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17/11/24

20171123

아침에 일어나 어제 미처 하지 못한 준비를 했다. 대전의 친구들을 기억하면서 옛날 사진을 골라보고, 책의 저자로서, 자립인간으로 살기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까 정리를 좀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지 화장실치우고, 나 커피 마시고, 이불개고, 어영부영하다보면 또 그망 8시다. 요즘 7시가 다 외어 일어나는 편이라 그런가봐. 그래도 12시 출발전까지 4시간 정도 남았으니 일하고, 머리감고 짐챙기고 준비하면 될거 같았다.

당연히! 일을 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언제나 할 일이 생각난다. 일단 일기를 쓰는데 한 시간이 걸려서 9시가 되었고, 볕이 좋아서 오늘이 아니면 빨래를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검은 빨래, 흰 빨래 세탁기를 두번이나 돌리고 말았다. 물론 그 동안 일을 하기는 했지만 마음이… 세탁기에..하하. 한창 일하고 있는데 대전에서 전화가 왔다. “바닥, 대전에 눈이 너무 많이와, 운전해서 오기 힘들거 같아.” 이런 그러고 정신차려 밖을 보니 우리 동네에도 눈이 펑펑온다. 아, 이 길에 내가 짐을 바리바리 싣고, 가지를 태우고, 운전을 해서 대전에 가는 것은 아무리도 무리겠다. 후다닥 기차표를 알아봤다. 길어봤자 만 하루 정도니까 가지도 혼자 집에 있어도 될 거 같고. 2시쯤 출발하는 기차가 있으니 대략 준비하면 맞겠다. 삼례까지도 차 안가지고 버스타고 갈까 했는데 짐도 많고, 삼례터미널에서 역까지 걷기가 애매해서 삼례까지는 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혹시라도 시간이 부족해서 전주에 바로 가야할지도 모르니까 타로카드도 챙겼다.

겨우 내가 정한 시간, 그러니까 12시에 사진 고르기를 다 마쳤다. 이제 씻고 준비하고 집을 나서면 된다. 눈이 와서 운전이 조심스러우니 일찍 나섰다. 밥 먹을 시간은 애매해서 일하는 중간에 스프 한 사발 떠먹은 게 다라 너무 배가 고파. 삼례역엔 기차시간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오늘 삼례 장날이라 호떡집이랑 이것저것 먹을 게 많은 거 같았는데 날이 추워서 그냥 차 안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생각난 김에 호주에 메일을 보냈다.

기차타고, 음악을 들으면서, 저녁 행사와, 내일 일정과 주말 일정과, 찾아올 친구를 생각했다. 일정이 너무 많아서 생각만해도 숨이 차지만, 그래도..나쁘지 않다. 기꺼운 마음으로.

서대전역에 도착하니 ㅂㅇ이 나와있다. 나는 차를 타고 갈 줄 알고 내려서 채비를 하느라 대합실로 늦게 나왔는데 ㅂㅇ이 어제 접촉사고가 나서 차를 맡겼다고 한다. 이런. 다친데 없어 다행이다. 택시를 타고 구석으로 와서 자리를 정돈하고 사진을 열어봤는데 맥북에서 작업한 사긴이라 그런지 잘 열리지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봤지만 잘 안되었고 일단 배고파서 밥을 먹으러 갔다.

오랜만이라, 조금씩 마음이 편치 않은 순간이 있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 사랑하는 친구들이 하는 말이 왜 거슬릴까 생각하다가 밥먹고 배불러지니까 너그러워졌다. 내가 정색하고 화낼뻔했는데 내가 잘못생각했던 거였다. 니 잘못이다, 너가 잘못했다 따지지 않고 오늘 너 좀 조심해야겠는데 정도로만 부드럽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내가 조심해야되는 거였어.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역시 틀릴 수 있다는 걸 잠깐이지만 또 깨닫는다. 조심해야하는 건 남이 아니라 나다. 남을 바꾸려고 하거나 남한테 네 잘못이다 따지기 전에 그냥 조금 기다리고 넘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반사적으로 내잘못이야, 라고 말하는 것도 내 정신건강에 좋은 태도는 아니고. 어쨌거나 배부르니까 너그러워졌다. 다 괜찮아 이런 마음. 배가 부른것도 중요해.

다시 구석으로 와서 사진을 순서대로 추려서 정리하고, 오늘 할 이야기들을 챙겼다. 우리의 친구 대여섯과 정말 공고를 보고 온 관객 1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말하면서는 친구들끼리의 자리도 아니고, 완전 대중강연도 아니고, 내 이야기 반, 혼자고침을 쓰게 된 이야기 반 섞어서 하느라고 조금 애매했다. 주최측인 ㅂㅇ의 기획의도에 맞게 이야기를 하고 있나 자꾸 눈치를 보게 되고, 진짜 글밥을 먹고 사는 시인님 앞에서 내가 뭐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나 하는 부끄러움도. 그래서 1명의 관객을 바라보며, 내 이야기에 관심있어하는 새로운 친구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야기의 범위, 컨셉, 대상을 좀 명확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ㅁㅈ도 봤고, ㅇㅇ네 신혼집에 가서 잤다. ㅁㅈ는 몇년 전 처음 봤을 때랑 어쩌면 이렇게 똑같냐, 늙지도 변하지도 않는다면 신기해했고, ㅇㄷ은 계속 저자로 돌아온 바닥의 금의환향, 이런 얘기를 했다. 재미있었다. 고마운 친구들. 천천히 조금씩 내 인생의 내용을 채워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아침에는 7시부터 9시까지 오랜만에 커피를 내리기로 했다. 사실 단 한명의 단골손님 ㄱㅇㅅ를 위해 여는 가게다. 가기 전에 커피나 한 잔 하자고 시작된 것이기도 하고. ㅇㅇ도 출근길에 삼십분이라도 들르면 좋지. 그래서 7시 너무 이르기 8시에 같이 나오자고 했는데 공지도 7시로 했고 아침에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기도 하니까 일찍 혼자라도 나올까 생각중. 좋은 밤이다.

ㅂㅇ의 기대를 채우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좀 되기도 하고, ㅇㅇ도 피곤해하고 나도 일찍 자야할 거 같아서 급하게 어젯밤 자리를 정리해서 ㅂㅇ이 아쉬어했겠다. ㅇㄷ은 사람이 오지 않아서 미안해했는데 아니 그런건 사실 정말 상관없다. 지금은 자신감이 넘치고, 단 두 사람을 위해서라도, 대전의 고마운 친구들을 위해서 만든 자리이니까. 나와 대전이 만나는 방식을 확인하는 그런 자리. ㅂㅇ과 ㅇㄷ은 계속 책을 두고 가면 여기서 팔아주겠다, 오늘의 이 준비가 다음의 강연에 도움이 될테니 뭐라도 건지는 게 있지 않느냐 걱정어린 말을 했지만 그냥 이 자체만으로도 나는 많이 고맙고 좋고 즐겁고 행복하다. 사람이 많이 오지 않아도 나는 나대로 내가 하는 말에, 내가 가진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