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17 9월

20170906

아침에 이사짐센터에 전화해서 15일 일정을 확정했다. 계약금을 따로 보내지는 않아도 된단다. 집에 먹을 게 딱히 없는데 배가 고파서 밥을 하고 냉장고를 뒤져서 김과 굴소스를 넣고 비벼먹었다. 뭔가 매우 처량한 느낌이 들기도 한데 카페에서 점심을 해결하면서부터는 집에서 요리하고 차려먹는 게 애매해져버렸다. 일주일 후에 이사갈 때까지 방청소도 안하고 장보기도 안하고 뭔가 계속 미루고만 있다.

어제 출판사에서 교정지 출력본을 보낸다고 하길래 고산 홍홍으로 받겠다고 했다. 관리실 드나드는 게 싫어서 어지간하면 우편물을 홍홍으로 받는다. 그랬는데 오늘처럼 고산에 가지 않는 날은 굳이 찾으러 가야한다. 점심 이후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우편물만 챙겨서 용진 중앙도서관에 갔다. 교정지를 검토하든, 시험공부를 하든 집보다는 도서관에 있어야 할 거 같아서.

그렇지만 당연히 도서관에 앉아서 한두 시간은 딴짓을 했다. 가을에는 글쓰기 강좌를 들어볼까, 당장 서점을 못차리면 이동식으로 책장을 짜서 돌아다니는 책방 걸어서.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것저것 검색했다. 그러다가 정신차리고 교정지를 보려고 하니 지난 주말에 보내준다고 했다가 아무 연락없이 화요일에 보내고 수요일에 받았는데 목요일 오후까지 넘겨달라그래서 뭐가 이렇게 급해. 일요일까지 시험공부하기도 바쁜데 하는 서운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그거 보고 안 보고가 시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시험끝나고 본다고 더 꼼꼼히 보는 것도 아니지만 기분이 나쁜 건 말을 하고 넘어가야 할 거 같아서 메일을 썼다.

그냥 넘어가도 되고, 이해도 되지만 서운하긴하다. 말 안하면 혼자 계속 억울해할거 같아서 말한다. 좋은 사람과 최선의 협력으로 일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로 답장이 왔고 디자인팀 일정과 담당자의 병가로 이런저런 상황이 있었지만 못챙긴건 잘못이라고 미안하다고 말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마음이 그냥 스르륵 또 풀리고 공부도 하기 싫었는데 잘됐다 싶어서 종일 교정지만 봤다. 다 보고 나니 기운 딸려서 집에 오는 길에 치킨 사서 들어왔다.

직장인도 아니고, 일정이 빽빽한 것도 아니어서 충분히 시간은 되지만, 내가 시간이 많은 게 마음대로 나의 시간을 대기상태로 봐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는 일이 잘되기를 노력할 테지만 그래서 함부로 하면 기분이 상하니까. 그런 기분이 들게 행동한다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도서관에 간 김에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라는 책을 빌렸다. 어른으로 팍팍한 사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에세이. 단정한 그림과 함께다. 이런 저런 말이 뻔하다고 생각해서 오그라들 수도 있지만 그런 말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오늘은 시험스트레스 받지 말고 자야겠다. 내일과 모레면 드디어 끝이구나. 떨어지더라도. 하하하.

20170905

아침에 이사업체에서 다녀갔다. 조금 많지만 1톤트럭 한 대로 해볼만하다고 하신다. 포장이사를 하면 45만원. 내가 짐을 싸놓는 일반이사는 35만원이라고 한다. 짐 나갈 때는 사다리차를 써야하니 그 비용포함. 알겠다고 하고서는 마음속으로 거의 결정했다. 나쁘지 않은 금액같다. 근데 이렇게 ‘큰일’을 처음 그것도 혼자서 해내고 있으니 괜히 눈물이 났다. 혼자서 오지산골마을로 더 비싼 비행기표 사서도 가는데 뭘, 하면서 애써 마음을 진정시켜본다. 문자로 친구랑 상의해서 결정하는데 도움을 좀 받고 언니들에게도 이사비용과 날짜를 알렸다. 진짜 하는구나.

카페에서 일하고 퇴근하는 길에 친구네 가게에 들렀다. 며칠 전부터 치킨시켜먹고 싶었는데 오늘 치킨을 같이 먹자고 할까, 집에가서 혼자 먹으면서 시험공부나 할까하다가 연락해보니 치킨먹기로 했다고. 이런 횡재가 하면서 들러서 얻어먹었다. 배불리 먹었는데 아주 조금 기분이 편치 않다. 이건 내가 까다로워서일수도 있는데 뭔가 핀트가 조금 안맞는 대화를 하다보면 너무 지친다. 잘 맞는 친구란 어떤 친구일까. 나는 워낙 성격이 급하고 이것저것 되는대로 다 해보는 편이라서 하고 싶은 일이 많을 때는 아주 많고 없을 땐 정말 무기력한데 하고 싶은 일이 생길랑말랑할 때 정색하며 그거 별로라는 말을 하는 걸 앞에서 듣고나면 나한테 좋을 게 없는 거 같다. 나도 그랬던가 하고 반성하게 된다. 그런식으로 입장이 다른 대화를 조금씩 이어가는데 아 이거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이렇게 나는 계속 여기서 외롭고 더 외로워지는 걸까. 이사를 친구들 모두 불러 힘합쳐서 하지 않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솔직히 마음편히 부를만한 친구가 없다.

집에 와서 공부는 아주 조금 하고, 또 계속 딴짓과 딴생각을 했다. 내일은 아르바이트 없는 날인데 도서관에서 집중해서 할 수 있을까…

 

20170904

아침에 이삿짐센터에 전화했다. 사실 시험 치르고 난 다음 주말에 동네 아는 분의 트럭을 빌리고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이사를 해볼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괜히 미안한 일이 생길 것 같고, 아직 허물없이 누구누구를 부를 수 있는 마음 상태도 아니다. 누가 나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하면 기꺼이 가기는 하겠지만 나는 솔직히 누구를 딱 떠올리기 쉽지 않다. 그래서 벼르고벼르다가 이삿짐 센터에 전화했더니 견적을 보러 방문해준다고 했다. 업체를 통한 이사도 처음이라 역시나 떨리지만 뭐, 해봐야지 어쩌겠어.

카페에 출근했다가 7시에 퇴근해서 한 시간 정도 겨우겨우 책을 봤다. 일요일에 보는 한국어교원자격시험. 정말 스트레스다. 정말정말 공부하기 싫고 봐도 무슨말인지 모르겠고 지금 해서 뭐하나 싶고 어짜피 불합격할 것 며칠 책 본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비 아까우니 서울에 시험보러 가지 말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그저 성실하게 마무리한다고 마음을 다잡는 중이다. 실직자 국비지원으로 양성과정 이수라도 한 게 어디냐.

공부는 하기 싫고 마음은 불안하니 자꾸 딴짓을 하게 된다. 어제와 오늘의 검색 키워드는 “여성유망직종” “복싱”. 트위터에서 유해물질 화물운송이 생각보다 정년이 늦고 여성들이 생각보다 진출하지 않아서 해볼만하다는 글을 읽고 또 트럭운전에 혹했지만 금새 시무룩해졌다. 나는 운전도 그리 좋아하지 않고 잘하지도 않으니까. 복싱은… 운동은 하면 좋은데 트레이너 선생님과 개별적으로 하는 운동은 너무 비싸고 혼자서는 안하고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어 이르게 된 결론. 이내씨가 매일 일기를 써 올리는 데 자극받아 나도 일기를 다시 쓰겠다고 했는데 이내씨가 복싱을 하더라고. 나는야 따라쟁이. 수영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으니까. 땀흘리며 몸을 쓰는 운동에 관심이 있고 복싱은 안해봤으니까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아직 모르잖아. 시도해볼만 하다. 다만 둔산리 회원모집 광고전단에 남성은 전통복싱, 여성은 다이어트 복싱이라고 나와서 기분이 좀 싸하지만 시험끝나면 방문해서 상담받고 일일체험 같은 게 있으면 해보면 좋겠다.

시무룩하게 불끄고 일찍 누워있는데 친구에게 오늘 어떠냐는 문자응원을 받고 벌떨 일어나 한 시간 정도 더 책을 봤다. 잘 이해는 안 가더라도 꾸준히 읽기라도 해야 시험 볼 마음이 생길 테니까. 이번 주말 시험에 친구 두 명도 함께 응시하는데 다들 마찬가지로 공부는 안 하고 있다. 한 친구가 아무래도 자긴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나도 그럴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 이번엔 내가 그 친구에게 문자응원을 해줘야겠다. 떨어지더라도 시험은 보자. 앞으로 닷새 조금만 버텨서 성실한 마무리를 해보자.

이삿짐센터에서 사실 오늘 방문한다고 했는데 못왔다. 내일 오신다고 한다. 무조건 여자는 사모님으로 불리는지 나한테도 사모님 사모님 한다. 기분이 이상하다. 이사 같은 큰 일을 처음해보려고 하니 떨리고 걱정도 된다. 어짜피 나는 같이 시시콜콜 고민을 나눌 사람도 없으니 그냥 두려워도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다. 잘자라, 바닥. 오늘도 수고했다.

20170903

어젯밤에는 우군이 와서 자고 갔다. 몇달째 우울하다며 내가 입에서 나오는대로 아무말이나 하면 들어주는 고마운 사람 중에 한 명인데 어제도 또 그런 것 같다. 그래도 9월에 시험도 끝나고 이사도 마치고 가을을 맞이하여 마음이 좀 안정되면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고 이야기했다.

9월 9일 한국어교원자격시험 때문에 공부도 안 하면서 스트레스가 심하다. 어렵고 재미없으니 공부는 하기 싫고 그래도 시험은 붙고 싶은데 이렇게 준비안 하고 붙을 거 같지는 않고 떨어지면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고 있는데 맘편히 놀지도 못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셈이다.

오늘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30까지 까페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날이었다. 어쨌든 출근하면 시간은 가니까 일이 너무 하기 싫다거나 괴롭지는 않다. 차라리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덜 괴롭다.  그렇지만 이미 하루에 4-5시간 이상 노동하면 너무너무 피곤해지는 몸이 되었다. 퇴근길에 포도 한 송이 얻어와서 집에서 누워 쉬다가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아 어제부터 먹고 싶었던 치킨을 시킬까 했지만 혼자서 배달음식 시키는 거 조심스럽고, 나가서 사오자니 귀찮아서 그냥 참고 집에 있는 것들로 대충 먹었다. 어제 지리산에서 얻어온 가지를 넣고 떡볶이 고추장 양념에 비빈 국수. 정말 근본없는 먹을 거리였다.

그래도 오늘은 부산에서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생각다방산책극장의 인연으로 알게된 친구들이 많은데 건형씨도 그 인연을 잘 정리해서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여럿에게 원고청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페이스북에 그런 걸 하고 싶다는 건형씨 글을 읽고서 와, 좋다. 생각했는데 고맙게도 내게도 전화가 왔다. 어젯밤 우군과 하고 싶다고 한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리면서도 씩씩하게 살고 있는 친구들을 찾아가는 대탐험’과도 연결된다. 부산에도 만나서 이야기나누고 정리하고 싶은 친구들이 많으니까. 이걸 계기로 나도 조금씩 기운이 더 나면 좋겠다.

2:30에 퇴근해서 9시까지 쉬고 뒹굴거리다가 겨우겨우 지난해 기출문제 풀이강좌라도 봐볼까 하고 컴퓨터 켜고 앉았는데 맥북으로는 플레이가 되지 않는다. 하하. 내일 도서관가서 봐야지. 조금 더 기운을 끌어모아 책상에 앉은 김에 책을 조금이라도 봐야겠다. 벼락치기 화이팅.

20170902

지리산포럼 둘째날. 약속된 ‘비영리 퇴사자들의 퇴사 이유와 이후’ 모임에서 퇴사자, 퇴사예정자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힘들어서 퇴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성토대회는 아니었고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다들 ‘어떻게 살 것인가, 행복하게’ 그런 이야기였던듯.

오후엔 귀농귀촌에 관심있는 청년들의 짧은 완주방문체험 프로그램에 먼저 귀촌해 살고 있는 사람으로 초대되었다. 이런 자리 그냥 편하게는 ‘일 들어왔다’라고 말하는 편인데 새로운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듣고, 내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는 편이니까. 용돈도 벌고.

결과적으로는 도시 사람들이 환상으로 꿈꾸는 시골살이의 로망을 깨부시는 역할이었나 싶기는 한데. 지금의 내 고민과 상황이 그러하니까. 조용하고 평화롭고 자연과 가까운 생활환경은 만족스러운데, 좋아하는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놀 수 없는 외로움이 크고, 전일제 임금노동자로 살기는 싫은데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경제활동을 뭘로 해야하나. 답은 잘 모르겠다. 찾는 중이고 이런저런 생각과 시도를 해본다는 정도.

너멍굴영화제에 찾아가는 저녁일정도 같이 참여하자고 권해주셨지만 어제오늘 너무 피곤해서 ‘불편한 야외영화 관람’까지 할 자신이 없어서 업무끝나고 바로 퇴근했다. 

집에와서 좀 누워서 쉬다가 배가 고픈 건 아닌데 ‘후라이드치킨’이 너무 먹고 싶어서 열번쯤 고민하다가 그래, 하고 주문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배달이 어렵다고 하셔서 단념하고 잘 준비나 하기로. 

20170901

지리산포럼에 왔다. 비영리 단체 퇴사경험이 있는 개인으로 내일 세션에 참여한다. 혼자서라면 (나는 낯을 가리니까) 올 생각을 못했을텐데 고맙게도 지인이 초대해주었다. 다음주 시험도 있고, 내일 완주에서 일정도 있어서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요즘도 외롭기때문에 대외활동 차원에서 용기를 냈다.

산내에 오는 김에 일찍 와서 문화기획달에 들러 달지기들과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눴다. 좋은 동료들과 으쌰으쌰 기운을 내며 즐겁게 일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았다. 한 명 한 명 진하게 꼬옥 껴안았는데 눈물이 날 뻔했다.

지난주에 모로코에서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쥬이랑 제주 바라네서 만나, 우리 모두는 각각 자기자리에서 어떻게든 살고 있는데 언젠가는 가까이에 함께 살고 싶으니까 우선,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언젠간 동네친구 –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뭐라도해보자는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오늘 즉흥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를 찾다가 ‘혼자놀기’ ‘외롭지 않게 함께 놀기’등 남이 적어낸 주제, 내가 적어낸 주제를 적당히 섞어 이야기했는데 수원 행궁동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서 엄청 신났다. 역시 좋은 이웃들과 즐겁게 지내는 거 너무 중요하다. 그리고 견출 기술을 가르쳐줄 사수도 확보했다. 그래 내년에 수원에서 진짜 배워보자. (나는 진지한데 농담하는 줄 아시겠지?)

완주 내려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주변에 내가 배울만한 기술이 뭐가 있을까 물어보고 다녔을 때는 마음에 꽂히는 대답이 없었는데 오늘 나눈 몇가지 얘기들은 구체적으로 고민해보고 싶다. 막연히 천연페인트 좋지, 목공이나 직조는 많이들 하는데.. 이런 수준이었다면 오늘 조언들은 현실적이었다. 굴삭기 면허를 따면 수요가 많으니 일이 충분할 거라는 얘기가 솔깃했다. 전기기술자가 되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타일 줄눈이나, 미장, 도배 현장에서 일을 배울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런 사수를 만날 가능성이 낮고 실제로 기술자가 된다고 해도 일을 구할 수 있을까. 그러던 와중에 홍성사는 분이 우리 같이 (굴삭기 수요 많다고 조언해주신 분이 현업에서 일하신다고 한다) 견출배울까요? 그래서 혹함. 나 진지하다.

어색해서 수줍게 기웃기웃 거렸지만 좋은 날이다. 오랜만에 감꽃홍시에서 주인장 부부도 만나고, 서울에서 온 친구들도 보고, 고민하는 활동가들이 뿜어내는 공기도 사실 좋다. 녹색연합 윤정숙 선생님의 강연도 좋았고.

오늘부터 숨을 고르면서, 남들에게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이 볼지도 모르는 일기를 작정하고 쓰기로 했다. 오늘 아침부터 운전해서 왔더니 피곤하다. 잘 자고 내일도 재밌는 하루를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