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하루다. 오전엔 비가 조금 왔고 날이 선선했다. 비 오기 전에 가지랑 30분 산책했다. 평소처럼 가지가 날뛰지 않아서 일찍 들어왔다. 지난밤에 본 걷기왕의 감동이 가시지 않아 또 좋은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땐뽀걸즈.
검색해보니 전주에선 안 하고 광주극장이랑 대전아트시네마에서 한다. 대전 가는 거 어렵지 않으니까 차 가지고 가도 되고, 기차타고 가도 된다. 가지태우고 운전해서 갈까? 그래도 영화보는 동안에 가지 맡길 곳도 없고 갑작스러운 외출이니까 가까운데부터 연습해야지. 기차타고 가면 되겠따. 점심 이후 시간이니까. 하면서 기차표예매. 대전 친구들에게 연락할까 싶은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우선 기다리고 설레면서 가지랑 산책나갔다가 들어왔는데! 내가 확인한 상영시간은 어제고 오늘은 상영없음. 이런! 기차표 취소하고 시무룩해졌다. 다행히 친구한테 연락은 안해서 번복할 일은 없네.
대신 전주나 나가야겠다. 트위터 사람들이 극찬하는 20th century women. 우리의 20세기라는 한국어제목이 아쉽지만 재미있을 거 같은 감이 온다. 일찍 가서 카페에서 일해도 좋고 오랜만에 트위터 친구랑 같이 스시집에서 밥먹어도 좋겠다. 혼자라도 먹겠어. 극장 가서 표를 사고, 스타벅스에서 초콜릿푸딩을 먹으며 할일을 정리하고, 월요일에 방송에 필요한 답변정리도 했다. 오키나와에 놀러간 미정씨와 보이스톡도 하고 신났다.
글이 좋아서 다음 책도 하자는 말을 들었는데 그 기저엔 나의 성실성도 한 몫한거 같아요, 라고 말했더니 글이 좋다는 칭찬은 진짜였을거라고. 자기도 책을 써보니 바닥의 원고가, 바닥 글의 호흡이 단행본에 맞게 적합한 실력 같다고. 모르는 것은 욕심내지 않고 끝까지 같은 톤을 유지하며 자기의 글을 써내는 실력. 와 매우 훌륭한 칭찬이었다. 기분좋아. 또,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자는 생각도 했다. 글이 좋다잖아. 아 그럼 그런가보다 고맙습니다 하면 될 걸 에이 그럴리는 없겠지, 내가 성실해서 일하기 편하다는 뜻일거야. 라고 생각해버렸으니까. 사실 글이 좋다는 말이 제일 듣고 싶었던 거면서. 지금 이 만큼 좋다면 고마워하고, 더 좋아지게 계속 쓰고 더 좋은 글을 쓰면 될일이다.
영화는 정말로 좋았다. 아이캔스피크만큼 엉엉 울진 않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잔뜩 나와서 장면장면에서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 소장해서 집 벽에 상시로 틀어놓거나 외로울 때마다 보고 싶은 영화다. 50대의 도로시아를 연기한 아네트베닝이 최고로 아름다워서 우아하게 늙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10대의 줄리, 20대의 애비도 멋있었지만 나는 앞으로 40대, 50대가 되어가니까.
트위터친구랑은 시간이 맞지 않아서 결국 못만났지만 혼자라도 스시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검색한 스시집에 갔는데 연휴라 닫았더라. 그럴거면 도시음식인 버거킹을 먹어야 하나 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큰 길가에 나쁘지 않아보이는 스시집에 들어갔다. 연어 5개, 광어 5개로 구성된 초밥을 먹었는데 더 먹고 싶어서 광어지느러미 두 개 더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도미껍질이 없어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기분좋은 식사였다. 밥 먹고는 트위터친구에게 랜선사인도 한장 해서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좋아서 평소 갖고 싶었떤 책도 한 권 주문했다. 어제 돈 벌었으니까 오늘은 돈쓰는 날이야!
카페 고양이들 밥 챙겨줄 사람이 없다고 해서 카페에도 다녀왔다. 솔직히 나는 길고양이가 하루쯤 굶어도 되지 않나, 라고 나이브하게 생각했지만 내가 신세진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나한테 부탁한거니까 우선은 그 마음에 답하기 위해 간다. 아마 나도 좀 지나면 우리 가지가 하루 굶는 거 만큼 마음이 쓰여서 매일매일 밥주던 그 녀석들이 걱정될지도 모르지.
요거트나 사갈까 하고 건너편 시장에 갔는데 요거트는 없고 옆집 홍홍에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의 20세기를 볼까 하고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제일 위에 내가 방금 트위터에 쓴 감상평이 올라와서 신기하다 하고 웃고 있었는데 바로 그 때 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단다. 영화같은 순간.
집에 돌아와 가지랑 잠깐 놀고 9시 반쯤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