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나는 부산 중앙동 사십계단 옆 작은 가게에서 열심히 팥빙수와 토스트를 만들어 팔았다. 칠월부엌을 시작한 이야기부터 메뉴 소개, 이용법 등 당시 (2013년 7월) 에 열심히 글을 썼는데 – 손님이 별로 없어서 시간이 많았고, 키보드에 손만 대면 하고 싶은 말이 줄줄줄 나오던 충만한 시절이었다 – 8월이 되자마자 그 약발이 떨어졌는지 제대로 된 맺음글이 없어서 늘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지금, 1년이나 지나버렸지만 그때처럼 손만대면 뭐든지 쓰고 있는 요즘 ‘생산과 창작의 시기’에 후딱 후기를 써버리려고 어제 사진첩을 뒤적거리면서 사진을 골라 후다닥 ‘하고싶’송을 얹어서 칠월부엌 예고편(?)을 만들었다.
하루하루 지출과 수입을 정리해서 총매출과 순수익을 계산했는데, 역시나 당연히 그때의 자료는 온데간데 없다. 돈은 좀 벌었냐는 사람들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60만원 매출에 40만원 재료비/준비비 지출’이라고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월세+전기세+수도세+쓰레기처리비용 뭐 이런거 하고 나니까 거의 안남았었는데, 저 계산이면 20만원 남아어야 하잖아? 이상하다. 40만원 매출에 재료비 60이었나? 친구가 걱정없이 잘 놀아보라고 후원금으로 11만원이나 보내줘서 월세는 낼 수 있었는데. 모르겠다. 꼬박꼬박 기록하면 뭐해, 그 수첩이 달아나버렸는 걸.
그래도, 먹고 자는 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장사하려고 준비한 빵과 키친케이에 있던 식자재들로 끼니를 해결했다. 대연동 생각다방에서 보름 정도, 감만동 친구네 시아버님 댁에서 일주일 정도, 칠산동 생각다방에서 나머지 기간을 살았다.
정호 씨 시아버님 댁에서 살게 된 사연은 신기하고 재미있다. 생각다방이 대연동 폐점기념 ‘재능개발대잔치’를 한달동안 계속 하던 때였다. 방에 텐트를 치고 살았는데 욕실도 딱히 없고 늘 행사장인 그곳에서 살기가 버거워졌다. 얼마간이라도 주거용 공간에서 살아야 겠다고 살 곳을 찾기 시작했다. 친구의 소개로 달방으로 방을 빌려주는 게스트하우스를 알게 되어 30만원이라는 돈이 좀 비싸긴해도 들어가서 살기로 결정하고 이사를 해야지해야지 하면서 하루이틀 미루던 어느날, 생각다방에 놀러온 친구가 시아버님이 아프리카 가나로 출장을 가셔서 몇달 집이 비는데 그집에서 지내는 게 어떠냐는 제안. 아아니, 저야 고맙죠. 그렇게 해서 얼떨결에 친구의 시아버님이 잠깐 비우신 집에서 살았다. 그러다 생각다방이 칠산동으로 이사를 온 뒤에는 다시 여기로 합류, 조금씩 새집에 적응하면서 같이 살았다.
생각다방산책극장을 인연으로 알게 된 부산친구들이 간간히 가게를 찾았고, 동네 인쇄소나 사무실에서도 토스트나 팥빙수를 가~끔 사드시긴 했다. 그때 알았지, 아 이거 한달이상 하면 돈이 좀 남을 수도 있겠다. 한달은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고 끝나버리는 짧은 시간. 그래도 재미나게 놀았다.
당시에는 행복지수가 거의 최고조에 달하던 때여서, 지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싶은 가족모임도 주선했다. 서울에서 큰언니네 가족 4인(언니+형부+남조카 2), 고향에서 오빠네 가족(오빠+언니+남조카2)+서울에서 큰언니와 엄마, 나까지 총 10명이 부산에서 모였다. 여름휴가를 맞아 온 가족이 부산으로 놀러왔다. 엄마랑 큰언니는 하루 일찍 와서 칠산동 생각다방에서 하루 묵었고, 다음날 다른 가족들은 송도 핑크로더 게스트하우스를 통으로 빌려서 먹고 놀고 자고. 송도해수욕장 앞 횟집에서 별로 맛없는 회를 먹었고, 부평시장에 가서 부산어묵집 순례를 하면서 쇼핑을 하고, 시장 통닭 몇마리 사와서 야식을 먹었다. 밤에는 언니, 오빠와 달맞이 고개에 커피 마시러 갔다.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이런 온가족 모임을 했다는 게, 엄마에게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여드렸다는 게 기분 좋았다.
엄마는 이런 조그만 가게에서, 하루에 만원팔아서 뭘 어쩌려고 하느냐, 소꿉장난하는거냐, 이렇게 말하면서 걱정하셨지만 나는 소꿉장난처럼 재미있게 잘 지내니 걱정말라는 걸 현장에서 보여드릴 수 있어서 뭐랄까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칠산동 생각다방에서는 ‘아니 우리 막내 이런 데 고생하면서 다니는 거냐’고 말해서 살짝 버튼이 눌리긴 했지만 아주 많이 화내지는 않고 조금 언성을 높이면서, 아니 그렇게 말하면 여기서 사는 내 치구들은 뭐가 되냐, 다들 잘 지내고 나한테 잘해주고 나도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잘 지낸다. 내가 50만원 벌어서 방세 내고, 밥 사먹고, 노는 데 돈 다 쓰는 거나 10만원도 못벌지만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면서 살고 밥 얻어먹고 그러면서 돈 안 쓰는 거랑 뭐가 다르냐, 고 따졌던 거 같다. 지금도 그 생각에 크게 변함은 없다. (나를 재워주는 친구들도 방세는 내야 하니까 친구를 가려가면서 빌어먹어야겠다고 진화하기는 했다. 하긴 같이 어떻게든 해결하면 되기는 할거다. 생각다방산책극장의 월세마련프로젝트처럼)
2013년 여름 한 달, 부산 중앙동에서 칠월부엌을 하고 나서 좋은 단골 새친구를 얻었고, 부산을 더 사랑하게 됐고, 원래 알던 친구들과도 더 가까워졌다. 어디서 또 장사를 하게 되더라도 괜찮을 거 같다는 경험치도 생겼고, 그래도 장소는 이렇게 차가 많이 다니는 곳보다는 사람은 좀 없더라도 바깥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전 산호여인숙 친구들도 여기서 처음 만났다.
당시에는 매일매일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다. 칠월부엌 간판 옆에서 사진찍고 100원 할인을 받았던 친구들의 사진도 있다. 썩 잘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손님과 손님 소개팅도 한 번 주선했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보고 찾아온 손님도 여럿 있었다. 친구들이 거의 매번 주말마다 서울에서, 다른 지역에서 찾아왔다. 손에 현금이 남아야만 장사를 잘 한 게 아니라 이런 모든 만남들이 씨앗이 되어 나를 채워줬다. 고맙고 행복하고, 운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더란다.
후에 다른 친구는, 내가 이 경험이 인턴이나 실습 같은 거였다고, 장사하는 것에 대한 감을 잡았으니 앞으로 정말 잘 할거라고 말했지만 그런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장담할 수 있는 말은 매우 재미있었다는 것. 나중에라도 이런 식으로 자리가 나면 또 해보고 싶다. 산호여인숙 계단참에서 커피를 팔 수 있었던 자신감도 여기서 조금은 영향을 받았을 거다. 좋다, 좋다. 그렇게 그 해 7월은 지나갔다.
2013년 겨울부터 봄까지, 산호여인숙과 대동작은집을 기반으로 대전 곳곳에서 커피도 팔고, ‘무려’ 공연도 하고 재미있게 지내다가 (우울과 불안과 슬픔에 허우적대며 괴로워도 하다가) 지금 7월, 다시 조금씩 커피를 팔아볼까 하는 궁리를 하는 중이다. 찾아가는 보따리카페, 기다리는 보따리카페 같은 거.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생각만 해도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