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6/06/22

[세쪽책] 완주,귀촌,청년

012_완주,귀촌,청년

012호 [완주,귀촌,청년]
산책자의 2016년 6월 22일 발행 :
http://www.facebook.com/3pagesbook :
글_신바닥 : 책값 500원
청년 귀촌의 조건 : 주거, 생계수단, 개인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요소들

귀농이나 귀촌을 바라는 친구들을 여럿 만났다. 귀농학교나 귀촌캠프를 찾아다니며 정보를 얻고 아니면 지인을 통해서라도 살 곳을 찾아다니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많이 한 사람은 쉽게 이주를 결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착자금이 여유로운 형편들이 아니니 내려가서 뭘 해먹고 살지, 어디서 어떻게 살지가 가장 큰 고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제 내려와서 살고 있는 친구들이나 나의 경우는 그런 고민을 깊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주가 쉬웠다. 우연히 일자리를 얻었거나, 누군가의 권유로 몸과 마음이 움직였거나, 거창하게 귀농이니 귀촌이니 생각지도 않고 한 번 여기서 살아볼까 하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나는 막연히 서울을 떠나 살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에 여기서 일자리를 구했다. 친구따라 몇 번 완주라는 곳에 와본 적이 있었고 서울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아는 얼굴이 좀 생겼으니 한번 살아볼만하다고 여겼다. 거주지와 일터, 일상의 공간을 옮긴다는 게 생활에 얼마나 큰 의미인지 생각해보지 않고 급하게 내려왔다. 살 집도 구해두지 않은 상태였다. 한 달 정도 전주 친구네 집에 신세를 지면서 직장에 다니다 읍내 쪽에 월세집을 구했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 25만원이다. 자가용이 없으니 자전거로 출퇴근이 가능한지도 고려했다.

지역으로 내려와 살고 싶다는 친구들은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아서 내려오기 어렵다고 한다. 사람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 몇 달 안에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으니 내려오라고 말하지만 나 역시 취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주 결심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자리가 정해지고 나서 집을 구하는 건 어렵다. 정해진 기간과 예산 안에서 급하게 서두르기 마련인데 지역에 연고나 정보 없이 살만한 집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직원숙소를 마련해놓고 구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여유가 있다면 안정적인 거처에서 지역생활에 적응한 뒤에 자기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주거와 생계수단을 확보하는 게 청년귀촌의 우선 조건이지만 개별적으로 고려할 생존의 조건도 있을 것이다. 외로움을 많이 탄다면 또래 친구나 마음 맞는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지역이어야 할 테고, 누군가에게는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도서관, 극장, 운동시설이 더 중요하다. 내가 도시를 벗어나 지역을 찾게 된 이유는 빠른 생활속도와 복잡하고 답답한 도시환경, 성과 중심의 일상, 삶의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도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도 소비를 해야만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골생활이 정말이지 너무 행복했다. 새소리를 들으면서 아침 일찍 잠에서 깨고 강둑길과 마을길을 유유히 지나 출근해 퇴근하면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내 경우의 생존 조건은 가끔 어울릴 친구 몇 명과 이런 자연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귀촌인 친구들을 만나도 별을 볼 수 있는 밤하늘, 산과 들의 풍경, 밭에서 일을 하는 경험 등이 이곳에서의 생활을 행복하게 해주는 요인이라고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혹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마냥 좋던 시절은 6개월 정도면 끝나는 것 같다. 그 이후로 급격하게 외롭고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근처에 편히 만날 친구들이 없고 자가용이 없으니 어디 가는 것도 큰 일이었다. 시골에서 살려면 차가 필요하다는 말이 실감났다. 필요한 것들은 살면서 바뀌기도 하고 몰랐다가 새롭게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친구와 자동차가 되었다.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참여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려면 시간도 더 필요했다.

귀촌 청년의 이상과 일상 : 시골생활의 로망과 일상생활의 현실은 다르다

이제 완주군민이 된 지 10개월째다. 시골에 살게 된다면 논농사는 못 지어도 텃밭에서 먹을 채소는 기르고 싶었는데, 마당 있는 집에서 옆집 어르신들에게 농사를 배워가며 어울려 살고 싶었는데,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일하고 싶었는데, 생활에 필요한 돈만 벌면서 적당히 일하고 적게 쓰며 단순하게 살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내 삶의 중심을 잡고 느리게 살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하면서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싶었는데…….

해본 것도 있고, 엄두내지도 못한 것도 있다. 하면서 만족한 것도 있고 하다가 그만 둔 것도 있다. 나열한 것들은 비단 시골살이에만 해당되는 아닐 것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삶이라면 완주라서 당연히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일상은 낭만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으므로.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생활의 안정도 되지 않았지만 직장인으로서의 삶에는 어느 정도 적응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도시에서의 직장인과 시골에서의 직장인은 다름없다는 것을. 월세 세입자로서의 삶도, 자급농부로서의 삶도, 프리랜서로서의 삶, 외로운 개인으로서의 삶도 도시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예상된다. 상황에 맞는 단단한 생활의 힘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할 뿐이다. 여기, 완주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아서.

귀촌 청년의 상상 : 함께 만들고 싶은 미래를 그린다

각자가 자기 삶을 충실히 꾸려가는 것만큼 함께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서적 기반이 되는 또래집단이나 공동체와의 교류는 삶의 안정감을 준다. 전통적인 부부와 자녀 형태의 가족만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공동주거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 은평구와 두꺼비하우징이 마련한 ‘공가共家’는 비어있던 집을 함께사는 집으로 탈바꿈한 사회주택사업이다. 인천 검암동 ‘우동사’, 부천 ‘모두들’, 서울 해방촌 ‘빈집’, 서울 성미산 ‘소행주’, 쉐어하우스 ‘우주’ 민달팽이유니온 ‘달팽이집’ 등 공동주거의 사례들이 많다. 높아만 가는 주거비용을 줄이기 위해 함께 살기를 결정했든 도시 안에서의 공동체 회복을 위한 운동차원이든 가족 아닌 이들과 함께살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계속해서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생겼다.

시골살이를 꿈꾸는 청년들이 함께 살아갈 공유사회주택이 있다면 귀촌의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원하는 집을 구할 경제적 여유도 없고 정보력도 부족한 청년들에게 주거, 생계수단, 개인별 생존 요소 중 두 가지가 쉽게 해결된다. 공동생활을 통해 단단한 생활력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지역을 알아가며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거나 새로운 일을 도모해볼 수 있다. 가족단위의 귀농인들과 단순하게 비교될 수 없는 청년들은 집을 알아보는 문제나 귀농귀촌 지원을 받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 귀농인의 집에서 농사를 배우고 집을 알아보며 귀농인들이 연착륙을 준비하는 것처럼 청년들에게도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삼삼오오게스트하우스가 귀농귀촌청년들의 거점역할을 하고 있지만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주거까지 가능한 거점이 생긴다면 청년들의 정착기회도 더 늘어날 것이라 믿는다. 혼자서는 집을 구하기도, 마을에서 살아가기도, 외로움을 견디기도 어렵겠지만 함께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일이 생긴다고 믿는다. 함께 살면서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한 농사나 시골살이에 필요한 기술들을 배우기도 쉬울 것이다. 씨앗문화예술협동조합에서 매년 진행하는 귀농귀촌청년캠프처럼 새내기귀농귀촌 청년들을 위한 완주살이학교 프로그램을 마련해도 좋겠다. 마을에서 솜씨좋은 기술자를 모셔다 시골살이에 필요한 ‘생초보생활기술워크숍’을 열어도 좋겠다. 서울시에서 발간하는 <서울살이-청년편>처럼 <완주살이-청년편>을 펴낼 수도 있다.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하는 일을 조사하고 목록화해서 ‘청년은행’을 만들고 재능을 저축하고 대출하고 기부할 수도 있고, 그 재능으로 마을에서 ‘마을청년학예발표회’를 할 수도 있다. 마음으로만 완주살이를 생각하는 청년들이 더 쉽게 엄두낼 수 있도록 지역에 살고 있는 청년들의 사례를 찾아내고 인터뷰하고, 그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연간 완주청년 백서’를 기획하고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향수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도시를 그리워하는 개인주의자 모임도 꾸리고 숙녀회도 만들고, 스스로 문화예술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아마추어예술가연합을 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마을배달부, 할매마니또 등 재미있는 상상들이 펼쳐진다.

나는 일기를 쓰면서 살아갈 힘을 얻고, 편지를 쓰면서 친구들과 더 친해지는 사람이라 일기 같은 이 글을 쓰면서 완주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더 강하게 먹었고 오늘 만난 친구들과 새로운 일들을 꾸리는 상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