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14 10월

[전주살이] 2014년 10월 7일 일기

마치 어제에 이은 일기인듯 7일을 기다렸다, 는 건 거짓말이지만 우연찮게 날짜를 맞추었으니 한번 써보도록 하자. 블로그에서도 트위터에서도 페이스북에서도 사라진 두어달 동안 나는 주욱 괴로워했다. 타임라인을 보면서 재미 없다고 툴툴댔고 방안에서 더운 여름을 나면서 이틀에 한 번 꼴로 빵사러 밖을 나가곤 했다.

무기력하고 괴로워도 딱히 다른 방도가 없는 듯해서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운 여름이 갔다. 추석이 지났고 가을이 오고 있었다.

블로그를 보고 재미있는 제안이 와서 김천으로 거처를 잠시 옮겼다가 일주일만에 상황 종료. 결과적으로는 썩 좋지 않은 결말이었지만 그래도 밍기적대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무거운 여름끝에 어떤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점에서는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산호에 가서 대전친구들을 만났고, 함창에 들러 이내 공연도 봤고, 부산과 경주에 가서 좋은 밤을 보냈다. 재미있는 집 구경, 사람 구경, 우연한 기회에 집짓는 현장 구경을 거쳐 넓은 마음으로 2주 전부터 나를 거두어준 전주 친구네서 지내는 중이다.

며칠 바쁜 일을 도와줄 때는 사람구실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나았지만 다시 꾸무룩 바람빠진 풍선처럼 비실대면서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종족대잔치 에도 못/안갔다. 그러다보니 다시 꺼억꺼억 숨막힐 듯 눈물이 흘렀다. 괴로워서 두려워서 무서워서 싫어져서. 고마운 마음들을 확인하면서 겨우겨우 버티는 것만 같다.

서울에서처럼 종일 잠만 자는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별 생각없이 친구를 따라 출근하고 멍하게 있다 퇴근하기도 했다.
친구의 일정대로 차를 타고 시골마을로, 시장으로, 시내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친구가 차려주는 밥을, 데려가주는 식당을, 술집을 그저 따라다니기도 했다.
혼자 있을 땐 좀 울었던 것도 같다.

그러다 엊그제였나 고마운 마음들이 날 버리고 떠나버리기 전에 인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지를 쓰고 꽃을 그렸다. 책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다가, 소리내어 시를 읽어보았다.
http://t.co/yF1vFHJM2V

매일매일 무언가를 소리내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기든 편지든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런채로 또 며칠이 그냥 흘렀는데 오늘 아주아주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좀 걸었더니 다른 마음으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나마 천천히 다시 일기를 쓸 힘이 생겼다.

편지든 그림이든 일기든, 세쪽책이든, 시낭송이든, 우쿨렐레 연주든
할 수 있는 만큼 천천히 시작해봐야겠다.

만약을 대비해 꼭 쥐고 있었던 적금을 여행경비와 생활비로 풀었다. 오늘은 기념으로 완전 맛있는 걸 먹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