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14 12월

2014 연말정산

2014년 연말정산

2014년 12월 31일 수요일 오후 2시 56분, 인도네시아 발리섬 동부 바닷가 작은 마을 아메드.
다섯시에 일어나서 동네 뒷산에 해뜨는 거 보러 세 시간 정도 걸었다. 해는 구름 속에 숨어서 보일듯 말듯 보일듯 말듯하다가 사위가 다 밝아오도록 나타나지 않았지만 산꼭대기 아니 언덕 위에 사는 세마리 소가족도 보고, 그 험한 땅에서 옥수수 농사 짓는 산골마을도 지났다. 신기하고 고맙고 재미있고 행복한 순간들. 현지 친구가 아니었으면 절대 가보지 못했을 곳.

며칠 고민하다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했다. 여름으로 오기 위해 염색했으니까 다시 겨울로 돌아갈 땐 검은 머리로 간다. 어제는 우쿨레레 거치대를 찾아와서 순간순간히 행복하더니 오늘은 머리가 잘 나와서 계속 행복해햐고 있다.

2014년 10대 뉴스라도 꼽아보려고 지난 블로그를 뒤져봤는데 6월까지 매달 어떤 책을 읽었는지, 뭐하고 살았는지, 그림은 얼마나 그리고 노래는 몇곡이나 만들었는지,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갔는지 정리했던데 잔인한 4월을 지나 여름이 다 지날때까지 괴로워하느라 7월 이후로는 따로 정리하진 않았더라. 괴롭고 괴로웠던 하루하루를 일기로 적어놓으려고 노력했던거 같은데 매번 괴롭다는 말만 하게 되어서 그것도 한달 정도 하다 말았다. 그리고 11월 여행을 가네마네, 사네마네 하면서 가을을 보내고 어영부영 발리에 오게됐다. 그 사이 김천 이상한 얘네 집에도 가고 친구들이랑 고양이들 보고 기운내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기도 했다.

년초에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식이도 엄청 잘 지켜서 하루하루가 이렇게 행복할 수 없었는데, 괴로운 시간들이 찾아오니까 또 세상없이 죽을것처럼 괴로운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한 해를 기준으로 주욱 펼쳐놓고 보면 4월까지 매우매우 행복했고 9월까지 괴로웠는데 중간중간 나름 기쁘기도 했고 작은 사건들도 있었으니까 죽을거서럼 괴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종족대잔치도 못가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을 얻기도 했고 우을증 주사까지 맞았지만 그게 다 언제 일인가 기억도 안나네. 게다가 11월과 12월은 발리에서 그 간의 괴로움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잘 지낸다. 언제 괴로웠냐 싶게.. 사람은 참 간사하기도 하지 괴로울 땐 언제 행복해나 싶고, 행복할 땐 언제 괴로웠나 싶고..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기억할 만한 게 뭔가 손꼽아 본다.
첫째는 건강.
몸과 마음의 건강이 동시에 중요하다. 사실 몸을 지키는 게 먼저라는 생각도 든다. 좋은 음식을 먹고 적당히 자기에게 맞는 속도와 강도로 몸을 움직여서 아끼고 보살펴서 잘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언제 큰코 다칠지 몰라.

둘째는 함께.
혼자인 게 좋아서 도망도 치고 숨어도 보지만 결국 그러면서도 친구들을 찾아 기웃거릴때야 비로소 잘 살고 있구나 확인하게 된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그리워하고 마음을 확인하면서. 올해도 고마운 친구들, 내년에도 잘 사랑하자.

헤아려보니 대전엔 수도 없이 많이 갔다. 작년에야 비로소 산호여인숙을 알게 되었지만 대흥동도 대동도 짜투리시장도 대동작은집도 사랑하게 되었지. 힘을 주는 대전피플들도 많이 만났고 말이지. 커피 꽤나 팔아서 살림에 보탰는데 내년엔 또 어떻게 될지.. 제주, 부산, 전주/완주, 경주도 부지런히 두 세번씩 다녀갔더라. 함창 괴산 상주 이런 곳들도 새롭게 만나게 되었는데 나는 늘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니까 천천히 사랑해야지.

셋째는 돈.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고 싶지만, 그나마 그렇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생활에 돈이 든다. 돈을 벌고 일을 하는 것의 균형을 어떻게 지켜야할지 올해도 실험하고 배우고 도전하고 노력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임노동자로 살 수는 없고, 내 몸의 선을 넘는 과도한 노동도 할 수 없다. 필요한 돈을 적당히 일해서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욕심내서 몸을 망가뜨리는 일도, 나도 모르게 나를 몰아넣는 일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물론 내년에도 좋은 친구들과 가족들과 모르는 사람들에게 빌어먹고 살아야지. 내가 나눌 수 있는 마음과 시간과 노력을 나누면서.

넷째는 계속.
계속 써야 한다. 계속 사랑해야 한다. 쉴 수 밖에 없어도 쓰고 노래하고 그리워하고 또 쓰리라.
일기도 쓰고 가계부도 쓰고 낙서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느리게 가더라도 한참을 쉬더라도 계속 그렇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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