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5/01/17

[세쪽책] 편지

3_009

009호 [편지]
세밑달집 2015년 1월 17일 발행 :
http://www.facebook.com/3pagesbook :
글_신바닥 : 책값 500원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질어느 날의 나에게

아침에 엄마가 부산으로 부쳐준 밑반찬과 어제 끓인 미역국으로 아침밥을 먹으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도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행복하고 감사한 요즘, 동시에 우울할 땐 얼마나 더 괴롭고 죽고 싶을까 걱정되기도 했거든. 작년에도 보면 연초에는 연말을 성실하게 보낸 데 대한 기쁨과 새로운 해에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리며 참 즐거웠던 거 같은데 봄을 보내고 여름과 가을 내내 ‘괴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 우울한 마음은 여태까지 자주 찾아왔지만 지난번 건 좀 강력했어. 생리도 서너달이나 하지 않았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하지만 이게 일반적인 무력함인지 치료가 필요한 우울인지 스스로 판단하기란 너무 어렵잖아.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좋아하는 의사선생님을 찾아가 여러차례 상담하고 검사도 하면서 실제로 자궁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호르몬 이상이 먼저인지, 심리적인 우울함이 먼저인지, 만병의 근원이라는 비만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아주 나쁜쪽으로, 점점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고 있었지. 약을 먹기 시작했고, 우울증 주사도 맞았어. 그 사이에도 여전히 ‘괴로워서’ 행복할 때는 전혀 하지 않을 행동도 서슴치 않았어. 예를 들면 면접을 본다든지.. 하는.

다행히 행복할 때 발리 항공권을 미리 사두어서 11월엔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여행을 떠났지. 가기 바로 직전까지도 가서 뭐하나, 돈만 쓰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라면 가자, 어짜피 가기로 한 거. 아마 정해놓은 걸 취소하고 뭔가 변경한다는 거 자체가 에너지가 드는 것 같아 싫었는지도 몰라. 결과적으론 매우 정말 잘 다녀온 여행이었지. 따뜻했고, 재미있었고, 평화로웠고, 사랑받았고, 영감을 얻어왔으니까. 그래, 어쩌면 미리 비행기표를 사두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는지도 몰라. 나는 짠순이라 표를 버리고 여행을 가지 않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거든.

2011년 8월, ‘어쨌든 직장을 다니지 않고 버티는 데 까지 버텨보자. 나는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인지도 몰라’ 라고 결심한 이후 삼년 반이 흘렀고, 괴롭고 우울해 회사를 다시 들어갔던 2012년의 선택과 괴롭고 슬퍼서 사는 것과 죽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2014년을 떠올려보니 분명 1~2년 안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만 같아서, 이 편지는 그 날을 위해 쓰는 거야.

바닥,
네가 사는 방식, 가고 있는 ‘모르는 길’에 함께 있는 사람이 있어. 행복한 때를 떠올리며 기운을 내라고 말해도 전혀 들리지 않겠지만 너에게 하루하루가 축복처럼 고맙고 감동스러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많았어. 진심으로 꾹꾹 눌러 담은 이 빚들을 어떻게 갚으면서 평생살까, 나는 정말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너를 부러워하거나, 신기해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했었잖아. 이렇게 사는 게 그대들 사는 것과 아주 다르지는 않다고. 사소한 일에 기쁘고 화나고 아주 우울해서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날도 많고 로또맞은 것처럼 운 좋은 날도 있다고. 그저 나는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살아가는 ‘알려진 길’이 아니라, 알아서 적당히 필요한 만큼 돈을 벌고 얻어쓰고 빌려쓰고 오래쓰는 저소비에 내 생활을 적응시키고, 먼 미래를 위해 걱정하며 오늘을 담보로 괴로움을 참지 않고 그저 지금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모르는 길’을 갈 뿐이라고.

그 길에서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잖아. 마음을 나눠주고, 지지하고, (심지어 밥과 집과 돈도 주고) 몰랐지만 바로 근처에서 걷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각자의 방법을 나누면서 함께 길을 찾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사람들, 그래서 모두들 꼭같이 불안하지만 손을 붙들고 누군가 흔들릴 때마다 기다려주지. 그 친구들을 생각해, 움직힐 힘이 남아 있다면 그 친구들을 찾아가. 그럴 힘도 없을 땐 기꺼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아. 너무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와줘요. 내 손을 잡고 꼬옥 안아줘요. 내 말을 들어줘요. 내 눈물을 닦아줘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곧잘 편지를 쓰는데, 이렇게 내 마음을 바라보고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못해봤네. 참 좋다.

바닥, 넌 잘 살고 있어. 너무 많이 흔들리고 휘청거려서 멀미가 나겠지만 모르는 길을 간다는 건 그런거 같아. 휘었는지 패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눈을 감고 달리는 것처럼 무섭고 다치기 쉽지. 실제로 많이 다칠테고. 어쩌면 무서워서 먼저 눈을 감아버렸는지도 몰라. 피할 수 있는 작은 돌에 넘어지는 일도 많았을 거야. 하지만 그래도 잘 왔네. 지금도 잘 가고 있고. 근데, 앞으로는 점점 더 어려울 거야. 숨도 찰테고.
늘 말하지만 운동만이 살 길. 좋은 음식을 잘 찾아 먹고, 몸을 더욱더 아껴. 괴로운 마음은 친구들의 사랑으로 극복하렴. 그리고 지금 저축해두는 이 기운도 조금 보탤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편지는,
분명 괴로워서 죽고 싶어질 어느 날의 나에게 썼지만,
어쩌면 지금 괴로운 내 친구들 중 한 명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