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이사짐센터에 전화해서 15일 일정을 확정했다. 계약금을 따로 보내지는 않아도 된단다. 집에 먹을 게 딱히 없는데 배가 고파서 밥을 하고 냉장고를 뒤져서 김과 굴소스를 넣고 비벼먹었다. 뭔가 매우 처량한 느낌이 들기도 한데 카페에서 점심을 해결하면서부터는 집에서 요리하고 차려먹는 게 애매해져버렸다. 일주일 후에 이사갈 때까지 방청소도 안하고 장보기도 안하고 뭔가 계속 미루고만 있다.
어제 출판사에서 교정지 출력본을 보낸다고 하길래 고산 홍홍으로 받겠다고 했다. 관리실 드나드는 게 싫어서 어지간하면 우편물을 홍홍으로 받는다. 그랬는데 오늘처럼 고산에 가지 않는 날은 굳이 찾으러 가야한다. 점심 이후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우편물만 챙겨서 용진 중앙도서관에 갔다. 교정지를 검토하든, 시험공부를 하든 집보다는 도서관에 있어야 할 거 같아서.
그렇지만 당연히 도서관에 앉아서 한두 시간은 딴짓을 했다. 가을에는 글쓰기 강좌를 들어볼까, 당장 서점을 못차리면 이동식으로 책장을 짜서 돌아다니는 책방 걸어서.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것저것 검색했다. 그러다가 정신차리고 교정지를 보려고 하니 지난 주말에 보내준다고 했다가 아무 연락없이 화요일에 보내고 수요일에 받았는데 목요일 오후까지 넘겨달라그래서 뭐가 이렇게 급해. 일요일까지 시험공부하기도 바쁜데 하는 서운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그거 보고 안 보고가 시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시험끝나고 본다고 더 꼼꼼히 보는 것도 아니지만 기분이 나쁜 건 말을 하고 넘어가야 할 거 같아서 메일을 썼다.
그냥 넘어가도 되고, 이해도 되지만 서운하긴하다. 말 안하면 혼자 계속 억울해할거 같아서 말한다. 좋은 사람과 최선의 협력으로 일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로 답장이 왔고 디자인팀 일정과 담당자의 병가로 이런저런 상황이 있었지만 못챙긴건 잘못이라고 미안하다고 말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마음이 그냥 스르륵 또 풀리고 공부도 하기 싫었는데 잘됐다 싶어서 종일 교정지만 봤다. 다 보고 나니 기운 딸려서 집에 오는 길에 치킨 사서 들어왔다.
직장인도 아니고, 일정이 빽빽한 것도 아니어서 충분히 시간은 되지만, 내가 시간이 많은 게 마음대로 나의 시간을 대기상태로 봐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는 일이 잘되기를 노력할 테지만 그래서 함부로 하면 기분이 상하니까. 그런 기분이 들게 행동한다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도서관에 간 김에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라는 책을 빌렸다. 어른으로 팍팍한 사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에세이. 단정한 그림과 함께다. 이런 저런 말이 뻔하다고 생각해서 오그라들 수도 있지만 그런 말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오늘은 시험스트레스 받지 말고 자야겠다. 내일과 모레면 드디어 끝이구나. 떨어지더라도.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