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3호 [내 여자들]
산책자의 2016년 10월 6일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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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신바닥 : 책값 500원
요사이 친구들이 집에 많이 다녀갔다. 일자리를 구해 완주에 혼자 자리 잡고 산 지 1년 정도, 돌아다니면서 살 때 나를 재워주고 먹여주던 여러 친구들이 ‘내 집’에 놀러오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사는 건 생활의 밀도가 낮아지고 속도도 느려진다는 의미에서 매우 만족스럽다. 가끔 도시에 가면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에, 바쁘게 걷고 달리는 사람들과 자동차 때문에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 되었으니까. 반면 여기에선 마음을 나눌 친구를 찾거나 다채로운 관계를 맺기 어렵다. 평화롭고 조용한 생활에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6개월이 지나자 심심하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한창 외로워하던 참이었다. 4년 만에 하는 직장생활이 괴로움을 더한 건 당연하다.
스무 살 때 만난 오래된 친구들도 왔다. 그들에게는 여름휴가인 셈이니 동네 이곳저곳을 많이 소개시켜주고 함께 경치좋은 곳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자동차가 없고, 시골에서는 대중교통으로 관광지는 물론 밥 한 끼 사먹을 식당에조차 갈 수 없다. 같은 이유로 퇴근 후 어딜 갈 엄두를 못 내는 내 생활이 더욱 무료했었다. 직장과 집만 자전거로 오가던 생활에 물려가던 찰나 차를 사기로 결심했지만 적당한 중고차 매물을 검색하고 예산에 맞는 차를 사는 일은 너무나 어렵고 귀찮은 일이어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렌트카라도 빌려야하나 고민하던 차, 본가에서 엄마차를 빌려오기로 했다. 어쩌면 계속 이 차를 타게 될 수도 있다. 돈을 벌면서도 다른 자식들처럼 부모님께 다달이 용돈을 보낸다거나 집안 큰 행사에 비용을 분담하지 못했다. 막내라서 눙치기도 했고 워낙 적게 벌고 그마저도 그만두기 일쑤여서 백수인 날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나는 집에 줄 돈도 없고 받지도 않는 단독자로 살겠노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될 리가 있나. 친구들의 도움으로 수년간 떠돌이로 신세지며 얻어먹고 살았던 것처럼 가족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를 챙긴다. 배고프고 외롭던 시간은 나보다 더 잘 버는 언니들이 사주는 귀한 음식으로 중간중간 돌파구를 찾았고 가장 필요한 자동차는 결국 엄마에게서 왔다. 틈만 나면 독립하겠다는 철없는 동생을 그대로 봐주고 기다리고 갈 곳 없어 돌아올 때마다 받아준 언니들이 있어서 지금껏 마음대로 살 수 있었다. 회사가 지겨워서 그만둬도 작은언니집에서 언니가 사오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지냈고 목돈이 필요한 순간에는 일거리를 부탁하고 값을 쳐주는 큰언니 덕분에 오매불망하던 맥북도 손에 넣었다. 말 그대로 나를 먹여살려준 언니들이다. 그리고 이번엔 엄마 차례, 필요한 순간에 엄마 도움을 받는다.
엄마에게 올 때부터 오래되었고 엄마가 논으로 들로 트럭처럼 막 타던 차라 상태는 귀여운 수준. 문을 열 때랑 핸들을 돌릴 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건 기본이고 창문이 제대로 안 올라가고 차 문이 잘 안 잠기곤 했지만 급한대로 삼십여만 원을 들여 정비를 해왔으니 주행 자체가 위험하지는 않다고 한다. 엄마는 자식에게 고물차를 건네는 게 내내 마음에 걸렸는지 내부 청소라도 하겠다며 전전긍긍하시다가 조만간 생기는 돈으로 내게 차를 사주고 싶어하신다. 아니 나는, 내가 쓸 차를 결국 내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엄마차를 뺐어오는 게 마음에 걸려서 뒷맛이 쓴데 엄마는 그 와중에 내 걱정을 하고 당신 탓을 한다. 내가 아는 가장 어리석은 내 여자. 그래도 녀석 덕분에 친구들을 완주의 핫플레이스 곳곳에 데려갔다. 동네 사람들만 알고 찾아간다는 소향리 계곡에 물놀이도 다녀왔고, 송광사 앞마당에 핀 연꽃도 보고, 상관 편백나무 숲길도 한 참 걸었다. 차가 없어서 나도 가기 어려웠던 곳들이다.
내 농담을 못알아들을까봐 지루한 설명을 덧붙일 필요 없는 오래된 친구와의 수다는 편안하다. 내 하소연을 재단하려 들지 않고 공감하고 묵묵히 들어준다. 의견이 오가면서 대화는 빛이 난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어디까지 이해해줄 수 있을까 하는 조심과 검열 없는 시간이 얼마만이던가. 고맙고 감격스럽다. 끝도 없이 계속될 것 같던 외롭고 괴로운 시간들이 끝나간다. 내 여자친구들 덕분에.
맘껏 속 얘기를 꺼낼 수 없거나, 뱉어놓고 후회했던 껄끄럽던 시간들이 스친다. 지역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는 귀찮고 어렵다. 모범 답안 같은 적당한 방법이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무턱대고 솔직하거나 사회적인 가면을 쓰면서 살던 도시의 20대 생활과 다르다. 낯선 여행지에서야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연출하며 다른 여행자를 만나거나 그 누구에게도 영향을 주거나 받지 않고 철저하게 혼자로 지내다 돌아온다. 하지만 여기는 내가 앞으로 살 곳이다. 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적절한 인간 관계도 만들어야 한다.
그나마 아는 여자친구들이 있어서 연고도 없는 곳에서 살아볼만하다고, 아저씨들로 가득한 일터지만 다닐 수 있겠다고 마음먹었다. 생활 배경과 가치관도 전혀 다른 남성 직장동료, 만나본 적 별로 없는 지역의 어른들, 아이와 함께 혹은 은퇴한 파트너와 함께 귀농생활을 시작한 가족들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30대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었다. 완주에서 만난 여자친구들, 이름하여 완주숙녀회.
돌아다니면서 살 때 만난 다른 지역 친구들도 여자가 많다. 여학교를 나와서 주변에 워낙 남자가 없는 시간이 오래여서 남자인 친구를 사귀는 법을 모르거나 친구할만 한 괜찮은 남자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거나 정말로 내 팔자엔 반경 100미터 이내에 남자가 들어오지 못하는 결계 따위가 쳐있는 지도 모르겠다. 간혹 말귀도 잘 알아듣고 잘못을 인정하며 ‘대화’를 할만한 괜찮은 남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도 동네 언니들하고는 깔깔거리며 친구가 되기 쉬운 반면 남자들은 어떻게 사건을 만들어볼까 하는 긴장감이 느껴져서 철벽을 치게 된다. 그렇지만 남자는 원래 바보, 안 놀테다라는 건 아니고요. 연애도 하면 좋고 섹스도 좋아합.. 물론 좋아하는 남자친구들도 여럿 있다. 대화가 즐겁고 도움과 마음을 주고 받았던 사람들.
어쨌거나 주변엔 좋은 사람이 많고 내 여자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는 말씀. 그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 바닥 : 전 백수, 현 직장인. 귀촌새내기, 자급지향 독립생활자. 좋은 때와 괴로운 때가 들쑥날쑥, 다행히 지금은 호시절. 말하기 선수. 쓸 사람.
* 이 글은 지글스 https://www.facebook.com/zigls 2016 가을호에 편집자의 손길을 거쳐 더 좋은 글이 되어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