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5/11/22

[세쪽책] 산호여인숙

010_ 산호여인숙

010호 [산호여인숙]
산호여인숙 2015년 11월 22일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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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신바닥 : 책값 500원

산호여인숙에 왔다. 지난 5년을 정리하고 다음 단계를 모색하는 중인데, 일단 어제는 소극장 공연이 있었다. 공연이 좋았다, 많이 울었다 하니 주인장인 부영이 물었다. 어떤 점이 좋았냐고. 어떤 점이라, 어떤 부분이라…환영, 산호여인숙. 빨갛고 파란, 촌스럽지만 산호에 있어서 더없이 아름다운, 익숙한 간판에 불이 들어올 때부터 울컥했다. 부영이 이불을 털고 베갯잇을 갈고 바닥을 닦는 걸 지켜보는 건 지루했지만 그것이 산호의 본질임을 익히 들어 안다. 공간을 운영하는 일, 여행자를 받아들여 잠을 재우는 일의 기본은 청소라고 했다.

부산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청소일을 하며 지낼 때 나는 나를 여행자라고 생각했다. 대충 청소를 마치려고 하는 동료들과 달리 나는 이 방이 언젠가 내가 잠들어야 할 방이었으므로 내 방을 청소하듯 구석구석 닦았다. 외국에 여행다니면서 일하며 머물며 오래 여행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엔 내가 그렇게 부산에서 그렇게 지내는 거였다.

산호여인숙에 산호주민들이 산호를 꾸리는 일을 도우며 함께 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당연히 그 일은 청소일 거라고 생각했다. 집안일처럼 티도 안나지만 매일 반복해야하는 일, 방에 사람을 들이려면 기본이 되는 일이 청소니까. 그런데 주인장인 부영은 청소는 자기가 직접 해야한다고 했다. 산호주민들에게는 게스트를 받고 안내하는 리셉션 역할을 주로 부탁했다. 가장 하기 싫은 일이자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함께 사는 친구들을 배려하는 어른의 마음이었는지, 당연한 책임감이거나 정말 주인장으로서 본질을 놓치고 싶지 않는 자존심이나 욕심이었는지는 모른다. 만약 청소 같이 어려운 일을 사는 사람이 해야했다면 돈없는 친구들에게 방을 담보로 노동력을 취하는 악덕업주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게스트하우스는 이런식으로 무급 스탭을 둔다.

산호는 게스트하우스지만 숙박업소의 경제적 논리만으로 운영되는 거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기엔 주인들은 너무 불친절했고 겨울은 추웠으며 천원짜리 성냥을 팔 때도 카드 결제를 받아주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너무 많다. 여행을 좋아해서, 사람을 좋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등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가진 다른 게스트하우스와는 달랐다. 내가 느끼기에 산호는 대흥동의 어른들과 친구들이 모여서 노는 자리. 산호의 두 주인장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공간.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어졌으니 일을 많이 하는 사람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게 손님을 받는 정도 같았다. 그렇다고 게스트하우스로서의 운영이 방만했다는 건 아니다. 예약이 꼬이지 않게 방을 배정하고, 깨끗한 방을 준비하고, 라면과 식빵으로 조식을 마련하는 기본에 충실. 산호여인숙의 본질이 청소라는 건, 어떤 의지처럼 느껴진다.

산호의, 산호에 의한, 산호를 위한 공연 ‘여인숙에 온 그대 무엇을 하려는가’는 산호에서 여러 달 살았던 내게는 감동적인 무대였다. 산호대강당의 익숙한 빨간 의자, 부영의 무덤덤한 말투, 은덕의 아코디언과 나츠의 기타 연주,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는 우순. 산호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내가 아끼는 것들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어엿한 무대에 올라있으니 공연의 내용이 어떠하든 나는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아니다 그 자체가 내용의 전부다. 감동받으라도 넣어준 코너, 5년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사진들과 함께 자라고 관계를 만들어온 동네사람들의 합창보다 은덕과 함께 여기저기 공연을 다니던 빨간 의자가 무대에 등장하던 그 순간 더 울컥했다.

산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적극적으로 모인 자리여서 무대 위에 무얼 올려도 환영받았겠지만 여행자가 등장하는 연극과 무용 공연, 합창과 연주까지 내용적으로도 충분히 충실한, 산호여인숙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봐도 만족스러운 무대였다.
실제로 산호여인숙엔 코레일본사에 연수받으러 오는 신입사원들이 일주일 단위로 묶기도 하고, 혼자 오는 여자 배낭여행객이 많고,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친해지기도 하고 그런다.
산호에 오는 여행자의 이야기, 사실은 그냥 사람사는 모습이 연극으로 꾸며지니 또 그게 재미다. 그리고 몸짓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여행하는 여자, 너무 여행하는 혹은 여행보다 더 즐거운 일상을 사는 여자, 그냥 사는 여자, 아름다운 춤을 추는 여자. 빛나는 무대였다.

내용을 채우고 무대에 오른 모든 과정이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그걸 보고 싶은 사람이 모였다. 일을 만드는 과정에서야 어려움이 왜 없었겠냐만은 산호여서 가능한, 산호이기에 빛나는, 더 이상 어떻게 찬사를 보낼 수 없는 어제였다. 그 자리에 초대해주어 고마울 뿐. 내게 나츠 같은 재능이 있었다면 나도 헌정곡을 만들었을텐데, 내가 대전에 살았다면 나도 무대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을 텐데 같은 마음이 생겼지만 그 부러움과 질투는 금새 사라진다. 내게는 내게 맞는 거리와 방법이 있으니 그 속도로 산호를 살기로 한다. 내 길을 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