 했다 하고, 어쩔 수 없이 처분하는 물건이나 계약을 통해 후련함을 느꼈다고 하지만, 나는 두세달에 한번씩 거주지를 옮기면서도 짐 싸는 데 아직도 전전긍긍하고, 물건에 대한 집착도 여전하고 돈 문제에도 민감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많은 힘이 된다. 그리고 직장을 그만두고 가게를 차리거나 본인의 공간에서 자립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내용도 많다. 내맘과 같아 반가운 말도, 불안함을 녹이는 고마운 말도 있다.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
-무리하지 않아도 좋다
-이제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효율적이지 않아도 된다
-많이 고민해도 된다
-좋아하는 것을 모두 모아 놓으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 된다

[책] 빈둥빈둥 당당하게 니트족으로 사는 법

IMG_1174다운시프트, 니트, 프레카리아트, 잉여, 백수…
입에 잘 안붙기도 하고, 굳이 용어로 정리하는 것도 별로라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러다 요즘 들어 불안하기도 심심하기도 괴롭기도 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는 중이다.
내가 사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되었듯 나도 뭔가 붙잡고 싶었나보다.

빈둥빈둥을 검색하다 걸렸을 거 같다. 니트, 같은 단어를 설마 내가 검색했을까.. 어쩌다보니 알게 됐고 오늘 도서관에 가서 봤다.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니트족으로 살고 있는 저자가,
– 자신이 어떤 성격의 사람이고 어떤 식으로 학교생활/사회생활을 했는지, 어떻게 니트족이 되었는지
– 구체적인 생활 방식 (주거, 경제활동, 네트워크, 그 외 일상적인 활동)과 유용한 팁
– 니트족으로서, 니트족으로 사는 것에 대에 대해 썼다.

대인관계를 굉장히 피곤해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못하고, 답답한 공간을 못견뎌한다는 저자의 특징이 니트족으로 살게 된 큰 이유인 듯했다. 그래서 지금 빈둥거리면서 지내니 참 좋다, 이런 얘기다. 그렇겠지, 근데 늘 좋기만 한 건 아닐 거 아냐. 괴로울 때 어땠는지 그런 게 더 궁금하다고. 어떻게 산을 넘었는지 그런 얘기는 왜 아무도 안해주는 거냐. 앞으로 내가 해야겠네.

니트족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1)타인과의 교류 2)심심풀이로 할 것 3)최소한의 자금, 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절대 공감이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꼈던 시절과 왠지 모르게 불안한 지금이랑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무기력에서 의욕적인 상태로 넘어가는 지점에 필요한 게 뭔지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좋은 친구들이 전국 각지에 있고 만나려고 하면 만날 수 있는데 안 하고 있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노래도 할 수 있는데 잘 안되고, 돈이 한 푼도 없는 게 아닌데 스스로 정해놓은 어떤 막다른 방어지점까지 갔다고 느끼는 점에서 불안한 거다. 그 마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넘느냐가 관건이겠지. 회사를 그만두는 건 그럴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택한 방법은 몸을 쓰면서 적당히 돈을 버는 거다. 그래서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기웃거렸다. 나이제한과 경력자 모집을 제외한 일자리는 식당서빙이 대부분인데, 노동시간이 너무 길면 분명 다시 똑같이 괴로워질테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해본 적 없는 일이라 선뜻 지원할 용기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하루 4시간 게스트하우스 청소일자리를 발견했다. 내일 면접을 보러 간다. 잘 됐으면 좋겠다.

본가에서 적당히 눈치보며 있을 가치를 하며 살거나, 남의 집에 쓸모 있는 존재로 얹혀 살라는 조언은 실제적이기도 하고 지금 내게도 힘이 된다. “먹지도 말라는 말이 싫다. 사람은 일하지 않고 살아도 된다. 그깟 일 좀 대충해도 되지 않나.”등 제목만으로도 통쾌한 부분도 적지 않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0782

[서울살이] 2014년 7월 9일 일기

어제밤에 부산에 가야겠다, 생각했다.
근데 대전에서 올라온 짐도 안풀고 다시 짐을 싸서 부산에 갈 생각을 하니 귀찮아졌다. 그래도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든 게 어디냐 싶어서 버스 시간표를 알아봤다. 7시 일반고속을 타면 점심 전엔 다방에 도착할 수 있겠다. 가고 싶다는 마음 +20

대전 단골님이 서울나들이 산책길에 초대해주셨는데, 그때까지만해도 아무런 의욕도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잠결에 거절문자를 보냈다.

정신을 차리니 11시, 배가 고팠다.

어떻게 알았는지 부산에서 전화가 왔다. 요즘 이래저래 우울하고 괴롭다고 칭얼칭얼 거리며 마음이 동하면 부산에 가야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이틀 전 문의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알바자리가 났다고 전화가 왔다. 8월에나 자리가 난다고 해서 그럴바엔 부산에 가서 전처럼 해운대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오호라, 내일 면접을 봐야하긴 하지만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왠지 기분이 그렇다.

트위터로 알고 지내던 분이 만나자고 먼저 연락을 주셨다. 그래 좋아. 움직이자. 요즘은 좀 우울하지만 그럴 때는 또 그런 대로 만남이 좋을테니 만나기로 했다.

생각다방산책극장 8호에 실을 글을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기분 좋게 통화를 했다.

오랜만에 제주도에서 잘지내냐는 문자가 왔다. 냉큼 전화를 걸어 간단히 수다를 떨었다.

용기를 내어, 커피도구함을 만들고 있는 목수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언제 되냐고 독촉하려던 건 아니고 안부인사 겸, 자전거에 실을 진화된 도구함에 대해서 상의하려고. 천천히 잘 지내다가 이번달이 가기 전에나 만나자고 했다.

서울에 온 뒤로 처음으로 요리를 했다. 냉동실에 반년 정도 묵은 닭가슴살을 올리브유, 간장, 식초, 소금, 후추에 재워놓고 마늘, 양파, 피망을 썰어 같이 볶았다. 언니가 해놓은 잡곡밥과 함께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동전함에서 500원짜리를 골라 저금통에 넣은 뒤, 남은 동전은 은행에 가서 입금했다. 13,030원이었다.
해운대 할머니가 주신 천원짜리 복돈 100여장을 들었다놨다 하면서 이걸 써 말어, 써 말어 고민했는데 깨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시 곱게 주머니에 넣어뒀다.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까지 걸어갔다. 길을 조금 헤맨 덕에 한 시간이나 걸렸다. 도착하자마자 배가 고파서 사과를 하나 먹었다. 4층 사회과학실에서 책을 찾아 읽었다. 자료실 마감시간인 6시 이후에는 1층 자료실에서 관내대출로 5권 정도 책을 챙겨왔다. 아까 읽던 책을 다 보고, 다른 책 한 권을 더 읽었다. 낮에 먹고 남은 걸 도시락으로 싸서 저녁도 먹었다. 책을 다 읽은 시간은 8시 반, 도서관은 아홉시까지였다. 천천히 걸어 집에 돌아왔다. 50분 정도 걸렸다. 집에 와서 드디어 짐정리를 했다.

반가운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또 칭얼칭얼거리곤 관심이 가는 모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참가신청서를 보냈다.

샤워하고 런지 10개씩 두 세트를 했다. 엊그제부터 조금씩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3월에 비해서 살이 찌고 얼굴과 손이 많이 붓는다. 달거리도 불규칙해졌다. 먹는 것, 운동하는 것에 신경을 써야겠다. 그리고 너무 늘어지지 않게 이렇게 매일 일기를 쓰기로 했다.

배고프다. 요거트를 한 개 먹어야 겠다.

읽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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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자리

대전에서 살기로 한 3개월이 지났다. 지난 겨울 천안 언니네집에서 3개월 지내면서 뫔튼튼 프로젝트에만 몰두하며 만족스런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또 그런 시간을 갖고 싶었다. 여기저기 짧게 여행하며 떠도는 대신 한곳에 오래 머물면서 뭔가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대전에선 수영을 배우기로 했다. 11월에 발리에 갈 거니까. 석달 정도 배워야 물에 익숙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3개월을 생각했다. 대전에는 산호여인숙을 비롯해 재미있는 친구들이 많으니 지내면서 새로운 관계들을 잘 맺으면 또 뭔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일이 흘러갈 수도 있을 지도 모르니까.

4월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영장을 다녔다. 보름 정도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좀 바빴지만 즐겁게 정신없이 보냈다. 친구들을 만나고 놀고 이야기하는 게 좋지만 감정도 관계도 너무 과하다는 느낌에 혼자있는 시간이 아쉬웠다. 그렇게 5월이 되었고 혼자 살게 되었다. 기뻤다. 5월엔 스포츠용품 행사매장에서 판매아르바이트를 8일 동안 했고 수영장은 열 번도 안갔다. 산호여인숙에서 마련한 창작공간인 대동작은집에서 ‘작가’로 살기 시작했으나 쓰겠다고 한 뉴질랜드 여행기는 제대로 시작도 못했다. 아르바이트하느라 몸과 맘이 힘들었고 발가락 저림과 감기 때문에 고생했다. 컨디션은 금방 회복되지 않았다. 6월엔 수영장을 등록조차 하지 않았고 한 달 내내 무력하게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종종 커피콩을 볶고 세쪽책을 쓰며 커피를 내리며 다짐하고 계획하고 다시 무너지고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다시 다짐하기를 반복했다. 다시 살도 쪘다. 그러다 보니 6월이 거의 다 지나가버렸다. 

지난주부터 대동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산호에서 마지막 일주일을 보낸다. ‘입주작가’로 지내던 긴장감과 스트레스마저도 확 떨어져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대동에서 지낼때는 아, 써야하는데..하면서 마음이 울렁울렁 거리기는 했다. 산호에서는 늦잠자고 밥먹고 스마트폰 들고 뒹굴거리다가 졸리면 잔다. 씻지도 외출복을 챙겨입지도 않고 동네한량처럼 그냥 어슬렁거린다. 적당한 이별준비라고 하고 있지만 사실 좀 무책임하기도 하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이 자리는 내가 쓰겠다고 한 뉴질랜드여행기를 완성시켜 함께 ‘읽는 자리’여야 한다. 변명하자면 써야하는데 하면서 괴로워하는 거랑, 못쓰겠다 마음먹고 그런 나를 인정하고 바라보며 괴로워하는 거랑 괴로움의 크기는 비슷하다. 숨고 싶고 부끄럽지만 지금 이 자리를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앉았다. 어떤 의미가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최소한 그래야 할 것 같다.

대동작은집은 좋은 곳이지만 어쩔줄몰라하는 내게 과한 공간이었다는 걸 인정하자. 왁자지껄한 관계를 피곤해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고립된 혼자만의 시간을 잘 꾸려가는 뚝심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외로웠고 게을렀고 괴로웠다. 세상도 사람도 시시했지만 시시하지 않은 어떤 걸 찾아내지도 못했다. 어짜피 나도 그 정도로 시시한 사람이었다. 정리하려했지만 하지못한 그 뉴질랜드 여행에서 배운 것도 비슷하다.

나는 거리를 두고 천천히 감을 믿고 관계를 맺는 유형, 낯선이들에게 먼저 다가서거나 내 얘기를 많이 하면서 친해지는 편은 아니다. 묻는 말엔 대답하기는 하지만 먼저 묻지는 않는다. 별로 궁금하지 않기도 하고 개인적인 걸 묻는 게 실례같기도 해서 주로 듣고 있는데, 재미없다 싶으면 그냥 알아서 눈과 귀를 닫는다. 자연스럽게 먼저 시작하지도 못하고 그런 의례적인 시작은 마땅치 않아 예의상 반응만 할뿐이었다.  그랬더니 여행에서 사람을 사귀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자주 외롭고 심심했다. 그래도 여행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들을 보는게 감격스러웠고, 매일매일 있는 힘을 다해 몸을 피곤하게 만드는 기분이 좋았다. 크리스마스나 새해첫날도 텐트안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잠들었다. 밖에서는 파티소리가 시끄럽게 들렸고 서글픈 기분이 조금 들었지만 나가서 함께 어울릴 수는 없었다. 용기도 없었고 재미있을 거 같지도 않았다.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런 밤들을 여럿 지나면서 내가 이런 사람임을 알고 인정하게 되었다. ‘외롭고 심심해하지만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 사람, 민망함과 외로움 사이에서 속편하게 외로움을 선택해버리는 사람.’ 

많은 사람들과 흥미로운 만남을 갖지는 못해도, 순간순간 빛이 되는 시간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여행자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나도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든 했어야 하니까 기적처럼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보통은 낯선 곳에서 한없이 외로워지는 나를 발견하고 몸을 계속 움직이고 이동하면서 그 불안함을 잊는다. 불안함을 안고 떠나고 만나고 다시 돌아온다. 여행이 끝나면 사람들이 내게 호의를 베푼 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잘 대해야겠다고,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을 잃지 않도록 잘 지내야 겠다고 다짐한다. 언제 어떻게 관계가 진전될지는 몰라도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계속 좋아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길에서 좋은 인연을 낚는 여행자는 될 수 없는 사람, 인연을 조금씩 여러번 쌓는 사람, 시간이 걸리는 사람.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니 다른이를 부러워하면서 그렇지 않은 나를 많이 원망하지는 않게 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거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감정, 욕심, 불안함이 나를 자꾸 괴롭힌다. 알아채지 못하고 그럴리가 없는데, 하고 부정하면서 시간을 자꾸 보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외롭지 않도록 친밀한 사람과 적당한 거리에서 함께하고 싶다. 시끄러운 건 싫지만 어색한 것도 불편하다. 좋은/좋아하는 사람들과 천천히 사귀고 그 관계가 진하게 지속되기를 바라는데 시작하는 건 부끄럽고 귀찮고 기다리기 싫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세상이 시시하고 재미없지만 혼자 등지고 살고 싶지는 않다. 좋은 사람들만 골라서 만나고 싶다.  좋은글을 계속 쓰고 싶지만 치열하게 노력하고 싶지는 않다. 일하기는 싫지만 딱히 어디다 쓰겠다는 것도 아니면서 돈은 많았으면 좋겠다. 널뛰듯 감정이 급변하는 게 싫은데 특별한 사건없는 시간들은 평화롭다기보다는 무료하다. 게으르게 지내도 불안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갖고 싶다. 

대동작은집에서 이렇듯 모순 가득한 숙제를 받아들었다. 이런 혼란스런 감정은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다. 여행하다 머물다가, 행복하다가 불안하다가, 바빴다가 한가했다가… 차라리 여행을 계속하면서 바쁘게 움직이면 괴로움은 사라질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더 무력해질지도 모르지만 서울집으로 간다. 일단은 그러고 싶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불안했던 시기에 가장 편하고 좋아하는 장소에 있어본 적도 있고,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장소에 있어본 적도 있고, 집에 있다가 견디지 못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간 적도 있는데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작년 겨울 언니집에서 운동만 하면서 살 때 좋긴 좋았는데, 지금 서울에 가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지켜보고 기다리려고. 다른 방법을 좀 찾아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