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7/10/27

20171025~1026

10.25.수요일.
오늘은 5시에 출근해서 마감까지 일하는 날이다. 오전에는 시간이 좀 있다. 할일을 떠올려보니. 어제 도착한 ㅎㅇ이 만든 커튼도 빨아야 하고, 그래야 말려서 내일 다니까. 방도 닦아야 한다. 저녁에는 가스경보업체에서 작업하러 나온다고 하신다. 대전 구석에서 할 행사를 위한 초대의 글을 아직도 못썼다. 겨울옷도 정리해야하는데, 주말에 할 행사관련해서 카페에서 저녁에 ㅈㅈ과 회의하기로 했다. 뭐 부터 해야하지. 그러다가 마음이 동해서 우선 서울에서 얻어온 주방등기구를 설치해보기로 했다. 그게 제일 하고 싶었다. 당장. 기존의 등을 떼내고, 교체할 등기구의 쌓인 먼지를 닦고, 전구도 닦았다. 잘 안되어서 과탄산수소를 넣어 끓이니 아주 잘 닦였다. 살림전문가가 된 기분. 본격 작업에 들어가니 등기구에 필요한 나사가 없어서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여분의 스위치를 분해해서 거기서 대용품을 찾았다. 아 그러다보니 기운빨려. 우선 쉬어야겠다. 어제 사온 너구리를 반만 끓여먹었다. 스팸도 넣고 양파도 넣고 달걀도 풀어서. 근데 고양이랑 같이 산다는 건 잠깐 쉬면서도 혹시 고양이가 세제를 핥아먹을지도 모르니까 잘 정돈해야하고, 작은 나사를 가지고 놀다가 먹거나 어디로 숨겨버릴지 모르니 일단 다 잘 치워야 되더라. 내가 더 부지런해질지도 모르겠다. 라면을 먹고 한참을 쉬다가 다시 작업 시작. 그런데 아무래도 각이 잘 안나오고 혼자서는 달 수가 없겠더라. 근처 사는 장신 에이스 ㅇㅈ씨에게 도움요청. 지금 수업중이라 늦겠지만 오후에는 올 수 있다고. 쉬엄쉬엄 방을 쓸고 닦고 필요한 공구를 고산에 가서 빌려왔다. ㅇㅈ씨가 4시에 와서 5시에 카페 출근해야하는 나는 작업을 못하겠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앉지도 않고 작업에 투입되어준 ㅇㅈ덕분에 후다닥 등을 달았다. 완성! 저녁에 가스업체에서 방문하시라고 열쇠를 관리실에 맡기고, 고양이를 데리고 카페에 출근했다. ㅇㅈ 미안. 우리 내일 느긋하게 다시 만나요.

작업자들에게 집 열쇠를 넘길 수는 있지만 혼자 고양이 있는 건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사장님께 여쭤보고 데리고 왔다. 다행히 녀석이 얌전히 스태프룸에서 기다려주었다. 가끔 내 얼굴이 보이면 울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조용히 앉아서 자거나 쉬었다. 역시 고양이. 아기 데리고 출근한 엄마가 된 기분. ㅈㅁ랑 ㄷㄹㅋ가 애기 보러 잠깐 들러줬고 사장님들도 예뻐해주셔서 좋았다. 카페는 마감때까지 좀 바빴는데 그래도 할만했다. 완두콩 대표님이 친히 전화를 주셔서 완주군귀촌인 수기공모에 필히 참여하라고 얘기하셨다. 진짜 해야되나, 할까말까 여러 고민을 했는데 하지 뭐. 일이라고 생각하고.

주말행사 마지막 점검회의를 했는데 거기서 놀랄만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번 행사때 고양이 알러지때문에 ㅅㄹ이 너무너무 고생했다는 이야기. 이번엔 신경 좀 써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 완벽하게 격리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가 아무래도 데리고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과정을 지나는 내 마음이 아주 매끄럽지는 못했는데 구구절절 반성하거나 누구를 원망하거나 그런 과정을 여기에 적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나한테 귀여운 고양이가 누군가에게는 무서운 걸 넘어 생생한 고통을 주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데 의의를 둔다. 어떻게 함께 잘 살아갈 것인가. 그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계기.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한 것도. 그렇지만 앞뒤 따지지 않고 내가 가해자가 된 건 속상한 일이다. 계속 마음이 좋지 않다. 그래서 우울해서 치킨을 사먹었다. 치킨이 위로해주겠지. 반반 포장하려고 냄비와 그릇을 각1개씩 들고가서 포장해왔다. 하하하. 콜라 대신 사이다를 가져왔고, 먹지 않은 무는 반납했다. 치킨도 맛있었고 가지도 상에 달라들지 않았다. 좋은 일이 많네. 그렇게 밤을 보냈다.

10.26.목요일.
마음이 여전히 고되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8시 넘어서 늦게 일어났고 고양이 병원이나 도서관, 겨울옷 정리, 자동차 관련 업무처리 등 머릿속에 할일이 많았지만 그냥 다 쉬기로 했다. 어짜피 4시 이후에 ㅇㅈ네 집에 놀러가기로 했고. 오전내내 쇼핑을 했다. 이제 건강챙길 나이니까 바빠지니까 영양제라도 먹어야겠다 싶어서 센트륨 주문하고, 겨울이라 핸드크림, 입술보호제, 바디로션이 필요해져서 바세린 주문했다. 텀블벅에서 이고잉 프로젝트에도 소액 후원했다.

가계부가 날라가버려서 김에 마구마구 돈을 쓰고 있는데, 기분이 좋기는 한데. 엄청 썼을 거 같다. 이렇게 정신없이 쓰다보면 돈사고를 내겠구나 싶었다. 시간이 좀 나서 고양이 병원에 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래 내일부터 또 일하느라 바쁠텐데 그냥 나를 위한 시간을 갖자 싶어서 욕조에 물바다 목욕했다. 좋았다. 어제 남은 치킨도 먹고. 3시반에 걸어서 ㅇㅈ네 집에 갔다.

커피 마시고, 이야기하고, 차 마시고, 팟캐스트 로고송에 대한 의뢰도 하고, 음악인으로서 ㅇㅈ를 대하고 재미있고 신기하고 조심스럽고 여러가지 마음이 들었다. 책도 빌려왔다. 자주 놀러가서 친해지면 좋겠다. 나중에 취미로라도 음악을 배워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들어 부르고 찍어서 올린 영상도 같이 봤다. 코드도 다 같고 연주도 형편없지만 나는 아마추어니까. 헤헤. 그래도 좀 부끄러웠어.  8시에 남편 ㅅㄷ씨가 퇴근해서 차로 데려다주었다. 갈때 걸어간 건 좋았는데 돌아오는 길을 생각해보면 다음에 걸어가긴 힘들것 같다. 자전거는 그나마 나으려나. 집에 와서 고양이와 인사하고 중문도 구경하고 그이들은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서 바로 잤어야 했는데 역시 마음이 아주 편해지지는 않고 식탐이 올라와서 배가 부른데도 후라이드 치킨 남은 것과 대전에서 얻어온 치즈를 마구 먹었다. 짠 게 당긴 모양. 빌려온 만화책을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누구와 일할 것인가, 자꾸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만 떨쳐내려고 노력중이다. 그저 이번에도 느낄뿐. 잘 맞는 사람하고 일해야겠구나. 팟캐스트도 열심히 하고 나중에 ㅂㄹ나 ㅈㅇ ㄴㄴ랑 여행을 같이 가서 싸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우리 현명하게 대화하면서 갈등을 잘 풀어내는 사람들이었으면. 사랑하니까. 미워하지 않고 기다리고 삐지지 않도록.

ㅂㄹ가 중국에서 재밌는 책을 봤다며 사진으로 찍어보내줬다. 아침엔 통화가 어려워 카톡으로 와르르르 내 복잡한 심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래 이런 친구가 있는 게 어디냐. 사람을 찾기가 제일 어려운 거니까. 고맙게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