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6호 [원래의 자리]
가지네 2017년 12월 8일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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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신바닥 : 책값 500원
도시를 떠나 살아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지역으로 가서 뭘 먹고 살아야 하나, 누구랑 놀아야 하나, 뭘 하고 살아야 하나 본격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 완주군에 있는 협동조합에서 낸 채용공고를 봤다.
나는 한 달 이상 계속되는 장기 여행을 좋아한다. 3개월이고 1년이고 다른 지역에서 지내는 것 역시 조금 더 긴 여행이라 생각하던 터라 완주로 긴 여행을 간다 생각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여행은 모아둔 돈을 쓰기만 하면 되고 언젠가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삶터를 옮기는 일은 ‘원래의 자리’를 새로 만드는 일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시골에 가면 도대체 돈은 뭘해서 벌 수 있나요?’다. 당장 할 일, 소속된 회사,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 없이 이주를 감행하기는 어렵다. 나 역시 직장을 구하고 내려왔다. 그렇지만 조금만 버티면 어떤 종류든 일거리는 생기기 마련이다. 굶어죽지는 않는다. 사람들에게 초기 몇 개월을 버틸 수 있는 생활비와 불안해하지 않을 마음만 가지고 일단 내려오면 어떻게든 살아는진다, 고 말하는데 나도 그렇게 못했기 때문에 안정된 직장이 없다고, 뭘 하고 살아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고 이주를 주저하는 그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언제부턴가 도시의 공기를 마시면 머리가 아팠고, 빡빡하게 들어선 건물과 도로 위의 자동차, 한시도 조용할 틈 없는 도시생활보다 길 가 눈 닿는 자리 누구도 보이지 않는 시골의 길에 서 있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완주에 직장을 얻고 집을 구하고 살기 시작하면서 ‘원래’ 나의 자리는 사라졌다. 여행을 가도 이제 여기가 돌아올 자리다.
솔직히 말하면 직장 생활은 도시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는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비슷하듯 사는 모습도 그러하다. 읍내 아파트에 살기에 옆 집에 누가 사는지 몰랐고 도시에서와 같이 출퇴근을 반복하면서 고단한 삶을 이어갔다. 도시의 친구들은 전원일기에서 보던 풍경을 떠올리며 마을회관에 모여 고스톱을 치고, 잔치 음식을 나눠먹고, 텃밭쯤은 가꾸면서 상추나 고추를 따먹느냐고 묻는다. 아파트에서도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느라고 텃밭 분양도 하고, 영화상영도 하지만 남의 일이다. 게다가 농사는 천성이 부지런한 사람이나 하는 거다. 나는 내 텃밭에 1년 동안 딱 3번 갔다. 그래도 베란다에서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도시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비행기를 타고 동남아 어디쯤이나 가야 볼 수 있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 최소한 제주도라도 가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 매일매일 펼쳐졌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만경강 둑방길을 따라 출퇴근했다. 황홀했다. 직장생활이 도시의 그것과 거의 같음에도 절대 도시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까닭은 거기에 있다. 만경강에서 헤엄치는 오리들, 가을이면 피어나던 코스모스, 논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잠들기 직전까지 누워서 달구경을 하던 밤들.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은 아름다운 동시에 적막하다. 여기서는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과 포개져 출근하고 길을 걸을 때도 줄서서 기다리면서 어깨를 부딪히지 않아도 된다. 그 한적함이 때때로 외롭고 쓸쓸하다. 속 얘기를 할 오랜 친구, 이유를 묻지 않고 눈물을 닦아주는 가족,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면서 배가 아플 때까지 웃을 수 있는 동료들이 그리웠다. 모든 선택에는 장단점이 있으니 아름다운 곳에서 사는 대신 심심하고 괴롭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지금 카페에서 주 3~4일 20시간 정도 일한다. 덕분에 마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카페에서는 열리는 공연, 강연, 전시에 참여한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근무 시간을 조정하고 여유 시간에는 동네의 친구들을 만나 논다.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더 들인다. 수입은 1/3 수준으로 줄었지만 그 대신 더 부지런히 다양한 일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꾸려고 한다.
귀농귀촌은 도시생활의 완벽한 대안이 아니므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야한다. 문화생활만 하더라도 도시에서는 선택하고 소비만 하면 끝나지만 여기에서는 직접 마을 장터에 참여하는 식이다. 자동차가 생기면서 극장, 도서관, 일터, 마트에 가는 길이 전처럼 어렵지도 않다. 역시 시골에선 자가용이 필수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도, 혼자 이사 오는 사람도, 연고 없는 사람도 이주할 수 있다. 사실 가족 모두가 함께 오는 사람도, 와서 농사를 짓는 사람도, 원래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에게도 삶은 녹록하지 않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가 원하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차리고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할테니까. 나는 차근차근 경험하면서 그 길을 찾는다. ‘원래의 자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면서.