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7/11/18

[세쪽책] 귀명창

015호 [귀명창]
가지네 2017년 11월 18일 발행 :http://www.facebook.com/3pagesbook :글_신바닥 : 책값 500원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말이 빠른 편이라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아무말이나 하게 되는 경우를 경계합니다. 말은 목소리, 표정, 손짓 등과 같이 하는 거니까 유우머 감각과 연기 실력으로 내용을 대충 얼버무리기도 합니다. 게다가 듣는 이들은 말이 끊기지 않고 술술술 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말을 잘한다 = 똑똑하다 =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잖아요.

말을 할수록, 그 말을 하기 위해 혹은 하고 나서 혼자 좀 정리하려고 글을 써보려고 하면 말의 근거가 되는 ‘생각’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됩니다. 충분히 고민하고 상상해보기도 하고, 이미 누군가 해놓은 고민의 결과를 읽으며 공부하기도 합니다. 연구자에게는 스스로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이 공부일 것입니다. 인터뷰어로 연구자를 만나면서 ‘연구’란 지겨워도 계속 보고, 알 것 같아도 여러 방면에서 보고, 본 것들을 분류하고 정리하여 자기의 말로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잘 보기 위해서 많이 듣기도 해야할 겁니다. 이런 연구가 있었기에 나는 내 고민이 무엇인지 쉽게 알고 깊게 생각해보기 쉬었겠지요. ‘어디서 봤는데’ 하면서 알은 체를 하기도 하고요.

듣는연구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들이 하는 연구라면, 내 삶과 연결된 일이어서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과 변화를 지켜보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공부를 하면서 외로웠던 개인들이 든든히 서로의 곁이 되어주고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는 동료로 만나기를. 함께 움직일 힘을 키우기를 바라봅니다.

듣는연구소가 훌륭한 귀명창이 되기를,
그러면 자연스레 좋은 소리꾼. 이야기꾼이 되고,
좋은 이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갈 행동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 사랑하는 친구가 준비하는 듣는연구소의 (부탁하지도 않은) ‘개업축사’

20171117

12시간 가까이 잤다. 엊저녁에 ㅇㅈ와 문자대화를 나누면서 해장으로 뭘 먹어야하나 결정을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도 안난다. 며칠 전에 끓여놓은 양배추스프가 있어서 그걸 끓이고 갈아서 한 컵 마셨는데 잘 안 들어가서 베란다에 내놓고 잤다. 고양이가 없던 시절에는 그냥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았을텐데 녀석이 나를 참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7시에서 자서 7시에 일어난 거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용한농장에 귤 주문하고 작년에 여성기술교육 기사 써주셨던 기자님께 책 보내드린다고 연락하고, 가지 수술하러 갈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넥카라 만들었다. 어제 부직포 사와서 만드는 법 찾아보는데 다들 치수 재서 만들었다, 고만 나와서 어디 치수를 어떻게 재라는 건가 싶었지. 그럴 땐 구글검색 how to make cat neck collar with cloth 로 검색했다. 머리 치수를 재서 넥카라 폭을 정하고 목둘레를 재서 가운데 구멍을 뚫는거다. 어렵진 않은데 조금 번거롭지. 그래도 가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챙겼다.

10시 보다 일찍 병원에 도착해서 가지 눈치 보면서 선생님 기다렸다. 아침에 체중은 재서 왔고(3.3킬로) 피검사 마치고 문제 없어서 수술실 입장. 12시 넘어서 천천히 볼일 보고 오라고 하셔서 건너편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 먹고 그냥 일찍 왔다. 그랬더니 수술 막 마치고 마취 덜깬 가지를 옆에 데려다주셨다. 수컷 수술은 어렵지 않으니 수술은 잘 끝났는데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다행히 차에 덮고 다니던 담요가 하나 있어서 가져왔다. 앞뒤로 다른 일정 없는게 다행이다. 지난주에 조식서빙 일을 할 수도, 오후에 ㅂㄹ가 올 수도 있었는데 어쨌거나 가지 간병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마취 깨기를 기다렸다가 모시고 집에 왔다. 어젯밤부터 굶었더니 너무너무 배가 고팠겠지 병원에서 주신 주식 습사료 하나를 정신없이 해치우고는 계속 계속 밥을 먹었다. 드시라고 드렸다.

병원에서 수술 기다리는 짬을 이용해, 영시미에 전화해서 담당 선생님 메일 주소 알아냈고, 편지 썼다. 낮에는 완숙회 취재하고 싶다는 기자 전화를 받아서 안된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넥카라 부직포도 여러번 실패끝에 안정적 착장에 성공. 낮잠 한참 자고 좋아보이고 나는 배고파서 군청 뒤 나는난로다 행사장에 들렀다. 좋아하는 선생님께 책도 한 권 선물해드리고 싶고, 겸사겸사 인사 드릴 분들도 있고, 얼굴을 비춰야 할 거 같아서. 먹을 게 많다면 맛있는 걸 먹고 와도 좋겠지. 생각보다 먹을 건 별로 없었는데 사회활동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재관 선생님 책 선물 드렸고, 신현돈 목수님, 곽기준 목수님 인사드렸고 전환기술관계자들에게도 왔다고 얼굴도장은 찍었다. 맛있는 게 많다더니 생각보다 별 건 없었다. 어짜피 다 고기굽는 판이라 에버팜에서 구워주는 채소구이가 제일 맛있었다. 우쉐프의 핫도그도 나쁘지 않았고. 자전거카페를 하는 친구를 만나서 한참 수다떨고 연락처 교환했다. 건지산에서 커피를 내렸다고 한다. 재미있는 만남. 막걸리 한 병 남을 것도 싸들고 갔는데 ㅎㅅ 만나서 전해줬다.

집에 왔더니 가지가 넥카라를 풀어헤쳤길래 다시 설치하고 행사장에서 사온 컵홀더를 윗층 사는 ㅁㅇ에게 선물하고 생생우동을 끓여먹었다. 맛있게 끓여먹으려고 냄비 두개를 동시에 올려서 면을 한 번 삶아 버리고 오뎅 파를 넣은 돌솥우동을 만들어 맛있게 냠냠. 고양이 사료 주문하고 났더니 너무 피곤해서 잤다.

가지 수술 때문에 긴장했지만 하루를 마치면서는 꽤 기분이 좋다는 걸 발견하고 바오로 신부님께도 책을 한권 보내겠다고 연락드렸다. 요즘 잘 지내는거 좋다고 하시길래 일년에 200일은 괴롭고 나머지는 좋아요, 했더니 둘이 바뀌게 기도해주신다고 하셨다. 아. 고마운 사람. 저도 더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