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7/09/10

20170910

큰언니집이 작은언니집보다 넓어서 덜 답답하지만 가족 수도 많고 그 사람들이 다들 보통은 아니라서 하루만 있어도 진이 빠진다. 엄마랑 작은 방에서 자다가 아침 일찍 깨서 만화책을 봤다. 큰언니집에 오면 역시 만화책을 실컷 볼 수 있어서 좋다.

중쇄를 찍자 7권, 아우의 남편 3권, 심야식당 18권 시반견 곤 이야기 1~2권, 파도여 들어다오 3권, 카츠카레의 날 1권, 바닷마을 다이어리 8권을 봤다. 역시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최고로 슬프고 웃기고 재미있고 감동적이지만 중쇄를 찍자나 카츠카레의 날도 좋았다. 파도여 들어다오는 1권 보고 너무너무 재밌어서 사랑에 빠져버린 작품이었는데 2권을 건너뛰고 오랜만에 3권을 보니 좀 어리둥절하긴 했다. 페미니스트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예민하게 알아차리려고 노력하다보니 심야식당은 이제 걸리는 것이 많아서 마음 편히는 못보겠다. 아우의 남편 같은 소수자 이야기가 훨씬 좋다.

어제가 엄마 생신이기도 하고, 내가 오랜만에 서울에 왔으니 언니들이랑 다 같이 외식이라도 하는 게 암묵적인 일정이었는데 내가 오후 3시차 타고 내려가겠다고 선언하고, 늦잠자느라 점심때 못 나가니까 어영부영 암묵적으로 취소되었다. 엄마랑 나는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작은언니는 아침에 김밥 사와서 알아서 라면 끓여서 먹고 형부나 조카들은 자기 일정대로 움직이니 엄마랑 딸 셋, 큰언니네 둘째 아들 정도 같이 나갈려면 나가는데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나도 은근슬쩍 그냥 누워서 만화나 봤다. 옥수수도 먹고 과일도 먹고 뒹굴뒹굴.

언니들이 저녁 먹고 늦게 가라고 말했는데 그럼 또 너무 복잡해지니까 전주가서 터미널에서 정류장까지 한참을 걸어서 또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우리동네 읍내로 와서 거기서 또 주차해 놓은 내 차를 타고 갈 생각을 하니 너무 귀찮으니까. 3시 버스는 읍내까지 바로 간다. 나중에 또 서울오면 그때 맛있는 거 먹으면 되니까. 그리고 몇달전부터 계속 먹고 싶다고 노래부르던 오꼬노미야끼는 금요일에 먹었으니 그다지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터미널에서 감자튀김 하나 사 먹고 버스 내려서는 마트에 들러서 떡볶이떡이랑 사과, 대추, 오징어, 과자를 샀다. 버스에서는 침 흘리며 잘 잤네. 강남터미널에서 우리 읍내까지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친구들도 만나서 잘 놀고 가족들이랑 북적북적하게 지내다가 집에 혼자 들어오니까 조금 쓸쓸하긴 했는데 그래도 또 이 고요가 좋기도 하다. 가족들 있을 때는 늘 텔레비전 틀어놔서 시끄럽고 나는 그게 싫은데 나만 좋자고 끄자고 하기는 그래서 다른 방에가서 누워있고는 한다. 그래도 오늘 낮에 다들 낮잠 자면서 배경으로 틀어놓은 텔레비전을 내가 싫어하니까 작은언니가 꺼줬다.

사실 나는 오늘밤 저자후기를 써야한다. 이달에 나올 책에 들어갈 마지막 원고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책을 만들면서 감사인사 드리고 싶은 분들 이름을 넣을 수 있는 분량제한없는 공간. 그런데 쓰기가 너무너무 싫어서 커피만 두잔 째 들이키고 트위터나 보면서 딴청 부리고 있다. 어제 친구들이랑 얘기한 국외여행인솔자 자격증 취득 및 프리랜서 활동에 대해서 검색하면서.

이제 먹을 것 다 먹고, 일기도 썼으니 정말 원고를 써야한다. 하아.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말이 왜 없겠어. 정갈한 마음으로 앉아 원고를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